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년 12월 1일
강안채 시즌 2 오픈 후
갑작스러운 화재로 인해 봉화여행과
강안채 방문도 하지 못하고 예약을
환불받으셨던 분들에게
저렴한 금액으로 언제라도 다시
오실 수 있도록 한 분 한 분 연락을 드렸다.
집을 다시 지었다는 반가운 소식을 듣고,
바로 예약을 하며 찾아주시기도 하고
또는 응원의 연락을 보내주시기도 했다.
그렇게 재오픈하면서 연말부터 연초까지
예상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찾아주시면서
다시 바쁜 강안채가 이어졌다.
그러나 나에게는 큰 숙제가 하나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강안채를 찾아주셨지만
내가 꼭 모시고 와야 할 한 사람이 있다.
그분은 바로 90세가 넘은 나의 외할머니다.
화재가 나서 전소가 되어버린 예전 강안채를
처음 오픈했을 때, 외할머니는 축하와 함께
얼마나 좋은지 꼭 한번 가 봐야 하는데..
하시면서 나에게 여러 번 말씀하셨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손님 받는 거에 바빴는지
조용할 때 한번 오세요라는 빈말만 남기고
할머니를 이곳에 한 번도 모셔오지 못한 채
그때의 강안채는 영영 사라졌고,
나에게는 죄송함과 큰 후회가 남았다.
그래서 다시 오픈 한두 번째 강안채에는
찾아주시는 손님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외할머니를 꼭 모셔야 했다.
가족들과 함께 일정이 맞는 날짜를 정하고
나의 아이들과, 나의 부모님 그리고
나의 부모님의 부모님이신 외할머니까지
우리는 그렇게 4대가 한자리에 모였다.
외할머니는 처음 오는 이곳을
구석구석 구경하고 손으로 만져보면서
"니가 고생 많았다"라는 말만 반복하셨다.
그렇게 한바탕 실내 구경을 하시고
겨울이라 더 춥기 전에 야외에 나가
벽돌 화로에 불을 피워놓고,
다 함께 불멍을 시작했다.
야외 화로에 따뜻하게 불을 피워놓고
피어오르는 불을 모두가 바라볼 때
할머니는 입을 삐죽하며 한마디 하셨다.
" 시골에 쓰레기 태우면서 실컷 보는데"
"이게 뭐가 좋다고 다들 쳐다보고 있노?"
.
"할머니 요즘은 이렇게 피어오르는 불을.."
바라보면서 가만히 있는 걸 불멍이라고 해요"
.
"왜? 뭐가 재밌다고? 불이 날까 봐 겁만 나지."
"아 그러고 보니, 그래도 이 집에 불이 잘 났다"
"불이 났으니까 니가 이렇게
더 좋은 집도 짓고 아주 잘 됐다"
우리 가족은 외할머니의 말 한마디에
크게 웃다가도, 눈가에 눈물이 맺히기도 했다.
그렇게 할머니를 처음 모시고 와서 함께
맛있는 음식을 먹기도 하고
할머니가 좋아하는 고스톱과
가족들 다 함께 모여 윷놀이까지 즐겼다.
하루 온종일 즐겁다고
웃으시는 나의 할머니를
그날 나는 처음으로 본 것 같았다.
할머니의 행복한 모습을 바라보는 내내
할머니만큼이나,
나에게도 큰 행복이 전해졌다.
우리는 때때로 가장 소중한 사람을..
나를 잘 이해해 주고, 받아주겠지라는
안일한 그 생각으로 우선순위에서
조금씩 뒤쪽으로 미루는 경향이 있다.
너무 가깝다고 소중함을 모르고,
익숙함에 소중함을 잊기도 한다.
항상 영원할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게 사람이든, 사랑이든
사라진 강안채가 되든..말이다.
할머니가 다녀가시고 며칠 후
손님이 많아 한창 바쁘던 어느 날이다.
12시간의 야간근무 후 3시간의 쪽잠을 자고
강안채에 도착하여 퇴실 청소를 하면서
여전히 몸은 피곤하고, 정신은 살짝 멍하지만
내 마음만은 항상 행복하고 즐거웠다.
그러다 퇴실하시는 손님의 감사 문자 하나에
비타민과 피로회복제를 먹은 듯이
피곤한 몸과 멍한 정신이 정상으로 돌아온다.
무엇이 나를 이렇게 행복하게 하는 걸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우리의 강안채가
누군가에게 사랑받고, 추억이 된다는 것에
깊은 감동과 뿌듯함이 나를 행복하게 했다.
강안채와 직장의 차이는 무엇일까?
직장에서 일할 때 나에게 이런 감정이 있었나?
옛날부터 차츰 기억을 더듬어보니,
첫 입사했던 날의 행복감이 있었다.
그리고 이후에는 월급과 성과급 등 통장에
돈이 들어오는 날, 그 하루 정도는 행복했다.
15년이라는 근무 시간이 흘러 지금은
그런 월급날마저 당연시되고,
회사에서의 나의 만족과 즐거움보다
그저 돈을 벌기 위한 수단으로 버티고 있었다.
월급이 아니라면?
무엇을 하든 돈을 벌 수 있다면?
직장을 계속 다녀야 되는 이유가 있을까?
직장을 안 다니면, 난 무엇을 해야 될까?
내가 좋아하는 것을 무엇일까?
스스로 물음에 물음을 따라가다 보니,
어릴 적 나의 꿈이 생각이 났다.
맞벌이를 하시던 부모님 밑에서
항상 집 열쇠를 목걸이에 걸고 학교를 다녔다.
