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설명) 나이아가라 폭포의 하류에 위치한 캐나다-미국의 국경인 'Lewiston- Queenston Bridge'.
양국 간의 왕래가 워낙 많다 보니 이런 다리가 이 지역에만 세 개가 있고, 다리 정중앙에는 두 나라의 국기가 나란히 서있다.
하지만, 요즘은 캐나다사람들의 미국여행 거부로 또 관세부과에 따른 물동량 감소로 썰렁하다.
악어의 입처럼 굳게 닫혀 있는 미국국경 수비대의 문을 열고, 우리 가족 넷이 들어섰다.
길쭉하게 늘어선 카운터가 한눈에 들어오는데, 어랏! 자리가 텅 비어 있다.
평소에는 국경수비대 경찰들이 밀랍인형처럼 앉아 있는데, 오늘은 아무도 앉아있지 않고 사무실 중간에 모여서 뭐라 떠들고 있다.
그중에는 빡빡머리에 검은 제복을 입은 경찰들도 여럿 보였다.
이전에는 이런 대머리 독수리들(?)을 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위압감이 독수리처럼 엄습해 온다.
이때, 내 기분을 읽었는지 작은 아들이 등을 툭치며 거든다.
“아빠, 쟤들 지네끼리 그냥 잡담하고 있는데요!”
오늘 낮에 있었던 야구 얘기라던가, 시시콜콜한 정치 얘기라도 하는지는 모르겠으나 녀석들의 품새는 UFC링에 막 오른 격투기 선수들 못지않았다.
다행히 그중에서 머리가 단정한 친구 한 명이 내게 다가온다.
의자에 앉지도 않은 채 손을 내밀길래 패스포트 4개를 건네니, 캐나다 패스포트 3개는 열어보지도 않고 되돌려준다.
그리고 홀로 영주권자인 내 것만 열어보더니, 의례적인 국경 통관 용어 4종 세트를 물어본다. 4종세트? 전편 참조.
그리고는 추가 질문 하나 더.
“Have you ever been refused entry into the states?" (미국 입국 시 거절된 적이 있는가?)
“Never~!”
그러자 기계처럼 움직이며 내 얼굴 사진을 찍고 열손가락 지문도 찍었다.
그 다음에는 스탬프를 "꽝!"
서둘러서 저들의 대화에 다시 끼어들기 위해서 인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가족의 수속절차는 별스럽지 않게 끝났는데…
내 시선을 잡아 끈 것은 정작 다른 데 있었다.
카운터 끝 건너편 후미진 곳에 있는 방,
사실상 유치장이라 볼 수 있는 곳.
어둑한 그곳에는 사람들이 가득했다. 애들도 보이고 여성도 있고, 한 가족처럼 보이는 사람들도 있다.
한눈에 봐도 아랍계열 사람들이다.
직감적으로, 이들도 국경을 넘기 위한 수속 차 여기에 들어왔다가 잡혀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구류되어 있는 것이 아니고 입국 수속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그런데 오픈되어 있는 카운터가 아니고 별도로 구획되어 있는 방 안에서, 언제 부를지도 모를 경찰관의 호출을 눈이 빠지게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행정기관의 일반원칙인 선입선출도 무시당한 채.
원칙대로 한다면 우리 가족은 이들 뒤에서 한참을 기다려야 했을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아랍권 사람들을 유난히 싫어하는 것은 세상이 다 아는 일이다.
그의 마인드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곳은 이러한 국경 경찰, 국경 보호국일 것이다. 자기네 대통령이 연설 중에 수시로 국경을 거론하고 사기를 북돋아 주기도 하니 이들의 근무자세에 각이 잡힐 것은 뻔한 일이다.
문제는 평소에도 제복 입은 관리 중에는 인종차별 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좀 있게 마련인데, 이들이 더 과격하게 행동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독수리가 아닌 비둘기의 날개를 가진 관리들이라면, 지금 내 눈앞에 보이는 것처럼 잡담하느라 모여있지 말고 저 구석방에 있는 사람들부터 상대해야 하지 않을까?
이 사건 이후로, 나는 미국 여행은 거부했다. 어쩔 수 없이 가게 되면 반드시 비행기를 이용했다.
캐나다 공항에는 미국의 이민국/국경보호국 부쓰가 별도로 설치되어 있어서, 미국으로 가는 사람은 모두 캐나다 공항에서 통관수속을 마치게 되어 있다. 미국에 도착해서는 그냥 프리하게 나가면 된다. 그만큼 캐나다에서는 미국을 배려했다고 할 것인 즉, 캐나다 사람들의 보는 눈앞에서 나이아가라 국경 수비대에서와 같은 꼴은 당하지 않을 것이다.
