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분 서평] 소년이 온다/한강

인간이라는 심연을 마주하다

by cm

드디어 이 책을 서평 하는 날이 오고야 말았습니다. 바로 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입니다. 워낙 많은 리뷰가 있고 많은 사람들이 본 책이기에 이 책을 서평 해야 하나라는 고민이 많았습니다. 그래도 서평을 주요 콘텐츠로 잡고 있는 사람으로서 한 번은 다루어야겠다고 생각이 들었죠. 그래서 저만의 시선, 역사학도의 시선으로 이 책을 한 번 서평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역사학도인 저는 매일 '죽은 자들'을 만납니다. 역사 기록 속에 등장하는 전쟁 속 사망자 몇 명, 부상자 몇 명 등의 기록을 매일같이 보기 때문이죠. 하지만 제 책상 위의 죽음은 그저 건조할뿐입니다. 그들은 숫자로 치환되고, 사건의 인과관계를 설명하기 위한 통계 자료로 박제됩니다. 우리는 감정을 배제하고 객관적인 '팩트'를 찾는 훈련을 받으니까요.


하지만 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를 읽다 보면 감정을 통제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 책은 차가운 사료(史料)가 담아내지 못한 그날의 뜨거운 살 냄새와 피 비린내를 복원해 냅니다. 이것은 '광주 민주화 운동'이라는 역사적 사건에 대한 기록이 아니라, 그 거대한 역사의 수레바퀴 아래 깔려 신음했던 부서지기 쉬운 영혼들의 증언록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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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가는 "왜 시민들이 총을 들었는가"를 분석하기 위해서 사건의 인과를 찾는데 집중합니다. 반면에 소설가는 "총에 맞은 친구를 두고 도망친 소년의 평생은 어떠했는가"를 묻습니다. 주인공 동호와 그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는 공식적인 역사 기록의 행간에 숨겨진 '사람의 역사'입니다.


도청 상무관에서 시신을 닦던 동호, 혼이 되어 자신의 썩어가는 육체를 바라보는 정대, 고문 후유증으로 평생을 고통받은 선주, 검열과 싸우다 자살을 선택한 에디터. 이들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고통스럽습니다. 이 고통의 원인 그날의 잔인한 폭력 때문만이 아닙니다. 남겨진 사람들의 부서진 영혼을 너무나도 투명하게 보여주어서죠. 친구를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 살아남았다는 치욕, 그리고 그날 이후 멈춰버린 시간. 역사라는 거대 서사가 놓친 개인의 고통을 한강 작가는 면밀히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우리는 1980년 5월을 '알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나면 우리는 아무것도 모르는 것이 아닐까라는 의문이 듭니다. 숫자로 된 역사가 머리를 채운다면 이 소설은 가슴속으로 들어와 영원히 잊히지 않는 기억을 새깁니다. 역사를 공부하다 보면 회의감이 들 때가 있습니다. '인간은 과연 진보하는가?' 이 책은 그 질문을 가장 고통스러운 방식으로 기억 속에 새겨줍니다.


<소년이 온다> 자체로 하나의 '제의(祭儀)'입니다. 억울하게 죽어간, 장례조차 제대로 치르지 못한 영혼들을 문학이라는 형식으로 불러내어 씻겨주는 씻김굿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책을 덮고 나면 한동안 먹먹한 기분이 듭니다. 그 기분을 느끼고 그들을 기억해 주는 게 그들을 위한 가장 정성스러운 장례식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군인들이 반란을 일으킨 거잖아, 권력을 잡으려고. 너도 봤잖아. 한낮에 사람들을 때리고 찌르고, 그래도 안 되니까 총을 쏘고. 그렇게 하라고 명령한 거잖아. 그 사람들을 어떻게 나라라고 부를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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