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 삼국전쟁의 종료
496년, 497년 고구려는 신라의 우산성을 집요하게 공격했습니다. 결국 신라의 우산성은 고구려의 차지가 되었습니다. 이 전투를 끝으로 사실상 5세기의 삼국전쟁은 종료합니다. 저는 이 시기를 1차 삼국전쟁으로 생각하고 있죠. 우산성 전투를 끝으로 1차 삼국전쟁이 끝난 것은 신라가 더 이상 전쟁에 참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여러 기록들을 보면서 그 원인을 살펴보겠습니다.
冬十一月, 王薨.
(500) 겨울 11월에 왕이 돌아가셨다.
七月, 設柵於炭峴, 以備新羅.
(501) 7월 탄현에 목책을 세워 신라에 대비하였다.
우산성 함락 이후 삼국사기 신라본기는 500년까지 3년 동안 기록이 없습니다. 이후 500년에 4건의 기록이 나오는데 왜인의 장봉진 공격, 폭풍이 불었던 내용, 소지마립간의 날이군(경북 영주) 행차, 소지마립간의 사망입니다. 굉장히 다사다난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게다가 제가 위에 적은 501년의 기록은 백제의 기록입니다. 분명 사이가 좋았던 두 국가였는데 501년에는 신라에 대비해서 방어 목책을 백제가 세우고 있는 것이죠. 우산성 전투 이후에 신라의 내부 사정이 안 좋아지고 백제와의 외교 관계도 악화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소지 마립간 다음으로 왕이 된 지증마립간은 더 이상 고구려, 백제와의 전쟁에 참여하지 않습니다. 순장 금지, 농사 권장, 지방제도 정비 등의 내부 정비를 위주로 통치를 이어가죠. 삼국전쟁은 물론이고 다른 대외전쟁도 즉위한 지 12년이 지나서야 우산국을 공격하는 단 1건만 있죠.
이제 삼국전쟁은 고구려, 백제의 1대 1 대결로 돌아서게 됩니다. 다만 이것도 점점 횟수가 줄어듭니다. 500년대에는 5번, 510년대 1번, 520년대 2번, 530년대 0번으로 고구려와 백제의 전쟁도 꾸준히 이어지지만 횟수 자체는 줄어들게 됩니다. 이후 540년대 신라가 다시 참전을 하면서 2차 삼국전쟁이 발생하게 되죠.
지금까지 5세기 1차 삼국전쟁을 저의 첫 연재작인 [삼국전쟁연의]의 1부로 연재했습니다. 나름 저의 주전공분야라고 생각해서 열심히 썼는데 전달이 또 다른 문제라는 것을 많이 느꼈습니다. 5세기보다 공부할 것이 더 많은 6세기, 7세기의 연재는 공부와 연구가 더 이루어지면 해볼까 합니다.
대신에 공부할 필요가 없고 읽으시는 분들도 많은 지식을 필요로 하지 않는 주제로 다른 연재작을 써볼까 합니다. 제 경험들을 바탕으로요! 새로운 연재작이 나와도 많이 봐주셨으면 합니다! 감사합니다!
표지 사진 울릉도:https://ko.wikipedia.org/wiki/%EC%9A%B8%EB%A6%89%EB%8F%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