삼 년 후, 나는 나이아가라의 똑같은 장소에 서있다.
눈앞 카운터에는 정복을 입은 미국 국경 경찰이 서있다. 젊은 African-American 여성이다.
기분 좋은 일이 있는지 흔들흔들 엉덩이 춤도 추고 있다.
“Are you from Korea? “
“Yes”
“I like Korea, beautiful country”
그리고는 스탬프를 "꽝!" 찍어준다.
4종세트의 국경통과용 질문도 없었다!
혹시나 하고 쫄렸던 마음이 확 풀리면서, 어찌나 고마운지 그 흔들거리는 엉덩이에 뽀뽀라도 해 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지금은 바이든 시대이다.
실제로 분위기가 많이 바뀌어 있다. 아니, 원래 이랬었다!
미국 들어가기가 훨씬 부드러워졌다는 말을 듣고, 나도 나이아가라의 국경을 차로 넘는 중이었다.
내 여권을 스캔해 보면 미국에 들락거린 기록이 모두 나올 테니, 미국에 불법 체류하거나 사고 칠 위인은 아니라는 것은 불 보듯 뻔한 것이다.
이후, 나는 제집 드나들 듯이 미국을 오갔다.
가족과 같이, 이젠 결혼을 해서 뉴저지로 이사 간 큰 아들 집에도 다녀왔다.
2025년 봄, 지금 나는 미국 넘어가는 것을 다시 주저하고 있다.
3월 15일부터 시작되는, 회사의 중차대한 행사인 ‘보스턴 씨푸드 박람회’에 가야만 한다.
한참을 망설이다가 돈을 더 들여 회사 사람 모두의 비행기 표를 샀다. 지난 ‘1기 트럼프’ 때보다 더 험악해졌을 지금의 ‘2기 트럼프’ 시대에 국경을 차로 넘는 것은 바보짓이다.
캐나다 언론들도 나서서 항공 여행을 권하고 있고, 캐나다 정부는 ‘옛날보다 더 까다로운 심사를 받을 수 있고, 더 많은 질문을 받을 수도, 전자기기도 검색 당할 수 있다’고 하면서, ‘국경관리에게 협조하고 솔직하게 대답하라’는 지침을 내렸다.
당국의 말이 길어지고 세세한 것은 실제로는 가지 말라는 것이고, 나중에 책임을 지지 않겠다는 선언(?)이다.
100년 이웃사촌이 어쩌다 이 지경이 된 것일까?
캐나다는 매년 이천만 명 이상이 미국을 찾고 있었으나, 트럼프가 관세부과를 위협하고, 미국의 51번째 주로 만들겠다고 막말을 한 이후, 미국으로 가는 숫자가 지난 2월에는 지난해 비해 20%, 3월에는 32%가 줄었다고 한다. 4월, 5월에는 더 줄어들 것이다.
특히, 추운 겨울을 피해 따뜻한 남부 미국을 향하는 장기 체류자가 매년 100만 명이 넘는데,- 이들을 Snowbirds라고 부른다- 이들은 이제 사전에 ‘미국 장기체류 등록’을 하여야 한다. 내 주변 사람들도 여럿이 팀을 만들어 겨울 골프를 치러 가곤 했었다.
돈 쓰러 가겠다는데도 이제는 오지 말라는 것이다.
캐나다 방문객이 10%만 줄어도 미국에서는 약 3조 1000억 원의 매출감소, 14,000개의 일자리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고 하는데(미국 여행협회 제공), 돈을 우선으로 하는 트럼프가 어찌 이를 무시하고 있는지를 알 수 없다.
그에게는 언론 앞에서 싸인하고 입질하는 것이 국가의 경제가치보다 더 중요한지도 모르겠다.
보스턴 씨푸드 박람회는 세계 각국의 참가자들이 모여들어 돈을 마구 써대는 북미 최대의 행사이다.
올해는 팬데믹 때 못지않게 썰렁했지만- 중국업체들이 참가를 보이콧하면서- 각 나라에서 온 참가자들은 열심히 자기네 상품을 홍보하면서, 더불어 트럼프도 상품으로 내놓은 것 같았다.
씹는 용도로…
나도 오랜만에 입운동을 엄청 하다가 왔다.
욕을 많이 먹으면 오래 산다고 하는 한국 속담을 뒷배로 삼아 미안한 맘도 없이 떠들었다.
아니, 오히려 이랬다.
'나는 자금 한 사람의 장수(長壽)를 위해 헌신(?)하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