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 위 수세미 사장님

포기하지 않는 삶 앞에서

by 마이크mike

작년 크리스마스이브에 수세미 두 개를 샀다. 발랄한 분홍색과 파란색, 강아지 모양 손뜨개 수세미이다. 사고 보니 크리스마스트리 장식으로 어울릴 정도로 깜찍했다.


사실 손뜨개 수세미에 관심이 있지도 않았고, 깜찍하지만 사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단지 파시는 사장님이 조금 신경 쓰였다.


그분은 바람이 매서워질 때부터 집과 역을 오가는 길, 하천을 잇는 다리 위에 계셨다. 빨간 패딩에, 빨간 목도리를 목에서 머리까지 칭칭 둘렀다. 담요 위에 여러 색의 손뜨개 수세미들을 몇십 개 놓고는, 바닥에 가만히 앉아 계셨다. 일어서서 손님을 맞을 준비도 안 하고, 계속 같은 자세로 땅만 보면서. 어떤 날은 직접 수세미를 뜨고 있기도 하셨다.

어쩐지 장사를 하시던 분이 아닌 것처럼 보였다. 낡은 옷차림과 그분 얼굴이 현재의 삶을 슬며시 말해 주었다.


그 다리를 지나가는 낮과 밤에 거의 항상 그분이 계셨다. 낮에 저 멀리서부터 보이면 ‘오늘도 계시네.’ 생각했다. 밤에는 계실 때도 있었고 안 계실 때도 있었는데, 영하를 웃도는 밤이면 괜스레 더 마음이 안 좋았다.


밤에는 보통 수세미를 깔아 둔 담요를 다른 담요로 가리고, 사장님이 계시던 자리는 큰 천으로 덮여 있었다. 캐리어가 있는 듯 덩치가 조금 있었다. 꼭 캐리어나 짐 같은 것이길 바랐다.



집에 가는 어느 날도 그분을 지나쳤다. 다리를 지나면 횡단보도를 두 번 건너야 한다. 두 번째 횡단보도 신호등을 기다리면서 뒤를 한번 돌아봤다. 그 자리 그대로 계셨다. 그리고 그 옆에는 퇴근 시간대라 사람들이 많았다. 좀 전, 전날, 그 전날의 나처럼 바쁘게 다리를 건너가고 있었다.


저 많은 사람이 옆에 있으니 또 다르게 보였다. 순간 머릿속에 이런 생각이 스쳤다.


‘여태 나도 저렇게 이 횡단보도까지 왔구나.’


집으로 돌아온 그날 밤, 막막한 미래에 대해 생각하다 문득 그분의 잔상이 스쳤다. 찬 바닥에 앉아 수세미를 파셨던 사장님. 상황이 좋지 않아도 본인의 삶을 포기하지 않으신 듯했다. 갑자기 그분이 생각난 건, 나보다 그분의 인생이 훨씬, 훨씬, 녹록지 않겠다고, 나도 모르게 그 장면을 리플레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루 종일 같은 자리에서 그저 지나가는 사람들의 모습만 시야에 걸린다면 어떨까. 그분 인생을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지만, 한 달 넘게 지켜보기만 해도 한 가지는 알 수 있었다. 누구보다 겨울바람이 제일 추울 거라는 걸 말이다.


이런 식으로 스스로 돌아보게 되어서 죄송했다. 그리고 계속 포기하지 않고 살아가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몸이 웅크려지는 찬 바람 말고, 잠깐이라도 따뜻한 공기가 있는 곳에 쉬실 수 있었으면 싶었다.


수세미를 사는 것밖에 할 수 있는 일이 떠오르지 않았다.



매번 지나칠 줄만 알았지, 그 사장님 앞에서 멈춰서 수세미를 구경하는 것도, 성격상 많은 용기가 필요했다.

사장님께 수세미를 파시는 건지, 한 개에 얼마인지 여쭤봤다.


“얼마어치를 살 건데요?”


항상 (약간 무섭게) 무표정으로 앉아 계셔서 낮은 목소리 톤을 연상했는데, 생각보다 톤이 높고 성격이 밝아 보였다. 지갑에 있는 현금 12,000원을 꺼내며 말했다.


“이 정도면 얼마나 살 수 있어요?”

“동물 모양이 좀 더 비싸고, 동그란 수세미는 이거보다 싸요. 그 정도면 동물 모양 두 개 살 수 있어요. 아가씨처럼 많이 사면 동그란 것도 서비스로 드려요.”


눈앞에 있는 강아지 모양 수세미 두 개를 골랐다.


“그럼 이거 두 개로 할게요.”

“네, 고마워요~. 그럼 동그란 것도 두 개 같이 드릴게요. 참, 이 강아지 모양은 샤워 볼로도 쓸 수 있어요.”


감사하다고, 많이 파시라는 말과 함께 그 자리를 떠났다. 그 말은 진심이었다. 가능한 많이 파시고, 다리 위에 찬 바람 맞지 않고, 외롭지 않은 삶을 사시길 바랐다. 수세미를 또 사러 올 정도의 넉살은… 솔직히 되지 못했다.


영하 10도 안팎의 추위가 찾아올 즈음, 사장님은 어디론가 사라지셨다. 한편으로 다행처럼 여겨졌다. 강추위 속 바람을 내내 맞는다면, 정말 건강을 잃을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아무도 없는, 다리 위 익숙한 자리를 보면, 가끔 그 사장님이 생각난다. 여전히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살고 계실지 궁금하기도 하고, ‘지난겨울보다는 잘 사셨으면 좋겠다.’ 싶기도 하고. 힘듦에 핑계 대지 않겠다고 스스로 다잡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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