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完] 병실 최악의 이웃을 회고하며

by 다이아

퇴원 후 집에서의 일상은 평범했다.

특별하지 않아 오히려 감격스럽다.

침대에서 뒹굴거리고

소파에서 TV를 보다가

배고플 때 밥을 먹고

가고 싶을 때 화장실을 간다.


물론 남편의 도움이 필요하긴 했지만

도움만 있으면 모든 과정이 할만했다.


집에서 휠체어를 타고 생활했으면

일상이 조금 더 힘들었을 거다.

휠체어를 타면 공간이 넉넉히 필요한 편이라

제약 사항이 은근히 많다.


다행히 재활의 성과가 나쁘지 않아

남편의 도움을 받아 보행기를 끌며 생활했고

집안을 천천히 누빌 수 있었다.


다만 보행기를 끌 때마다 층간 소음이 걱정됐다.

어차피 체력이 달려 길게 쓰지도 못하고

밤에는 자느라 바빠 큰 피해는 없겠지만...


"아랫집에서 올라오면...

최대한 힘든 표정을 짓고 보행기를 끌고 나갈게.

설마 이 꼴을 보고 뭐라 하시겠어? 킥킥"


이때부터였다.

나는 내 병을 개그로 승화하기 시작했다.

아마도 이 시점부터 몸이 아픈 현실을 일상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던 것 같다.


일상을 찬찬히 즐기며

집에서 생활하며 힘들었던 점들을 기록한다.


1. 소파가 낮아 앉았다 일어나는 게 버겁다.

2. 화장실 문턱을 넘는 게 힘들다.

3. 걸을 때 발이 미끄러진다.


병원에 돌아가서 잘 보완하면

다음 퇴원 주기 때는 더 편하겠지?




주변에서 집에 가니 뭐가 제일 좋냐며 묻는다.


"잠을 편하게 잘 수 있어서 너무 행복해!"


나는 3인실을 사용했다.

6인실 대비 쾌적하다 여길 수도 있겠지만

내가 입원했던 병동이 신경과라는 게 치명적이었다.

신경과 병동에는 치매 어르신들이 자주 입원하신다.


기억 속 최악의 이웃을 회고해 본다.

집에서 낙상하여 입원한 치매할머니.

그리고 그의 주보호자인 할아버지.


할머니는 체격이 굉장히 컸다.

할아버지는 나보다도 왜소했다.


할아버지는 돈이 아깝다며 스스로 간병을 자처했다.

할머니는 거동이 불편해 기저귀를 착용했는데

체격차이 때문에 그는 기저귀를 제대로 갈지 못했다.


그런데 수시로 관장까지 해댔다.

엑스레이 상 배 속에 변이 가득하단다.

관장으로 이걸 다 빼야지만 퇴원한다고 한다.

병실은 24시간 화장실화 되었다.


기저귀와 패드를 제대로 갈아주지 못하니

병실에는 불쾌한 냄새가 가득했다.


가끔 얘기하지만 나는 임산부이다.

가뜩이나 후각이 곤두서있는데... 죽을 맛이다.

할머니가 몸을 뒤척일 때마다

고약한 냄새가 내 발 끝까지 퍼지는 것 같았다.


게다가 할머니는 노래를 좋아했다.

피를 뽑을 때

수액을 놓을 때

기저귀를 갈 때

움직이고 싶을 때

뭔가 불편할 때마다 아리랑을 불렀다.

밤이고 낮이고 그녀의 노랫소리가 병실에 울려 퍼졌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리도 못 가서 발병 난다~"


버림받을게 두려우셨을까?

노랫소리가 참으로 구슬프다.


할머니가 노래를 부르며 움직이면

할아버지가 느릿느릿 일어난다.


"가만히 있어~ 내가 해줄게~ 움직이지 마아~"


할아버지는 처음엔 상냥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흑화 했다.

간병을 하기에 체력이 달리시는 것 같았다.


밤이고 낮이고

할머니가 노래를 부를 때마다

할아버지의 신세한탄도 곁들여진다.

환장한다.


자식들은 뭐 하냐고?

그들은 가끔 얼굴만 비쳤다.

병원을 믿을 수 없느니

시설이나 시스템이 별로니

세브**에 가지 왜 여기를 왔느니

아빠 힘들면 간병인을 불러주겠다니

입으로만 떠들다 1시간도 채 안돼 퇴장했다.


나와 남편은 할머니의 쾌유를 진심을 다해 빌었다.

할머니, 제발 빨리 퇴원하세요.


할머니는 일주일 정도

병원에서 급성기 치료를 진행하시고

결국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 채 요양원으로 퇴장하셨다.


입원생활 중 정말 많은 이웃을 만났다.

아픈 건데 어쩌겠어 서로 이해하고 넘어가는 게 대다수였지만 이들은 정말 대단했다.


내 병원인생 중 최악의 이웃이었고

뒷맛까지 너무 씁쓸했다.




먹킷리스트를 열심히 수행하다 보니

시간은 후루룩 지나갔다.


2024년 11월 16일(토)

오매불망 기다리던 회를 먹었다.

남편은 얼큰하게 소맥을 말았다.

함께 예능을 보면서 깔깔댔다.

오늘도 행복하다.



2024년 11월 17일(일)

이 날은 엄마의 생일이었다.

그녀는 내가 아픈 게 문제지 생일이 대수냐며 한사코 축하를 거절했다.

내가 아파서 미안해 엄마...



2024년 11월 18일(월)

어느덧 재입원을 준비할 시간이다.

남편이 부지런히 풀었던 짐을 싼다.

남편이 내 휠체어를 힘차게 끈다.


"가볼까?"


2번째 입원주기!

다시 시작이다.




[작가의 말]

안녕하세요, 다이아입니다!


두서없이 쓰고 있는 글이지만

잘 봐주셔서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잠시 쉬어가면서 비축분을 준비하고

금방 시즌2로 돌아오겠습니다!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keyword
이전 24화퇴원, 퇴원, 퇴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