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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병은 혼자 하는 게 아니야

by 다이아

2024년 10월 17일(목)


어젯밤 엄마와 아빠가

병원에 방문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


이런저런 이유로 다음에 보자고 거절했다.

코로나 이후 병실에선 면회가 불가능하다.

씻지 못해서 꼴이 말이 아니다.

계속 검사에 불려 가는 중이라 정신이 없다.

모두 핑계였다.


그냥 병에 걸린 내가 너무나도 싫었다.

왜 아파야 하는지 납득할 수 없었다.

하반신 장애가 개선될 것 같지 않았다.

이 상황을 믿을 수 없었다.

이런 모습을 타인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그게 나의 엄마, 아빠일지라도.


그리고 부모님에게 나도 모르는 내 병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설명을 해야 하는 것도 싫었다.


병의 원인이 뭔지

나을 순 있는지

언제 나을지

아기는 괜찮은지

치료가 아기에게 미칠 영향은 없는지


아직 난 아무것도 모르는데

어찌 설명한단 말인가?




아빠가 뜬금없이 단톡방에 김치 사진을 올린다.


"오, 맛있겠다!"


리액션에도 아무런 반응이 없다.

그리고 1시간 후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우리 지금 병원 로비야.

병원밥 맛없잖아. 반찬 싸왔어.

호랭서방 잠깐 내려보내서 반찬만 받아가."


방문 의사를 물으면 거절할 것 같아 일단 왔단다.

남편만 보내 반찬만 받아가라니!

오셨는데 또 어찌 그냥 보내겠는가.


남편의 목에 팔을 두른다.

떨어지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다해 매달린다.

남편은 나를 요리조리 돌려 앉힌다.

휠체어에 주저앉는다.


당시의 우리는 재활치료 전이라 요령이 없었다.

휠체어에 한번 탈 때마다

내 팔 링거에서는 피가 역류했고

남편은 허리 통증을 호소했다.


(참고) syrebo, 편마비 환자의 트랜스퍼 / 나와 케이스는 다르지만 얼추 모양새는 비슷하다.


어렵사리 1층 로비로 내려가니

엄마와 아빠가 의자를 앞에 두고 앉지도 못하고

선채로 서성이고 있다.


엄마가 방긋 웃으며 나를 안아준다.

아빠는 말없이 앞에 앉아 내 다리를 주물러준다.


"다이아, 너는 아픈데 왜 나왔어.

진짜 반찬만 주고 가려고 했는데.

그리고 호랭서방! 고생이 많지? 정말 정말 고마워."


엄마가 보온 가방을 건네준다.

따뜻하고 묵직하다.


"반찬은 생각나는 대로 해봤어.

숙주나물, 구운 김, 간장양념장, 열무김치...

먹고 싶은 반찬 있으면 말해봐.

다음에 또 해올게.

이럴 때일수록 더 잘 챙겨 먹어야지!"


엄마와 아빠는 생각 외로

내 병이나 아기에 대해서 거의 묻지 않았다.


그저

밥은 맛있는지

잠은 잘 자고 있는지

병실 시설은 괜찮은지

부족한 물건은 없는지

의료진들은 믿을 만 한지

병실생활이 심심하진 않은지

시시콜콜한 문답이 오갔다.


나를 걱정하는 마음이 온전히 전해졌다.

세상을 향한 짜증과 분노가 누그러진다.

가슴 한편이 편안해진다.




얼마 전 세계적인 암 명의 김의신 교수님의 동영상을 시청했다.


내 질환이 암과는 다르지만

그가 했었던 말 중 가슴에 새긴 부분이 있었다.


미국에선 암을 고혈압, 당뇨와 같은 만성 질환으로 생각한다고 한다.

암을 대할 때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가족, 친구들에게 알려 도움을 받아

병을 열심히 관리하면서 살아간다고 한다.


반면 한국에선 암을 사형 선고처럼 생각한다고 한다.

그래서 아무에게도 알리려 하지 않고

부정적이고 소극적이게 치료에 임한다고 한다.


가슴 한편이 뜨끔했다.

이때의 나도 병과의 스파링을 앞두고

주변에 얘기도 제대로 못한 채

주먹 하나 뻗어보지 않고

링에 오르지 않겠다 떼쓰며

이미 패잔병인 것처럼 행동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나의 사랑하는 가족

엄마, 아빠, 그리고 남편이!

내가 혼자 싸우는 게 아님을 알려줬다.

맞서 싸울 수 있다 등을 두들겨줬다.

시원한 물을 입에 넣어주었다.

앞에 주먹을 뻗으라 소리쳐줬다.

덕분에 나는 힘겹지만 링 위에 올랐다.


물론 링 위에는 혼자 있어야 한다.

노력했음에도 질 수도 있다.

그럼에도 그저 사랑하는 가족의 격려를 받아 최선을 다해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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