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능과도 같은
막춤을 좋아한다. 아니, 살아온 날 내내 좋아하는 거면 사랑하는 건가.
밥보다 면을 좋아한다는 것처럼, 이유 불문하고 좋아하는 것 중에는 막춤이 있다.
막춤은 인생 전반에 깔려 있다. 제일 오래된 춤 기억은 예닐곱 살 때였다. 장나라, 보아의 노래를 흥얼거리면서 방에서 자주 춤을 췄었다. 아마… 매일 췄을지도 모른다.
춤을 추던 중 방문을 벌컥 열고 들어오는 삼촌에게 되레 성질을 낸 기억이 있다. 정성스러운 끼를 보이는 게 부끄러웠다. 그래서 가족들 앞에선 한 번도 추지 않았던 것 같다. 만약 방문을 열고 당당하게 췄었다면 부모님께서 댄스 학원에 보내시지 않았을까?
막춤이 세상 사람들에게 공개된 때는, 추정하기를 초등 5학년 수련회였다. (너무 라떼 발언 같아 민망하지만) 2박 3일 중 둘째 날 저녁은 캠프파이어를 했었다. 흡사 초딩들의 클럽인 듯 신나는 가요에 춤을 추는 시간이 포함되어 있다. 난 그곳에서 유명한 방송인의 유명했던 춤인, 저질 댄스를 추었다.
왜 하고많은 춤 중 그 춤이었는지 모르겠다. TV에서 보고 뇌에 입력해 뒀다가, 언젠가 춰야겠다고 생각했나 보다. 손 들고 발표하는 걸 제일 싫어했는데, 그땐 남을 의식하지 않았다.
정신없이 춤을 추면서 주변을 둘러보니, 친구들이 꽤 쳐다보고 있었다. 엄청 시끄럽고 주변이 잘 보이지도 않았는데, 조용한 친구가 저질 댄스를 추는 게 나름 쇼킹했나 보다. 그제야 음악이 꺼지면, 흑역사로 남겠다는 걱정이 조금 들었지만, 탱탱볼마냥 움직이던 중이어서 멈추지 못했다. 일단은 그냥 즐기기로 했다.
방에서만 갇혀 있던 ‘막춤 자아’를 풀어놓기 시작하니, 친구들과 노래방을 갈 때면 매번 스텝을 밟으며 노래를 불렀다. 그 꼴을 본 거의 모든(초등학교~대학교) 친구들이 고맙게도 많이 웃어 주었고, 좋아해 주었다.
막춤으로 크게 효과를 본 적은 고1 때였다. 같은 중학교 친구 두 명 정도만 진학한 여자 고등학교였다. 다 처음 보는 친구들이었고, 낯가림이 최고조였다. 입학 첫 주 때 반에서 열댓 명이 동그랗게 모여 서로 얘기하며 친해지는 시간을 가졌었다.
처음 보는 친구들에게 유쾌한 사람임을 각인하고 싶었는지, 노래방 가는 걸 좋아한다고 말했다. 입이 방정이었던 걸까. 뒤이어 한 말 때문에, 갑자기 반 친구들이 다 보는 앞에서 춤을 추고 있었다.
“제일 좋아하는 노래는 세븐의 열정이야!”
친구 한 명이 갑자기 핸드폰으로 그 노래를 틀더니, 나머지 친구들이 모두 “우와~.” 하며 판을 만들었다. 교실에서 추는 막춤은 처음이었다. 순식간에 귀와 목덜미에 열기가 달아올랐다. 하지만 입학 첫 주였고, 친구들의 눈이 처음으로 다 내 쪽을 향했다. 발을 빼기 힘들었다.
친구들 주변을 박자에 맞춰 어슬렁어슬렁 돌기 시작했다. 호응을 유도했다. 노래의 하이라이트인 ‘뜨! 거! 운! 가! 슴에~!’ 후렴 가사에 팔 동작을 크게 부풀리니 덩달아 반응이 좋았다. 결과적으로, 매력 어필(?)은 대성공이었다. 친구들이 먼저 번호를 물어봐 주고, 친근하게 다가와 주었다. 막춤 덕분에 순조롭게 고등학교 생활을 시작할 수 있었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속담은 정말이다. 10년 넘게 지난 지금까지 방에서 막춤을 추곤 한다. 막춤은 나의 일부이다. 어찌 보면 평소 자아와 완벽한 반대편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남을 의식하지 않는 것도, 잘하든 못하든 상관 않고 시작하는 것도, 그 자체로 즐기는 것도, 막춤 자아를 장착할 땐 가능하다. 한 가지 바라는 건 막춤 자아가 더 확장되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댄서들이 추는 멋있는 동작도 아니고 삐걱대는 팔다리에 불과하지만, 별 각오 없이 멋대로 움직여 보는 것. 체면 차리지 않는 자연스러운 그대로의 모습. 노래가 들리지 않고 춤추지 않는 동안에도 그 자아가 어느 방구석에 숨지 않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