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투복을 입은 국왕
암만은 ‘그럼’의 충청도 방언이자 요르단 수도다. 여태껏 분쟁지역 얘기만 했는데 겸임국 요르단은 잠시 숨을 돌리는 쉼터와 같은 곳이다. 이라크와는 공기가 달라.
이라크의 이웃 나라 요르단Jordan을 떠올리면 사람마다 다르게 생각할 수 있겠지만, 농구 황제 마이클 조던Jordan이나 미국 유명 골퍼 조던Jordan 스피스를 떠올리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요르단 국왕 압둘라 2세가 가장 먼저 생각난다.
특히 2015년, 요르단 공군 조종사 알카사스베 중위가 연합 공습 간 전투기 추락으로 비상탈출 했는데 IS에게 생포돼 붉은 수의를 입고 철창에 갇힌 채 화형당했던 끔찍한 사건이 기억에 남는다. 물론 수의나 화형은 이슬람국가IS 측 말이지 그가 죄수라 볼 수 없으므로 맞지 않다고 본다. 당시 압둘라 2세는 전투복을 입고 직접 보복을 천명하며, IS의 거점을 강력하게 공습했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나는 이라크 무관으로 활동하며 요르단 무관직을 겸했는데, 요르단 측에서 우리 요청에 대한 피드백을 더 신속하게 주고, 협조적이었다는 인상을 받았다. 영화 <바디 오브 라이즈>에서도 요르단 정보국 책임자와 미국 중앙정보국CIA 요원이 협력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영화이긴 하지만 이는 요르단의 효율적이고 협력적인 자세를 엿볼 수 있는 부분이라 생각한다.
요르단은 영화 <인디아나 존스: 최후의 성전>에서 등장하는 나바테아 왕국의 고대 도시 페트라로 유명하며, 영화 <마션>의 무대인 붉은 사막 와디럼은 화성의 배경으로 사용될 만큼 아름다운 풍경을 자랑한다.
요르단은 중동에 있는 국가이지만, 사해와 아카바 항구, 그리고 종교적 유적지가 있어 많은 순례객이 방문한다. 하지만 중동의 다른 나라들과 달리 석유가 나지 않아 경제적으로는 부유하지 않다. 남 일 같지 않아 아쉬운 마음이 드는 건 왜일까.
요르단 군은 중동에서 강군으로 평가되며, 군 통수권자인 압둘라 2세가 직접 군을 지휘한다. 요르단의 국가 전략은 중동 평화 협상에서 중재자 역할을 하며, 정보 공유를 통해 서방 국가와의 관계를 중요시한다. 특히 요르단은 미국과 영국 등 서방 국가로부터 군사적 지원을 받고 있으며, 우리와도 군사 비밀정보보호 협정을 2016년에 체결하기도 했다.
요르단은 경제적 여건 때문에 고가의 군 장비를 직접 구매하기 어렵고, 노후화된 장비가 많다. 그런데도 요르단 군은 중동 지역에서 강군으로 자리 잡았으며, 우리 국방과학연구소와 비슷한 압둘라 왕립 방위산업국을 통해 방위산업 역량을 강화하고 있다.
요르단에 오니 좋긴 좋다. 행동의 제약이 거의 없이 자유롭게 다닐 수 있다. 자유가 이렇게 좋은지 그동안 모르고 살았다. 겸임국 업무를 볼 수가 있고, 요르단 역사나 요르단만의 문화를 공부할 수 있으며, 다른 외국 무관을 만나 그들의 활동과 생각을 아는 것도 도움이 되었다.
그리고 난민캠프와 역사 유적지 등 현장을 둘러볼 수 있으며, 필요한 생필품도 사고, 무엇보다 공기가 다르니까. 군부대에 대한 무관단 시찰을 하면서 와디럼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저녁 식사 후, 아랍 특유의 "띵가 띵가 띵가르르~" 기타와 가야금 중간쯤의 소리를 내는 경쾌한 현악기 연주에 맞춰 민속춤을 보여준다.
아랍 전통 의복인 카키색 '솝'에 울긋불긋한 '케피아'를 머리에 쓴 장정 일곱 명이 흥겹게 군무하며 노래를 부른다. 아랍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그런 밤이다.
밤하늘을 수놓은 무수한 별 보기를 고대했는데, 결국 못 봤다. 밤이 되고 자정에 가까워져 가는데도 별이 거의 없다. 문명과 동떨어져 보이는 이곳 사막에도 전기 불빛으로 주변이 훤하게 밝아 볼 수 없는 게 아닐까.
그렇다면 한밤중에도 안보일 것 같은데 하면서 자기 합리화로 냅다 자버렸다. 왜 이렇게 잠자는 데 진심인 건지, 물론 밤중에 별이 떠 있었을지 알 수 없지만. 또 언제나 여기 와 볼 수 있다고, 후회막급은 이럴 때 쓰라고 있는 말일 게다.
숙영지와 큰 바위 사이에 돋보이는 보라색 꽃나무가 시선을 끈다. '자카란다'라는 남미가 원산지인 아열대 나무란다. 대륙 간 식물 교류는 대항해시대 이후 지금까지도 진행 중인듯하다. 사막에 보라색 예쁜 꽃이 피어나다니, 자연의 힘, 생명력이 위대함을 새삼 느낀다. 척박하고 황량함만 주어지는 것은 아니구나, 한편으로는 공평하다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