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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4. 남미여행은 미친짓이다. 난 이제 집에 가야한다

집에 가고 싶다. 다 싫다. 여행 중단의 대차대조표를 작성하다.

by B CHO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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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산 훈련소.


군대에 다녀 온 사람들은 논산훈련소 수용연대의 아침을 기억한다.

내가 지금 집에 있지 않다는 사실에 대한 거부감. 지금 여기가 내무반 침상이 아니라 우리 집 아랫목이어야 한다는 욕망, 현재 사실에 반하는 과거에의 집착. 미련.


기상. 시간 5분 준다. 침구정리하고 연병장에 집합.

내무반장의 호통소리에 잠이 깬다. 만저보면 꺼글거리는 담요. 옆자리 동료들의 허둥대는 소리. 부산하다. 머리를 만져보면 머리카락이 없다. 그렇다. 여긴 집이 아니다. 난 군대에 왔고 여기는 논산훈련소 수용연대이다.

그때 그 혼련소 아침의 배신감을 멕시코시티 호텔에서 다시 절감한다.


아침에 창문을 부수고 들이닥치는 남미의 강렬한 태양에 눈을 떴다.

생소한 천정, 낯선 실내집기들. 익숙하지 않은 침대 시트. 이질적인 실내공기. 그렇다 여긴 집이 아니다.

난 지금 남미에 와 있다. 난 지금 집에 있지 않다.


너는 좋으냐 이 남미가.

지구 반대편에서 맞는 아침이 주체 못할 행복으로 가득하느냐.

너의 욕망은 조그만 빈틈도 없이 충족되어 있으며, 너는 그로 인하여 지금 행복한가.


아니다.

나는 지금 적응 안 되는 생소함에 매우 불편해 하며

익숙함으로 회귀하고 싶어하고 있다.

여행을 중단하고 집에 가고 싶다.




싫은 것돌과 그리운 것들.


호텔의 네모남이 싫다.

곡선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는 사각형. 엘리베이터. 복도. 방문. 테레비젼. 냉장고. 거울. 테이블 모두가 사각형이다.


규격화되어 있다. 표준화이고 정형화이다. 예외는 없다. 인간미라고는 찾아 볼 수 없다. 여긴 숨이 막힌다.

시설뿐 아니다. 사람도 그렇다. 리셉션과 청소원 안내원 벨보이 모두 사무적이다. 나를 인간으로 대하지 않는다. 호텔 매뉴얼에 따라서 나를 그냥 고객으로 대한다. 농담을 하면 부담스러워함이 느껴진다. 비인간적이다.


호텔 조식은 구역질이 난다. 사흘이 지나니 이제 식당 어디에 뭐가 있는지 다 안다. 맛이 어떤지도 안다. 어느 주스가 시큼한지, 어느 주스가 맹탕인지도 다 안다.


문제는 내가 앞으로도 한달이나 이런 호텔에 머물러야 한다는 점이다. 한달은 매우 긴 시간이다.

한달의 장구한 시간을 나는 더 견뎌내야 한다. 호텔에서 먹고 자면서.


그립다.

아내가 끓여주던 된장국. 고등어는 노르웨이 산이 부드럽다. 노르웨이산 고등어를 김치와 함께 조리면 맛이 기가 막히다. 그게 먹고 싶다.


익숙한 이부자리.

전화하면 들리는 다정한 목소리들.

술 먹고 토론하던 친구 들. 나보다 나를 더 걱정해 주는 친척들,

아내와 전화하면 전화기의 내 목소리에 반응하는 말티즈 믹스 노령견 비비.

그립다.

내가 왜 그 친숙하고 편한것들과 격리되어 여기에 있어야 하는지 당췌 이해가 안된다.




걱정스러운건 나의 안전이다.


나는 멕시코시티에서 아직까지 사진을 찍지 못했다. 핸드폰은 늘 주머니 속에 있다.

하도 도둑이 많다고 해서


길을 가다가 구글 지도를 볼 때는 상가 안에 들어가서 보고 다시 나온다. 사진을 찍을 엄두도 못 낸다. 누군가 내 핸드폰을 낚아채서 달아날 것이라는 학습된 피해망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내가 우버 택시를 타고 가다가, 택시 기사가 나를 납치한다 해도 난 대책이 없다. 내가 골목을 가다가 어떤 사건의 피해자가 된다고 해도 아무도 모른다. 나는 혼자이기 떄문이다.

이렇게 숨어서 하는 여행은 처음이다. 나는 여행의 즐거움보다 여행의 안전에 더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이게 무슨 여행인가.


하루에 하는 말이 몇 문장이 되지 않는다. 이러다가 여행이 끝나는 한달 뒤에는 나의 조음기관들이 발성하는 방법을 잊어 버릴지도 모른다.


무엇보다도 나의 이 여행이 경제활동이 아니라는 점이다.

자구 반대편에서, 서울과 낮과 밤이 바뀐 현실 속에, 내가 이를 악물고 여행을 마친다 해도, 돈이 생기지 않는다. 경제적 이득이 없다.


나는 돌아가야 한다, 여기서 여행을 접고 집에 가야 한다.




대차대조표


망설임이 있을 때. 혹은 무엇을 결정해야 할 때 나는 대차대조표를 만든다. 나의 습관이다

종이를 한 장 꺼낸다.


왼쪽을 차변 오른쪽을 대변으로 한다. 그리고 각각 이익과 손해를 나열한다.

아래는 그날 아침에 작성한

여행을 중단 할 것인가 말것인가의 대차대초표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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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초심으로 돌아간다.


나는지금 왜 남미에 있는가.

다시 초심으로 돌아간다.


지금 나는

시차와 낯섦과 물갈이와 문화적 충격 등 육체적 정신적 적응기이다.

마음에도 관성의 법칙이 적용되는 것 같다. 몸은 남미에 와 있지만 마음은 습관대로 서울의 시간에 따라 흐르고 있다. 서울 떠난지 4일째. 몸도 마음도 지쳤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적응하게 될 것이다.

이 상념마져도 여행의 일부이다. 즐겨야 한다.

두려움과 외로움. 그 공포와 소외를 즐기기 위해 나는 지금 여기에 혼자 있다.


살아있음에 대한 감사이다.

여행을 할 수 있음에 대한 감격이다.

인생에 대한 통찰이고, 오성의 오솔길로의 산책이다.


감사와 감격. 그런 환희에 젖어서. 남미를 여행할 수 있음 만으로도 두주먹을 불끈 쥐고 하늘을 향해 고마워 할 일이다.


나는 복이 많은 사람이다.

누구나 그렇다. 갖고 있는 것을 셈하면 부자이고, 갖고 있지 않은 것을 셈하면 가난하다. 난 부자이다


멕시코발 인천행으로 바꾸려던 비행기표는 이제 잊기로 한다

멕시코시티-리마, 멕시코 출발 페루의 일정을 확인하고, 햇빛 부서지는 남미속으로 호텔 문을 열고 나선다

세상이 참 아름답다.







07 Mar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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