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이 여름을 만나면
빛은 선으로 내려와, 결국 투명한 빛깔을 띤 면으로 무수히 펼쳐진다.
그래서 우리는 햇볕 아래서는 지독하게 따가웠지만, 햇살 속에서는 무한히 포근할 수 있었다.
내가 겨울보다 여름을 사랑하는 이유도
빛의 융단을 조금 더 오래 감싸 안고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여름 예찬자인 나에게조차 햇빛은 종종 고통스럽지만,
나는 햇살 속에서 분명 아늑함을 감각할 수 있다.
산책을 하다 보면 세상에는 참 신기한 것들이 많다.
빛은 그저 빛 그 자체일 뿐일 텐데,
세상은 어떻게 이토록 빛 하나에 온통 초록으로 물들었다가도,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모든 꾸며짐을 스스로 치워버릴 수 있는 걸까.
참으로 경이로운 세상이다.
인간은 결코 해독할 수 없는 빛의 어떠한 언어를,
어쩌면 자연은 읽어내는 능력이 있는 건 아닐까.
이 유치하면서도 찬란하고, 명랑한 상상이 내 머릿속을 가득 채운다.
‘일어나렴. 드디어 잎을 펼칠 수 있는 계절이 왔단다.’
‘그동안 수고 많았어. 오늘이 지나면, 내일은 조금 더 가벼워질 거야.’
나는 지금, 그들이 이야기하는 이 여름 안에 있다.
오늘의 빛을 만나려 한다.
오늘의 초록을 매만지려 한다.
오늘의 계절을 마음속에 품어두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