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friend in need is a friend indeed
2015년, 나는 이라크 중앙정부를 예방한 뒤 아르빌을 방문했다. 대한민국이 파병한 자이툰 사단과 함께 협력했던 페쉬메르가 부대가 그 자리를 이어받아 주둔하고 있었다. 그 부대장 아지즈 소장이 반갑게 환대로 맞이해준다.
노老장군은 우리 자이툰부대와의 추억을 이야기하며, 예전 사진을 꺼내 들고 영상도 보여주면서 소회를 나누었다. 십 년 전 그들은 멀리서 온 이국적인 용사들과의 역사적인 만남을 기억하기 위해 한순간 한순간을 촬영하여 기록해 놓았을 것이다. 그의 얼굴에는 자이툰부대와 함께한 시절의 좋은 기억이 고스란히 묻어 있었다.
정성스러운 오찬을 부대원과 함께하였다. 우리에게 익숙한 꼬치에 끼운 양고기, 닭고기 케밥부터 난생처음 본 요리까지 맛있게 먹었다. 포도 잎에 쌀, 고기, 향신료를 넣고 삶은 건강해 보이는 요리, 밀과 고기를 반죽해 다진 고기와 양파를 넣고 튀긴 동그란 노란색 음식, 병아리콩 반죽을 튀긴 팔라펠, 용케 이름을 기억해냈다.
매사 빈틈이 없어야 하는 군인이라서일까, 식탁 위에 과연 빈틈이 없을 정도로 접시가 겹겹이 포개어 얹어놓은 융숭한 대접이었다. 이는 모두 위험하고 열악한 전장에서 현지인 마음을 얻어 성공적으로 임무를 완수한, 자이툰부대를 거쳐 간 선배들 덕분이라 여겼고 참으로 감사했다. 그들을 보면서 극진한 환대의 진정한 모습과 마음을 깊이 느꼈고 배웠다.
이라크 북부 쿠르드 지방정부가 있는 아르빌은 현대와 고대가 어우러진 곳으로 8,000년 이상 역사를 간직한 고대 문명 도시다. 아르빌에는 우리의 작지만 위대한 흔적, 자이툰 도서관이 자리하고 있다. 이 도서관은 한국과 쿠르드족 간의 우정이 피어오른 상징적인 공간이다. 자이툰부대가 이라크에서 평화와 재건을 위해 헌신하며 지어준 이 도서관은 쿠르드 지역에 희망과 교육의 씨앗을 심었다.
시간이 흘러, 8년이 지난 어느 날, 자이툰 도서관 측의 시설 보수와 에어컨 증설 요청을 받았다. 이 요청은 그저 도서관을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자이툰부대의 추억과 우리의 발자취를 다시 한번 되살려달라는 외침이었을지도 모른다.
도서관에는 자랑스러운 태극기와 함께 쿠르드 지방정부의 깃발도 나란히 펄럭이고 있었다. 이라크 헌법에 따라 자치권을 부여받은 쿠르드 지역은 아르빌을 포함한 네 개의 주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곳에서 쿠르드족은 자신들만의 정체성과 문화를 지켜가고 있다. 쿠르드족은 그들의 역사 속에서 독립을 꿈꾸며 오랫동안 생존을 위한 투쟁을 이어왔다.
터키, 시리아, 이란 등 여러 국가에 흩어져 있는 그들은 독립 국가를 이루지 못한 세계 최대의 소수민족이다. 하지만 이라크 내 쿠르드족은 비교적 나은 상황에서 자치권을 유지하고 있으며, IS와의 전투에서 그들의 전투력은 빛을 발했다. 특히 페쉬메르가 부대는 혁혁한 전공을 거두며 쿠르드 지역뿐만 아니라 유전을 포함해 이라크 요충지 다수를 피 흘려 지켜냈다.
도서관에 들어서니 자이툰부대 지휘관과 참모 이름이 새겨진 동판이 내부 전시실에 자랑스럽게 걸려있었고, 나는 그들의 명예를 되새기며 지원 요청을 우리 공관과 국방부에 보고했다. 결국, 논의 끝에 외교부가 그 지원을 맡기로 하였다. 국방부가 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대한민국의 이름으로 도움을 주게 되었다.
자이툰부대는 2004년 파견된 이래 현지인에 대한 존중과 배려를 바탕으로 ‘두 손으로 하는’ 주민 친화적인 민사 활동을 전개하였고, 이를 통해 주둔군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불식시킴은 물론 그들로부터 ‘신이 주신 최고의 선물’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이라크 사람들과 진심 어린 소통을 통해 마음을 얻고, 평화와 재건의 중요한 역할을 해냈다. 그들이 남긴 흔적은 후대에도 이어져야 할 중요한 유산이었다. 어려울 때 돕는 진정한 친구가 빛을 발하는 법이다. 우리는 그들과 함께한 소중한 인연을 계속해서 유지해 나가야 한다.
쿠르드 지방정부와의 관계 또한 그 당시 중요한 문제였다. IS와의 전투가 한창이던 때, 쿠르드 군은 무기나 장비 지원을 대한민국에 희망했으나, 그 요청은 쉽지 않은 문제였다. 이는 역내 재외국민에 대한 납치, 테러 등 위협에 대한 우려나 이라크를 지원하는 데 있어 국제연대 전체 차원으로 공여하는 여부, 쿠르드족 관련 주변국들과의 관계 등 간단치만은 않은 사안이다.
무기 지원이나 방산분야 협력은 현실적으로 제약이 따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비군사적인 분야 지원은 할 수 있었다. 자이툰 도서관의 보수처럼, 우리는 과거의 인연을 소중히 여기고 그들과 함께 나아갈 수 있는 길을 계속해서 찾아야 한다.
이곳 아르빌의 풍경은 사막의 메마름 속에서도 신선한 바람처럼 다가왔다. 고원지대에 있는 아르빌은 중동의 여느 지역과는 다른 매력을 품고 있었다. 그 안에서 우리는 평화와 희망의 씨앗을 심으며, 이라크와 쿠르드족의 미래를 함께 그려나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