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대표를 은퇴하면서

우리 함께 양탄자를 타고 날아볼까요!

by 다문화인

내가 하는 일이나 의사소통에는 어려움이 없다. 물론 활동하다 보면 스트레스가 있고 주변 사람과 갈등이 있을 때도 있지만 그거야 뭐 한국에 있든 어디든 마찬가지일 터.


옵서버로 근무할 때는 회의가 들기도 했다. 내가 관측소를 세워 동향을 감시하고 정찰하며 결과를 보고해도 달라지는 것이 보이지 않는데, 이 활동이 과연 분쟁국 간 평화 정착에 도움이 될까 하는. 그러나 그렇다고 안 하고 있을 수는 없고 하지 않으면 아예 바뀔 수조차 없는 거 아닌가 하는 마음으로 다잡고 계속해나간다. 하나의 밀알이 모여야 일구고 나중에 거둘 수 있지 않겠나.

그리고 언제 닥칠지 모르는 물리적인 위협이 늘 주변에 잠재적으로 존재하고 있지만 군복을 입고 있는 한 내가 감당해야 할 몫이니까….


마음속에 번민이 생길 때 떠올리는 말이 있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힘들고 힘들던 사관학교 시절에 수백 번, 수천 번 되뇐, 나를 버티게 해준 말이었지. 어떡하겠는가, 내가 이 환경을 바꿀 수 없고. 중이 싫으면 절을 떠나라 했던가, 나는 떠날 수 없다. 내가 자원한 일을 중도에 접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고, 내가 선택한 일은 끝까지 해낼 자신이 있다. 암!


단지 가족과 떨어져서 외로웠다. 옆에 동료가 있기는 하지만 6개월 이상 1년, 또 3년이란 기간이 짧지는 않다. 여건이 괜찮은 곳은 가족과 연락이 되니까 그나마 다행이었다.




날 지탱해주는 또 다른 힘, 태극마크! 이 일이 어떤 의미가 있든 없든 나는 국가대표다. 내가 입고 있는 군복이 우리나라 국가대표 유니폼이다. 이런 어떤 구성원에서 언젠가는 한 지역이나 세계 사람을 이끌어가는 내 모습을 기대해볼 수 있지 않은가.


언제나 국가대표로 뛸 때마다 오른쪽 팔에 새겨진 태극기를 보며 자부심을 느꼈다. 그 무엇보다 나라를 위해 일했다는 사실은 가장 큰 영광이었고, 너무나도 감사한 마음뿐이다. 함께 했던 우리 전우, 외국인 동료 덕택에 잘 마쳤고 같이 이뤄낸 성과는 우리 모두의 것이다. 함께 했던 순간을 평생 기억할 것이다.


국가를 대표하며 매 순간이 배움의 연속이었지 않나 싶다. 나 또한 실수했고, 때로는 기대를 충족하지 못한 순간도 있었다. 하지만 언제나 내게 주어진 일과 분쟁지역의 평화 유지를 우선으로 삼고 최선을 다했다. 크고 작든 이룬 것은 모두의 힘이었으며, 부족한 부분은 후배들이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갈 것이라 믿는다.




여러 나라에서 오지 스테이를 하면서 만나고 함께 일한 사람의 친절과 고마움을 갚겠다 생각했었지만, 제대로 실천했는지 모르겠다. 물론 그때 그 사람을 다시 만나기는 어려우니, 그 나라 다른 사람들에게 베풀어야 하는 거지만….


코트디부아르 자췻집 옆방에 살았던 인도 동료, 바그다드에서 가깝게 교류했던 파키스탄 무관. 그들에게서 또 베풂을 받은 건 아닌지, 마음이 가난해서는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전쟁의 참혹함을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목격한 군인으로서, 내가 바라보는 진정한 승리는 평화다. 앞으로는 우리가 지키려고 노력해온 이곳저곳에 더 이상 무기나 폭력이 아닌 대화와 이해가 자리하기를 바란다.


이제 나의 꿈은 단 하나. 모든 이들이 두려움 없이 자유롭게 숨 쉬고, 갈등 대신 협력이 이끄는 세상에서 살아가는 것. 어렵겠지만 그런 세상이 곧 오기를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기원한다.


3년간 정들었던 이곳을 드디어 떠나는구나. ‘이라크, 마아 쌀라마’(안녕히 계십시오). 늘 덧붙였던 인사말, ‘일랄 리까’(다음에 또 만납시다)! 다음에 또 만날 수 있을까? 어지러운 정세의 ‘여행금지’ 나라가 좀 안정되어 외교부 여행경보가 흑색에서 적색 이하로 완화 조정될 날이 오기를 고대해 본다.



영화 <알라딘>에서 책과 지도에 있는 나라에 집착하며 성안에만 갇혀 세상을 바라보는 재스민 공주에게 알라딘이 양탄자를 태워주면서 “세상은 직접 봐야 해요. 책과 지도로 모든 세상을 알 순 없어요.”라고 말한다. 독자 여러분에게 직접 세계를 경험해 보기를 권하고 싶다.


외교관이나 군인과 같은 공직자의 길, 때가 혹시 지났다면, 글로벌 이웃을 도울 수 있는 개발 협력 분야, 국제공무원이 될 수 있는 유엔 등 국제기구와 같은 더 넓은 세계로 도전해 보기를 추천하면서….

우리 함께 양탄자를 타고 날아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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