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의 잇몸 ( ┐┌ )

벗어나고 싶지만 때로 기대하고 싶은

by 마이크mike

1년에 한 번 스케일링을 하러 동네 치과에 간다. 초등학생 때부터 내리 다니던 곳이라 티는 안 내지만 치과 의사 선생님, 간호사 선생님께 내적 친밀감이 크다.


첫 회사에 다니고 있을 때 연차를 쓰고 치과에 갔던 날이었다. 리클라이너가 기울어지며 얼굴 위로 조명이 켜졌다. 곧이어 아―, 하라는 선생님의 말씀에 입을 벌렸다. 의료 기기로 입안을 사진 찍으시더니, 한숨을 푸욱 쉬셨다. 조명이 꺼지고 리클라이너가 올라갔다. 사진을 보여 주시면서 말씀하셨다.


“보통 혀 밑에 있는 잇몸이 평평한데, 마이크 씨 잇몸은 옆으로 많이 자라나 있죠? 아래쪽 공간이 좁아요. 이를 무는 습관이 있으면 뼈가 이렇게 자라나거든요?”

“맞아요. 저 잘 때도 이를 꽉 물고 자요.”

“완벽주의 성향이 있는 사람들이 이래요. 그날에 있던 일들은 그날에 흘려버려야 되는데 자면서도 그 일을 계속 생각하는 거예요. 평소에 뭘 많이 버티고 있다는 뜻이기도 해요.”


잇몸 뼈가 계속 자라나면 어디에 좋지 않다고 이어서 말씀하시긴 했는데, 순간 울컥하는 감정을 추슬렀어야 해서 잘 기억나지 않는다. 사람이라면 아래쪽 잇몸 뼈가 당연히 그렇게 생긴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버틴다는 증거였었다니…. 진료 중에 갑자기 우는 이상한 환자가 되지 않으려 안간힘을 썼다.


욕망은 커다란 잇몸이 되어서 ‘네가 이만큼 나를 참고 숨기고 있었어.’라는 듯 친히 나타나 주었다. 그때 당시 내 욕망은 아마도 회사 일을 중심으로 뻗어 나갔을 것이다.

마감을 맞춰야 하는데, 누가 되지 말아야 하는데, 지금 너무 부족하니 더 잘해야 되는데, 됐고 다 집어치우고 쉬고 싶다.

이런 욕망이었을 것이다. 부담감과 압박감의 모양새로 짓누르고 있었다. 당연히 일하면서 책임감은 필요하지만, 나는 그 이상으로 나를 갈고 있었다. 그렇게 일할 만큼 의미 있는 일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 그 의미를 찾지 못해서 첫 회사는 2년 좀 넘게 다니고 그만두었다.


한 해가 넘어갈수록 내가 욕망덩어리라는 진실을 점점 깨닫게 되는 것 같다. 직장인일 때만 욕망에 짓눌린 게 아니라, 뭐가 되고 싶은지 모르겠던 학창 시절부터 이미 욕망으로 가득 찼었는지 모른다. 보여 주기 부끄러운 무언가만 있는 거라고 느꼈었다. 그리고 그것조차 욕망이라는 걸 그땐 알지 못했다.


‘진짜’ 원하는 걸 찾고 싶다. 진심으로 원하는 것 말이다. 그렇지만 새로운 시작을 두려워했다. 잘 해내지 못하는, 실패할 모습이 먼저 그려지기 때문이다. 그럼 그딴 생각은 갖다 버리고 대충 먹고살면 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건 진심이기 때문에 잘 잊히지도 않는다.



20대 초반에 “네 주제를 생각해.”라는 말을 들은 적 있다. 도전하고 싶은 일이 생겼다고, 처음으로 진심을 담아 용기 내서 말했는데 돌아오는 답변은 냉정하고 매몰찼다. 그런 말을 들은 게 너무 분했다. 왜 내 주제를 맘대로 정하냐고, 내 주제가 진짜로 뭔 줄 아냐고, 반항심이 들었다. 한편으론 조용하게 욕심부리지 않고 사는 게 역시 내 주제라는 생각이 있었는데. 그걸 수긍해 버렸다.

주변에 현실적으로 사는 사람들이 있다.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고, 결정에 시간 끌지 않고, 빠르게 적응하고, 변하는 상황에 충실한 사람들. 정말, 제일, 부러워하는 사람들이다. 자신에게 그 이상의 기대를 하지 않는다는 얘기를 들었고, 또 그렇게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난 자꾸 기대하게 된다. 11월 말부터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며, 반짝이는 전구를 한 크리스마스트리와 밤 12시에 산타 할아버지의 선물을 기다리는 꼬맹이처럼. 눈이 오는 크리스마스, 거실의 트리, 산타와 선물. 모두 희박하거나 없다는 걸 안다. 단지 그런 희망과 기대를 놓지 않고 살고 싶은 것이다. 그게 욕망의 일부라면 아직은 버리고 싶지 않다.


이런 것들을 품으면서 잇몸 뼈도 그렇게 커졌다. 그리고 욕망을 드러내고 싶은 마음도 점점 더 커지고 있다. 이 시리즈도 그렇게 시작된 것이다. 어리고 미숙하고 사춘기 중딩이 가질 법한 얘기지만, 이제 나니까. 이런 모습을 부정하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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