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정신과 약을 먹습니다.

27살 대기업 직장인, 마음의 병 치유기 - 6편

by 오터

나는 원래 감기약도 잘 먹지 않는 위인이었다. 약에 지는 게 싫은 그런 별종.

하지만, 마음의 병은 약을 먹지 않고 낫지 않았다.

이번에는 눈 딱 감고 의사 선생님의 말을 들어 보기로 했다.


처음에는 아침, 점심, 저녁 하루에 총 3번 약을 복용했다.

하루 종일 약 기운에 취해있어야 한다는 게 자존심이 상했다. (이때까지도 아직 정신을 덜 차린 듯하다)


약을 먹으니 몽롱했다. 부정적인 생각할 틈조차 주지 않을 정도였다.

잡생각도 훨씬 줄어들고 잠도 푹 자고 일어났다.

단, 약 복용 초반이라 그런지 저녁에 먹은 약이 아침까지도 깨지 않아서

출근하면 “어제 술 많이 마셨어?” 질문을 들을 정도로 휘청거리고 다녔다.

회사에는 비밀이지만 늦잠을 자버려 반반차를 쓰는 경우도 발생했다. (다행히 프로젝트 기간이 아니라 넘어갈 수 있었다)


“이것 봐. 정신과 약은 먹을 게 못 돼” 생각하기도 했다.

그래도 불행 중 다행은 복용 초기라 일주일에 한 번씩 내방해 상태를 진단받고 약을 새로 받아왔다.

업무가 바빠 정신이 없어 약 먹을 시간이 없다고 말씀드리니 아침, 저녁 약만 처방해주시기도 했으며

(당연히 점심까지도 약 효과가 지속되도록 종류도 바꾸셨다) 아침에 늦잠을 잔다고 했더니 나에게 맞는 약으로 변경도 해주셨다.


점차 약 먹는 거에 적응했다.

약을 빼먹지 않고 먹기 위해 아침에 휴대폰 알람을 맞추거나 먹지 않던 아침밥도 먹기 시작했다.


몽롱해지던 정신은 약 먹고 2주째 정도 되니 되돌아왔다.

구글에 나오던 ‘바보 된다’ 후기는 거짓이었다.

물론 약 복용 초반에는 그럴 수 있다.

제일 중요한 건 약의 효과가 당장 나타나지 않더라도 꾸준히 병원에 가 나의 증상을 토로하고

맞춤형 약을 만들어가는 것. 선생님은 자주 볼수록 좋은 것 같다.


지금은 약을 먹으면 30분 안에 잠에 들고 쭉 잠에 들어 7시간을 잔다.

아침에 개운하게 일어난 게 얼마나 오래되었나 싶은 나날도 있었다.

잠을 푹 자니 회사에서 능률도 올라갔고 체력적인 한계도 많이 극복했다.


또, 우울증 약은 확실히 부정적인 생각을 하지 않게 뇌를 차단하는 역할을 한다.

그렇다고 일상생활에 필요한 생각을 차단시키진 않는다. 딱, 부정적이고 잡생각만 차단시켜 준다.

마지막으로 공황장애 약은 세상이 나를 두고 빙빙 돈다는 느낌을 막아줬고, 심장이 빨리 뛰는 것도 많이 나아졌다.


혹시나 이 글을 읽는 독자들 중 약 복용을 망설이는 사람이 있다면 “꼭 의사 선생님 처방 하에 약을 먹어라”라고 말해주고 싶다.

생각하는 만큼의 부작용은 없을 테니.

keyword
이전 05화27살 대기업 직장인, 마음의 병 치유기 - 5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