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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언더그라운드>(무라카미 하루키) 리뷰/독후감

극악무도한 범죄의 후폭풍을 다루는 르포르타주.

by 우언타이 Feb 27. 2025

이목을 끄는 여러 콘텐츠를 감상하다 보면, 종종 머리와 가슴을 충돌시키는 작품들과 마주하게 된다. 익숙해짐으로 인해 자연스레 지루해지나, 어쩐지 손에서는 놓을 수 없는 기묘한 책과 같은.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언더그라운드>는, 앞서 말한 서적의 대표적인 예시이다. 평범한 일상을 보내고 있던 사람들에게 오랫동안 지워지지 않을 고통을 무분별하게 가한 어느 집단이 저지른 극악무도한 범죄의 후폭풍을 다루는 이 르포르타주는, 적어도 내겐 그 소재와 형식 모두 꽤나 비범한 것으로 여겨진다.


가해와 피해, 비정상과 정상, 공격과 보호가 쉬우면서도 뚜렷하게 구분되는 어떤 역사에 대해 글을 쓸 때, 내부의 동기와 외부의 관심을 모두 획득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방금 이분화시킨 요소들 중 특별히 전자들에 집중하는 것이다. 뒤집어 생각해 보면, 그 후자들에 주목한 이 이질적인 책은 인기의 한계를 스스로 정해둔 채 앞을 향해 우직하게 뚜벅뚜벅 걸어가는 특이한 글이다. 그리고 그러한 보행을 가능케 하는 것은, 억울하고도 어처구니없는 아픔을 지닌 채 평생을 살아가야 할 이들의 사적이면서도 진솔한 이야기를 종이 위에 오롯이 투영시킨 저자의 사려 깊은 접근법일 테다.


피해자들 그 개개인의 삶을 지탱하던 각자의 배경에 스며든 소중하고도 유일한 가치에 대해 숙고해 보면, 저마다의 잃어버림에 관한 충분한 숙지 없이 그 참혹한 비극에 대해 뜨겁게 분노함과 차갑게 분석함은 결국 불완전한 것일 수밖에 없음을 어렵지 않게 인식할 수 있다. 그리고 반복되지 않아야 할, 경솔하고도 폭력적인 어떤 만행이 대체 무엇을 훼손시켰는가를, 이 르포는 겸손하면서도 정직하며, 심지어 피로감이 들 만큼 성실하고도 세세한 작법으로 읽는 이들에게 간절하게 속삭인다.


그런데 생각할수록 흥미로운 점이 있다. 하루아침에 모든 상황이 바꿔어 버린 자들의 수많은 고백들을 하나로 엮은 이의 직업이 소설가라는 것이 바로 그러하다. 현실에 무언가를 고유의 방식으로 더하거나 뺌으로써 예술을 빚어내는 창작자가, 자신의 목소리는 낮춘 채로 타인의 음성을 조심스레 세공하여 진실되고도 소중한 한 권의 증거를 기록했다는 점은, 역설적으로 무척이나 창의적이고 또 기술적으로 느껴진다.


이 작품의 바탕이 되는, 모두가 공분해 마지않는 그 사건에 관하여 더 깊숙이 탐구함 역시 반드시 필요한 일일 테다. 물론 지금 손에 쥐고 있는 도서 역시, 이 행동을 결코 소홀히 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순간만큼은 어떤 이들의 소리 없는 비명과 입 밖으로 내뱉지 못한 탄식에 귀 기울이려 한다. 그날 그 땅의 체험자들과 오늘 이곳의 독자들 모두의 시공간을 초월하여 서로의 감정을 공명 시키는 유일한 방법이 바로 이것이기에. 작가 하루키 또한, 편집의 과정 속에서 이를 고요히 소망했으리라, 나는 감히 짐작해 본다.


2025. 02.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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