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각 돌은 미친 짓이다. 페루 쿠스코에서 그런 생각을 했다.
12각 돌을 만나다.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었다. 12각 돌을 거기서 만날 줄을 몰랐다. 영접할 그 어떤 긴장감. 내 마음 내면의 예의도 차리기 이전에 12각 돌을 덜컥 만나고야 말았다.
호텔을 나와서 아르마스 광장으로 올라가는 길이었다.
골목은 좁았다. 고산병에 위축된 늙은 나그네는 조그만 경사에도 숨이 차다. 발바닥 아래에는 유럽 어느 오랜 된 도시의 골목처럼 포장된 작은 돌들이 밟힌다.
12각 돌은 확실히 신성한 것인가 보다.
내가 그 앞을 지날 때는 그 돌 앞에 사진을 찍거나 멈추어 서서 구경하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다. 나는 거기에 12각 돌이 있는 줄도 몰랐다. 그냥 고산증에 시달리며 골목길을 따라 언덕을 오르고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세상은 사라지고, 이 세상엔 아무것도 없고, 마치 세상엔 그 12 각돌 하나만 있는 것처럼, 그 돌이 눈에 확 띄는 것이다.
우린 그렇게 만났다. 마치 우리의 만남을 위하여 그 돌이 거기에서 수백 년을 기다려 온 처럼 우린 만났다.
어루만져 본다. 돌이다. 수백 년을 묵묵히 땅을 지켜온 돌이다. 12각이다. 12개의 각을 갖고 있다. 그리고 그 각마다 다른 돌들과 얽혀있다.
세상은 왜 이 작은 돌에 열광하는가. 여기에 숨겨진 그 무엇이 있어서 사람들은 이것을 보러 여기에 오는가
12각 돌이란 무엇인가.
잉카인들에게 돌이란 무엇이었을까
돌 위에 돌을 그냥 올려놓았을 뿐이다. 돌 위에 돌이다. 아무런 접착제가 없다.
그런데 돌들은 무너지지 않는다. 수백 년의 풍화작용에도 돌들은 변화가 없다.
심지어 지진이 와도 그렇다. 무너져 내리지 않는다.
돌과 돌이 맞 물려있다. 굳게 다문 입의 윗니와 아랫니처럼 돌들은 서로 만났다. 빈틈이란 없다.
돌과 돌 사이에 종이 한 장 들어가지 않는다.
여기뿐 아니다. 친체로도 마찬가지이다.
친체로의 건축물은 스페인이다. 잉카의 건물을 허물고 그 위에 다시 스페인 집을 지었다.
그런데, 기초 즉 석축 부분은 잉카의 석축을 그대로 활용했다.
거기도 그렇다. 돌들이 맞물려 있다.
잉카인들에게 돌이란 무엇이었을까.
돌 쌓기의 불가사의
잉카인들은 스페인이 올 때까지 철을 몰랐다.
석기시대 혹은 청동기시대였다.
그런 도구로는 돌을 다루기 어렵다.
쇠못이나 쇠망치 빠루 함마 정 그런거 없이 돌을 캐내고 운반하고 다듬고 쌓았다.
잉카인들은 그런 철로 된 도구가 없었다.
그런데도 돌 다루기를 두부 다루듯이 했고, 돌 만지기를 떡 주무르듯이 했다.
자연을 이용해서 자연을 처리했을 것이다. 즉 물과 태양 그리고 나무와 바람 등을 이용해서 돌을 파내고 자르고 옮기고 쌓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상상이 안 된다. 불가사의다.
12각 돌은 미친짓이다.
그냥 쌓으면 된다. 굳이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된다. 이건 미친 짓이다. 12각을 만들지 않아도 된다.
실제로 그 골목엔 스페인이 다시 쌓은 축대도 있다. 역시 수백 년이 지났지만 문제없다. 잘 버틴다.
그런데 왜 잉카인들은 장비도 없으면서. 무의미하고 비 생산적이고 비 효율적이고 비 경제적인 12각 돌을 만들었을까. 그렇게 축대를 쌓았을까. 건물기초를 그렇게 했을까.
혹시 생산성이나 효율성이나 경제성보다 더 높은 그 무슨 가치가 그 돌 쌓기에 있는 것은 아니었을까.
잉카인에게 돌 쌓기 무엇이었을까.
혹시 그것이 토목공사 그 이상의 어떤 가치가 있었던 것은 아닐까.
지금 나에게 돈이 그렇듯이. 돈이 돈 이상의 가치. 비교할 수 없는 자기만족. 사회적 신분, 다른 것으로 대체 불가능한 성취감. 포만감. 행복감을 주는 것처럼, 잘 다듬어진 돌이 잉카인에게 그런 것이 아니었을까.
대를 이어 목숨을 걸고 해 내야 할 숭고하고 신성한 길. 멀고도 험한 길. 또는 그런 가치를 찾아가는 길. 구도이 길.
그 길이 돌 쌓기의 길은 아니었을까.
그리고 그들은 떠났다.
혹은 비밀의 문. 다른 차원의 세상으로 탈출하는 비상구.
그것이었을까.
마추픽추의 사람들이 일시에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도 이 12각 돌과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닐까.
사람들은 12각 돌 앞에 줄을 서고, 주문을 외우고, 돌이 움직이면서 통로가 나오면 그 통로를 따라서 다른 세상으로 떠난 것은 아닐까.
12 각돌 그 불가사의 앞에서
나그네의 상상력은 날개를 편다. 고산에서의 몽롱한 의식은 새 처럼 바람을 타고 안데스 골짜기를 날아오른다.
가고 싶다. 12각 돌을 열고 나도 거기로 떠나고 싶다.
12 Feb 2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