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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정말, 청춘 속에 있는 걸까

잠잠히 ; 말없이 가만히

by 필연

인간은 살아가며 죽어가는 존재이기에, 어쩌면 모두가 애처롭다.

죽음, 그 너머의 두려움 때문이라기보다 ‘나의 생에서 더는 기대할 수 없음’이라는 모종의 안타까움에 가까운 연민을 건넨다.


생의 장단(長短)마저,

어쩌면 날 때 달고 나온 탯줄을 끊어냄과 동시에 정해졌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래서 우리는 ‘청춘’이라는 단어 하나에 그토록 아련해졌던 것일지도 모른다.

이미 멀리 떠나가 버린 젊음을 속 깊이 그리워하며, 그 안의 싱그러움과 정열을 두 번 다시 만날 수 없다는 확신이 마치 나 자신을 향했던, 이제는 끝나버린 첫사랑 같은 시절처럼 느껴진다.


주변 사람들은 내가 청춘의 시간 속에 살고 있다고 말했다. 지금의 나는 더 많은 기쁨과 즐거움에 기꺼이 젖어 있어야만 한다고 했다. 그 무엇도 두려울 것이 없을 때라고 부러워들 했다.


하지만 나는 도통 모르겠다.

청춘이라기엔, 나는 정체되어 있고, 고독하며, 특별할 것 없는 하루의 잠잠한 수면 위에 늘 부유하고 있는 듯하다.


마음을 솔직하게 표현하기에는 겁이 많고,

어디론가 호기롭게 떠날 용기도, 방향을 꺾을 패기도 없다.

나는 늘 주춤거리고, 서성거린다.


나는 그저 고요함과 평온함으로 살아내길 바란다.

그것은 광활하고 넓은 영역으로써 나의 꿈이며 이상이고, 내 삶의 구심점이 되는 가장 높은 가치다.

물론, 이상과 완벽히 일치하진 않더라도, 그에 평행하게라도 가까워지기 위해 나는 부단히 애쓴다.


그러나 애쓴다는 것은 결국 발버둥이라는 뜻이고,

활발한 동태는 오히려 평화보단 투쟁의 시국이란 증명이다.


타인이 말하는 보편적 기쁨과 행복의 성질, 그리고 내가 지향하는 삶의 보편성은 상당히 다르다.

그래서 어쩐지, 나는 닮아가려 애쓸수록 멀어지는 기분이다.


사람들은 나에게 힘을 빼보라고 했다. 잡고 있는 것들은 내려놓아도 좋다고 나를 안심시켰다. 그러면 그 많던 잡다한 생각들과 꼬리를 무는 걱정들 모두, 잠들 것이라 위로했다.

그제야 사랑은 피어나고, 나는 청춘으로 익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정말 그럴 수 있을까.

들숨에 공기의 냉감을 느끼고 날숨에 육체의 이완과 내려앉음을 느끼는 이 순간에,

묵었던 근심과 어지러움이 정말 모두 잠재워질 수 있는 걸까.


나는 정말, 청춘 속에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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