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장 죽으면 후회하게 될 것
운전면허증에 쓰인 증명사진을 끼워 둔 액자가 책상 위에 있다. 크기는 대략 성인 남자 손바닥만 하다. 사진의 테두리 쪽은 거울 같은 프레임으로 꾸며져 있다. 낮에 볼 때 방 천장이나 얼굴의 일부가 비치지만, 밤에 스탠드만 켜 두었을 때는 검은색이 된다.
그 액자와 사진은 사진사님께서 주신 선물이었다. 새해가 되어 책꽂이 정리를 하다가 발견했다. 어딘가 마음에 들진 않아 책꽂이에 처박아 두었었는데. 쓸모를 다하지 않고 내버려 두는 건 또 아닌가 싶어서 책상 위에 잘 보이도록 세웠다. 내심 과거의 자신이 응원과 기운을 주지 않을까 믿고 싶었다. ‘올해는 좋은 직장 구할 수 있을 거야!’ 같은 응원을.
햇수로 5년 전이라서 그런지 더 어려 보였다. 조명빨, 포토샵빨을 받은 효과가 크지만 말이다.
하루는 친구 H한테 그 사진을 카톡으로 보냈다.
마이크: 25살의 나야 만 23인가 24인가
H: 풋풋 귀엽다 근데
H의 “근데”라는 단어가 지금은 아니라는 말을 할 것 같았다. 재빠르게 반박하려 했는데 H에게서 곧이어 답장이 왔다.
H: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 안 늙었는데 눈빛만 달라
H: 눈빛이 죽었어 오래전부터
연달아 H가 보냈다. 무슨 뜻인지 바로 이해해서 실소가 터졌다. 동태 눈깔. 그 부분은 객관화되어 있다. 이젠 거의 기본값이 되어 버렸다. 특히 관심 없는 이야기를 들을 때, 일할 때, 출퇴근길에 영혼이 없는 편이다. 한마디로 자신의 의지가 아닌 어떤 행위를 할 때 눈빛이 죽어 있다.
계속 책상 위에 두니 의식적으로, 무의식적으로, 필연적으로 그 사진과 마주친다. 낮에는 사진의 피사체 중심으로 보게 된다. 얼굴과 머리 스타일과 몸의 형태 같은 것들. 반면 밤에 볼 땐 미래의 영정 사진을 보는 것처럼 기묘하다. 젊어서 죽으면 장례식장에 이 사진이 올라가겠구나, 싶을 정도이다. 책상 앞에 앉아서 보면, 죽은 뒤 영혼이 되어 잠시 방을 둘러보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유사 사후 체험을 잠깐 하고 나면, 꼭 노인이 된 다음에 죽지 않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훑고 지나간다. 늙어서 제명을 다하지도 않았는데 사고로 목숨을 잃은 뉴스를 최근 들어 자주 접해서일까. 죽음이 100살 부근에 없을 수도 있겠구나. 사진 속 모습이 죽기엔 한창인 젊은이인데, 검은색 테두리 안에 있으니 그런 일도 현실 가능하겠다 싶었다. 자연스레 그다음에 이런 생각이 찾아왔다.
‘당장 내일 죽게 된다면 어떨까. 쿨하게 이번 생을 놓아줄 수 있을까?’
돌아보면 인생은 행복할 때보다, 기쁘지도 슬프지도 않거나, 우울하거나, 삶이 복잡하게 느껴질 때가 많았다. 그렇다고 해서 이번 생을 쉽게 놓아줄 수 있다는 건 아니다. 100% 놓지 못한다고 죽기 직전에 생각할 것 같다. 만약 그렇게 죽게 되면, 영혼이 빠져나와서 지긋지긋하지만 익숙한 이 집을 둘러보다 갈 수도 있을 것 같고, 좀 더 미련이 강하면 이승을 떠돌다가 퇴마사에게 퇴마를 당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뭐가 그렇게 아쉽냐고 스스로에게 물으면…, 글쎄. 주변의 시선을 너무 신경 쓰면서 산 거? 모두의 기대를 충족시키며 살아온 건 절대 아니지만,(그럴 능력도 없다.) 적당히 눈 밖에 나지 않게끔 살아왔다고 생각한다. 죽기 전에 이런 아쉬움을 남기지 않을까.
‘더 나댈걸. …윽.’
더 나댈걸. 상대방이 넌 아니라고 해도 밀어붙일걸. 할 말은 하고, 하고 싶은 거 하고, 더 많이 경험할걸. 상대방의 눈총과 개소리를 듣고도 가만히 있지 말걸. 누구의 눈 밖에 나든 말든 알 바인가? 어차피 죽으면 다 소용없는데! (이러다 퇴마 당할 듯.)
나대지 못했음에 대한 아쉬움이 가장 크게 남을 것 같다. 사는 것은 죽어 가는 것과 같은 상태이다. 죽어 간다고 생각하면 인생을 이렇게 보내도 되는 건지, 막막한 인생이 아까워 죽겠다. ‘그럼 당장 내일부터 네가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면 되잖아?’라고 물어볼 수 있지만, 또 주변의 시선이 걸린다. 답답함의 쳇바퀴를 도는 느낌이랄까. 쥐띠라서 햄스터 같은 인생을 사나.
액자의 프레임이 까맣게 될 때마다 죽음을 떠올리게 되었다. 죽음이 얼마 남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이쯤 되면 죽어서 한번 떠돌아다녀 봐야 ‘살아 있을 때 나대 볼걸….’ 하며 뼈저리게 알 성싶다. 문득 있을 때 잘하라는 트로트 노래 멜로디가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