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크어(mike語)

자기주장

by 마이크mike

대학생 때 우리나라 소설을 분석하는 강의를 들었다. 교수님께서 조별로 분석한 내용을 발표하는 과제를 내주셨다. 납득시킬 만하고 그럴듯한 논리를 내세우기 위해서 네이버와 구글에서 갖가지 자료들을 긁어모았다. 나름대로 분석한 내용을 토대로 발표하면, 교수님께서 다시 발표 내용을 보충해 주셨는데, 이런 말씀을 자주 하셨다.


“여러분이 이해한 걸 여러분만의 언어로 풀어야 돼.”


‘인터넷에서 찾은 내용을 자신의 말로 고쳐야 진짜 이해한 것이다’, 정도로 대학생 땐 알아들었던 것 같다. 학점만 잘 받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할 때였다.

그 말씀이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선명해진다. 자소서를 쓸 때도, 회사에서 보고할 때도, 나를 파헤치고 있는 지금도.


알고 있는 걸 나의 말로 번역하는 것.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나를 통해 거르는 작업은 곧 자신을 드러내는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하지만 도통 그런 게 익숙하지 않다.


초등학생 때 집에 국영수사과 교과서 해설집 세트가 있었다. 해설집은 교사용 교과서처럼 모범 답안이 정리된 책이다. A와 B 사이의 거리를 구하는 수학 문제, 심지어 본인의 의견을 묻는 국어 질문조차 해설집을 찾아봤다. 거기에 쓰인 답만을 하나뿐이고 훌륭한 정답처럼 여겼던 것 같다.


그때 공부 습관을 잘못 들인 건지, 정해진 답을 외우고 받아들이는 게 아직도 익숙하다. 답이 없는 자유로운 질문에도 나만의 의견을 말하는 게 어렵다. 내 생각이 무엇인지 파악하는 것조차 시간이 걸린다. 대답하기 전에 “음….” 하고 핸드폰 진동 소리 같은 감탄사를 붙이는 게 버릇이다. 그리고 말 한마디 던지는 게 어려운 건, 혹시나 내 답이 틀릴까 봐 두렵기 때문이다. 나의 답이 뭔지도 모르겠고 자신도 없어서 그동안 남들이 쓰는 답을 베껴 왔다.


‘한국에서 대학교는 정해진 수순이니까.’

‘일단 대학교는 들어가야지.’


거의 사상(?)과도 같은 저 말이 반대로 행동하면 낙오자가 되는 게 아닌가 싶기도 했다. 그 말이 하도 짙게 깔려 있어서 입학만 하면 그 뒤의 삶도 정해지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래서 성적에 맞추어 학과를 선택했고, 그렇게 결정한 학과는 국문학과였다.


하지만 1학년을 마치고 바로 휴학했다. 보기 중 답을 고르는 공부가 아닌, 주관식 질문들을 다루는 대학교 강의에 적응하기 어려웠다.


‘일단 공무원 되기만 하면 먹고사는 걱정 없다.’

‘항공사에 취직하면 항공권도 저렴해서 여행도 편하게 갈 수 있다고 하더라.’


그 뒤로도 남들이 좋다고 하니까 내린 선택을 따라 하였다. 해설집에 적혀 있는 답을 들춰 보는 것처럼. 그런 결정들은 그 일을 하고 싶게 만드는 어떤 동기 부여를 주지 못해서, 몇 달 뒤 포기하거나 어느 때에 흐지부지 넘어갔다.


아무 생각 없이 어딘가로 휩쓸리는 것 같을 때마다 내면에 집중하고 싶었다. 저것들을 너무나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조차 살펴보지 않았다.

해설집을 보지 않고 쓴 답은 뭔지. 나는 어떤 말을 하고 있는지. 나만의 언어, 마이크어로 말하고 싶었다.


레이니즘, 잇츠 효리쉬, 장윤정 트위스트도 아니고, 마이크어라니. 나르시시스틱하고 요상한 조합 같아 스스로도 어이가 없지만, 그런 유명한 분들이 아니더라도 자신을 표현하는 건 모두에게 해당하지 않을까, 감히 생각해 본다. 아직도 약해 빠진 줏대에 낮과 밤 사이에 다른 인간이 되지만 말이다.

지금은 띄엄띄엄 말하는 외국인 같지만, 마이크어에 유창한 원어민이 될 날을 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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