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0월 16일(수) [4]
오후 8시
요추천자 후 절대안정 시간이 끝날 무렵
간호사님이 작은 수액팩을 들고 들어온다.
메치솔 500mg
고용량 스테로이드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스테로이드 알약 '소론도정' 한알의 용량은 5mg이다.
정신이 아득해진다.
이거 임신 중에 맞아도 진짜 괜찮은 걸까?
내 척수염은 면역세포가 나 자신을 공격해 염증을 만드는 자가면역질환일 확률이 높다고 한다.
자가면역질환...
오랜 시간 남편을 괴롭히고 있는 아토피성 피부염이 떠오른다.
알아보니 내 병은 아토피와 꽤 비슷한 점이 많다.
원인불명 염증으로
계속해서 재발하며
특별한 치료 방법이 없는 난치병이라는 점까지
그래서인지 척수염의 처치 방법은 병의 치명도에 비해 매우 심플했다.
스테로이드로 염증을 누른다.
면역억제제를 먹어 재발위험을 막는다.
그럼에도 재발하면 다른 면역억제제를 시도한다.
나의 치료 계획 또한 이와 비슷하게 세워졌다.
[고용량 스테로이드 주사]
5일 동안 입원해서 정맥주사로 투여
[경구 스테로이드]
주사치료 후 1~2개월 동안 용량 줄이며 투여
[혈장교환술]
스테로이드 치료에도 증상 악화되면 진행
[면역치료]
임산부이기 때문에 진행계획 없음
출산 후 재논의
[앞으로의 입원기간]
고용량 스테로이드 주사 치료 5일
+ 경구 스테로이드 복용하며 경과 관찰 2일
주삿바늘을 통해 스테로이드가 들어온다.
팔이 뻐근해지기 시작한다.
임산부 스테로이드 약물 치료에 대한 교수님의 설명을 복기해 본다.
미국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는 약품을
A등급(위험) ~ E등급(안전)으로 나눈다.
스테로이드는 C등급으로 분류된 약품으로
임신 중에는 치료상 이익이 클 때만 사용한다고 한다.
나의 경우이다.
임신 중 스테로이드 투여는 부작용 있긴 하나
아기에게 극도로 치명적인 부작용은 아니니 너무 걱정 말고 치료에 전념하자고 했다.
인터넷에 어떤 부작용이 있는지 물어보니 구순구개열, 저체중 출산 등의 확률이 조금 높아진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안감은 사라지지 않는다.
피 속으로 들어오는 스테로이드가 아기를 죽이는 약물처럼 느껴진다.
눈물이 파도처럼 밀려온다.
남편은 내 손을 조용히 토닥여준다.
"괜찮아. 괜찮을 거야.
그리고 나는 아기보다 자기가 더 중요해.
우리 일단 치료에 집중하자."
눈물이 오히려 해일처럼 밀려온다.
듣고 싶었지만 듣고 싶지 않은 말이었다.
오후 9시
스테로이드 주사는 1시간 동안 투여했다.
너무 울어서인지 많이 지쳤다.
지긋지긋했던 2024년 10월 16일을
이제는 끝낼 수 있겠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