홀로 집에 돌아오면 식탁 위에 차려놓은
식은 밥과 반찬이 있었고, 홀로 먹기보다
학교 친구들을 데리고 와서 함께 먹고는 했다.
친구들 앞에서 나는 반찬과 밥을 넣고
계란 프라이까지 만들어 넣고서
비빔밥을 만들어주기도 하고
김치를 썰어 김치볶음밥, 오므라이스까지
허기진 친구들은 허겁지겁 먹고서는
엄지를 치켜세우며 칭찬을 했다.
그때의 나의 꿈은 요리사였다.
그러나 그때는 잘 몰랐다.
내가 요리를 좋아한다고 생각했다.
집에서 혼자 밥을 먹을 때는
나의 요리가 즐겁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 보니, 내가 좋아한 건 어릴 때
내가 만들어 주는 요리를
무엇이든 최고라며 맛있게 먹어주던
배고픈 친구들의 칭찬 한마디 한마디가
나를 행복하게 만들었던 것이었다.
그때의 마음과 지금의 마음이 다르지 않다.
나의 요리에 행복한 친구들과
나의 강안채에 행복한 손님들
거기에서부터 전해지는 그 마음으로
나는 더 행복한 것이다.
"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 "
마흔에 나에게 질문을 던져보았고
한참 후에 나는 다시 그 답을 찾았다.
내가 좋아하며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일을 하면서
어릴 적 꿈처럼 더 많은 사람들에게
행복함을 만들어 주는 일을 해야겠다.
내가 좋아하며, 잘할 수 있는 일
그리고 사회적으로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일
그런 일은 쉽게 찾는다고 찾아지지 않는다.
생각해내려고 해도 떠오르지가 않는다.
그런 일이 어떤 게 있을까?
똑똑하지 않은 머리 한쪽 구석에서
가끔 생각만 하고 있을 어느 날이었다.
오랜만에 부모님 집에서 생일을 맞아
다 함께 저녁식사를 했다.
어릴 때부터 좋아해서 즐겨 먹던
태평초와 함께 다양한 음식을 차려놓고
모두 술을 한잔하고 있을 때
아내가 한마디 했다.
"어머님~진짜 이 태평초는
장사를 해도 되겠어요"
아내의 칭찬 한마디에 엄마는 웃으면서
"뭐 조금만 맛있으면, 장사를 하라고 그래!!
이제 장사할 그럴 나이도 아니고,
좋아하는 우리 며느리만 맛있게 드세요!"
그렇게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주고받으며 이야기하는 찰나
나에게는 그때 그 한마디가
내 머리에 강하게 꽂혔다.
'나는 태평초를 하면서 살아야겠다!'
태평초는 내 고향 영주에서
근근이 내려오는 향토음식이다.
태평초를 처음 들어보는 사람들은
태평초? 그거 고추장 아니야? 하며
태양초 고추장을 대신 이야기하기도 한다.
향토음식과 노포에 대한 권오찬작가님의 책
'한국인의 오래된 밥집을 찾아서'의
태평초에 대해 짧게 적힌 글을 인용하면
태평초는 메밀묵이 들어간 돼지김치찌개다.
유래는 다양하지만, 궁중에서 먹던 탕평채를
그리워한 이들이 청포묵과 소고기 대신
메밀묵과 돼지고기를 넣어
김치찌개로 끓여 먹었다는 설이 있고
어지러운 세상 태평성대를 기원하며
먹었던 민초 백성들의
겨울 음식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어찌 되었든 이 음식은
한양의 궁중 음식이었던
탕평채를 누군가가 힘들고
어려운 시대에 이 땅에 전한
귀한 음식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내가 좋아하는 우리 영주의 향토음식
그러나 이제는 만드는 이도 몇 남지 않은 음식
나는 이 태평초를 더 많은 사람에게 알리고
더 많은 사람들이 즐겨 먹을 수 있고
더 많은 사람들이 행복하길 꿈꾼다.
나는 태평초로 태평성대를 이루고 싶다.
그렇게 다가오는 미래를 계획하며
나는 다니던 직장과 헤어질 결심을 했다.
퇴사일은 2026년 3월 1일!
15년이라는 장기근속을 마치며..
대한독립만세운동을 외치는 그날처럼
직장인으로서 자유 독립을 선언하려 한다.
그리고 그날이 오기 전까지 독립에 대해
피나는 노력과 많은 것을 준비해야 한다.
파워 J형이지만, 언제나 그렇듯
우리의 인생은 계획처럼 되지 않는다.
그러나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되듯이
모든 게 계획처럼 되지 않고,
시간이 조금 늦어져도 괜찮다.
돌아가는 길에서도 배우고
늦어지는 시간에서도 버티며
그 길을 걸어가 나는 그곳에 도착할 것이다.
나는 그렇게 살 것이다, 그리고..
"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
철학적인 이 한 문장은 지브리로 유명한
일본 애니메이션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의 인생 이야기가 담아
만들어진 애니메이션의 제목이다.
난해한 내용으로 많은 사람들의 기대와는 다르게
호불호가 많았고, 나 또한 지루함에
영화를 끝까지 못 보았지만
이 영화의 호불호처럼 우리 삶에도
사람마다 다름을 서로 비교할 것 없다.
정해진 답이 없이 다양한 답이 있다.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스스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고,
나만의 답을 찾아야 되는 것이다.
지금까지 파워J형인 나의
계획처럼 되지 않은 이야기도
누군가에게 그런 질문이 되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