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류(漂流)
어쩌면 나는 언제든 떠날 수도 있고, 떠나도 되는 사람일지 모른다.
떠날 수 있는 이유는 백가지 넘게 떠오르는데, 떠나지 못할 이유는 마땅히 없었다.
기차역에 올 때마다 나는 늘 이런 생각이 들곤 한다.
분주히 움직이는 수많은 인파 속에서, 나는 마치 잔잔한 파도에 철썩이며 떠밀리는 자갈 같았다.
하염없이 두리번거리는 수많은 고갯짓들 속에서도, 나는 쉽게 휘날려 갈 것 같았다.
이곳에 나를 기다리는 사람도, 나를 찾는 사람도, 그래서 내가 찾아야 할 사람도 없다는 사실은 나를 더 처량하게 만든다.
어릴 적 서울은 그저 부푼 풍선 하나만으로도 하늘을 날 수 있을 것만 같던, 명랑한 꿈이자 동심이었다.
그런데 어른이 되고 나니, 그 풍선은 아주 조금씩, 천천히, 아무도 모르게 바람이 새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나는 매 순간, 새 바람을 힘껏 불어넣어야만 했다. 완전히 찌그러져버린 풍선을 다시 띄울 수 있으리라는 천진난만한 믿음은, 이제는 치기 어린 오기에 불과하다.
서울 이곳은,
화려하지만 진실로 가질 수 있는 것은 적고, 사람은 넘쳐나지만 진심이 닿을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갈 곳은 많지만 막상 갈 수 있는 곳은 없고, 마음 편히 머무를 수 있는 자리도 내게는 없는 것 같다.
이 적막과 적적함은 후회도 아니고, 현재에 대한 불만도, 그렇다고 현실에 대한 원망도 아니다.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애씀이며, 고됨이고, 분명 분투해야 하는 시간이 맞을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지금은 한때이고, 이 절기가 지나가면 언젠가 다 웃으며 넘어갈 수 있는 추억이 될 것이라고 하지만, 나는 그 말이 벅찰 때가 있다.
마치 지금의 파도가 지나가면 더 큰 파도가 올 테니, 고작 이 정도의 파도에 놀라지 말라는 묵직한 예고 같기도 하며, 혹여 이 파도에 내가 영영 휩쓸리더라도 ‘그래, 이 세상 끝까지 가보자’는 용기를 강요당하는 것 같기도 해서, 초조하다.
나는 용감하지 않고, 강하지 않은 사람이라는 걸 너무 잘 안다.
이 바다는 여전히 두렵고, 나는 어김없이 파도에 놀란다.
수영을 가르쳐 주는 이도 없어서, 나는 어쩔 수 없이 스스로 물속에 뛰어들 수밖에 없었다.
겁은 많은데 수영엔 영 소질이 없어, 자꾸만 짠 바닷물만 들이킨다.
이제야 조금씩 힘을 빼는 법을 어렴풋이 알 것 같은데,
잔잔한 물결조차도 나를 다시 데려오지 않고, 아주 저 멀리로 떠밀어 보내버린다.
이제는 내 발바닥이 저 아래 바닥과 맞닿을 수도 없고, 내 아래가 얼마나 깊고 어두운지도 가늠조차 할 수 없다.
잠수하지 않는 이상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볼 수도 없고, 기꺼이 마주할 자신도 아직은 없다.
다들 이렇게 살아가는 걸까?
내가 이곳에서 버틸 수 있는 이유는, 더는 내려갈 곳조차 없다는 외로움과
이곳이 세상의 낭떠러지라는 믿음에서 파생된 절박함을 구명도구 마냥 꼭 껴안고 살아내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이곳은 언제까지나 나를 낯선 이방인으로 남겨둘 것만 같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떠밀리고, 표류해야만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