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아 청년과의 인연
겸임국 요르단 암만 북쪽, 시리아 국경 근처에 자리 잡은 자타리 난민캠프. 2017년 11월 방문했는데, 난민캠프를 방문한 것은 이번이 두 번째였다. 첫 번째는 카슈미르에서 유엔 평화유지활동 중 봤던 작은 규모의 임시 난민촌이었는데, 그곳은 정식 난민캠프라기보다는 피난민을 위한 임시 거주지 정도였다.
국제관계 세미나에 참석하면서 요르단 주재 외교관, 군 관계자들과 함께 자타리 난민캠프를 방문했다. 세미나에서는 대테러전과 요르단의 관련 경험, 군사 외교의 역할, 중동 지역의 안보 도전 등을 주제로 다양한 토의가 이루어졌다.
세미나 프로그램의 하나로 난민캠프를 둘러보게 되었는데, 이 캠프는 단번에 엄청난 규모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에 비해 시설은 불비해 을씨년스러워 보였지만 하나의 큰 도시 면적만큼이나 커 보였다. 여의도 두 배 정도 크기로 시리아 난민 6만 명을 수용하고 있었다. 물론 수년간 지속되어 온 시리아 내전으로 발생한 난민이다.
날씨가 맑기만 했던 캠프는 난민 담당 기구인 말도 어려운 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UNHCR과 함께 구호 활동 대표주자인 유니세프UNICEF, 세계식량계획WFP에 의해 운영되고 있었다. 캠프 한편에 20개 주요국을 포함하여 여러 공여국의 국기가 붙어있었는데, 그중 태극기도 보였다. 난민의 집은 함석으로 만든 임시가옥, 오래된 컨테이너와 국방색 천막이 혼재돼있었다.
난민캠프를 돌아보며, 예전에 스웨덴 스톡홀름을 잠시 경유하면서 만났던 시리아 난민 청년 카심이 떠올랐다. 그는 매우 친절하게 초행길인 내 질문에 답해주며 스톡홀름 시내를 안내해 주었다. 그날 나는 그가 보여준 친절이 단지 그의 처한 상황 때문이 아니라, 그 사람 성품 때문이라는 생각을 했다.
요르단에는 이웃 나라 팔레스타인에서 건너온 사람들이 많았다. 이들이 모두 난민인지는 국제법적인 문제라 알 수 없지만 팔레스타인 출신인 것만은 틀림없다.
앞서 다뤘듯이 평화롭던 땅에 이스라엘이 들어가 국가를 세우면서 문제가 생겼다. 3차 중동전 후 이스라엘은 성지 회복을 위해 예루살렘의 팔레스타인 지역에 정착촌을 짓기 시작하면서 그곳에 살던 팔레스타인인 땅을 빼앗고 추방했다. 계속해서 정착촌과 난민 수는 증가했다.
나를 도와 운전해주는 우리 대사관 현지 직원도 팔레스타인 출신이다. 그들은 바로 눈앞에 두고도 갈 수 없는 고향을 매우 그리워하고 있었다.
자타리 난민캠프에서 특히 눈에 띄었던 것은 전자 바우처 시스템이었다. 난민이 신분증 같은 카드를 통해 매월 일정 금액만큼 생필품을 구매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방식이다. 과거 종이 쿠폰에서 발전한 이 시스템은 캠프 내 상점에서 사용되었고, 이는 국제기구 업무가 스마트하게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했다.
어느 조립식 건물 벽에 먹음직스러운 3단 케이크가 그려져 있다. 조금 전에 식사하고 왔건만 내가 먹고 싶을 정도로 그림 솜씨가 일품이다. 얼마나 간절히 먹고 싶었을까. 이 지방 사람이 즐겨 먹는 케이크는 정말 달다. 피난 와서 힘들고 지친 일상에 단것을 먹으면 고단함을 좀 달랠 수 있을 텐데.
길모퉁이에 아이들이 삼삼오오 모여 참새처럼 재잘거리며 어울려 놀고, 웃는 모습이 보인다. 다행이다. 아이들은 모름지기 그래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건 왜일까. 절망 속에서도 희망이 보이는 듯하다.
캠프에는 급수탱크, 화장실, 의료시설, 경찰서 등의 기초적인 인프라와 빠져서는 안 되는 학교가 마련되어 있어 난민 생활을 지원하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캠프 생활이 안정적이라 해도, 난민이 자기 집에서 생활하는 것만큼 편안하겠나. 하루빨리 시리아 내전이 종식되어 난민이 고향에 돌아가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진심으로 기원했다.
내 바람이 통했던 걸까, 이 글을 쓰는 동안 독재자 아사드 정권이 축출되어 시리아 내전은 마침내 종식되었다. 카심 연락처를 물어둘 걸, 축하 인사라도 건네게. 얼마나 기쁠까. 카심이 조국 시리아로 돌아가길! 아랍에 봄이 오길!
(다음 마지막 17화는 연재 중인 아프가니스탄 편까지 끝나면 최종적으로 실는게 맞아 보여서 잠시 멈췄다가 8월에 올릴게요. 너른 양해를 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