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적도, 영원한 아군도 없다.

by 고인물

"영원한 적도, 영원한 아군도 없다"

세계 정치를 이야기할 때 많이 쓰는 말이다. 이에 대표적인 나라가 우리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다. 우리나라는 미국과 중국의 사이에서 늘 외줄 타기를 한다. 그러다 보니 언제는 아군으로 또 언제는 적군으로 만나기도 한다. 사실 말이 아군과 적군이지 '더 친하냐' 아니면 '덜 친하냐'의 차이다. 정말 적으로 대하는 경우도 있기는 하지만 아주 극소수의 일이며, 그렇게 적을 두고 사는 것 역시 권장할 만한 일은 아닌 것 같다.


사회도 마찬가지다. 인관관계부터 직장 내 조직 그리고 작게는 가족관계까지 상황은 늘 바뀐다. 영원한 아군이라고 여겼던 사람이 적군이 되는 경우는 흔히 볼 수 있다. 그것이 가족이라고 해도 말이다. 가족도 그럴지인데, 사회생활 속의 일부인 회사에서는 오죽할까! 회사 내에서 그리고 회사 대 회사의 관계 속에서 우리는 서로를 믿고 배신을 당하고 또 가끔은 배신을 하기도 한다.


적이 아군으로 바뀌고 아군이 적군으로 바뀌는 경우의 원인을 찾아보면 사실 내가 원해서라기보다는 상황이 그렇게 만드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스스로 원했다기보다는 상사의 명령으로, 회사의 이익을 위해서, 손해를 피하기 위해서 상황 때문에 바뀌는 경우가 더 많았다. 그런 것을 보면 천성적으로 악한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천성적으로 선한 것 같다.


적과 아군이 되는 것은 상황의 전환이 되었을 뿐이다. 단지, 그 상황이 내가 원한 상황이 아니라는 것과 나는 상황이 변화했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 문제일 뿐이다. 그만큼 직장생활에서 내가 원한 상황이 오는 것이 쉽지 않고, 내가 모르는 상황이 벌어지는 일은 많다. 회사의 말단 사원들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회사의 임원이 된다고 하더라도 마찬가지다. 임원이 말단 사원보다 상황이 나은 것은 맞다. 하지만 그 임원도 역시 장기말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오히려 적에서 아군으로, 아군에서 적으로 변하는 경우는 임원이 되었을 때 더 많은 겪는 경우도 많다. 어찌 보면 회사를 대하는 자세가 바뀌기 때문에 그런지 모르겠다.


아군과 적군의 변화에 대한 대응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어떤 이는 먼저 변화하면 되는 것이 아니냐고 말할 수 있겠지만, 그 조차도 상대방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모르기 때문에 답은 아니다. 그럼에도 내 나름대로의 대응법을 알려주자면, 적을 만이 만들지 않아야 한다. 당연한 말이지만 적은 적을수록 좋다. 앞서 말했듯이 우리는 적이 아니라 '더 친하냐', '덜 친하냐'의 상황이 더 많다. 하지만 적은 다르다. 적이라 함은, 전쟁에서는 싸워 이겨야 하는 대상이다. 내가 죽거나, 상대방이 죽거나 해야 하는 것이 적이다.


'적을 일부러 만드는 사람이 있을까?'라고 말할지는 모르겠지만, 사람이 감정적으로 변하면 그런 생각은 하지 않게 된다. 감정을 컨트롤하지 못하고 한순간 욱하게 되어 서로 감정싸움으로 번지게 되면 정말로 적이 되는 경우가 의외로 적지 않다. 어떻게든 트집을 잡고, 잘못을 찾으며, 과거의 잘못도 끄집어내고 상대방을 깔아뭉개려고 한다. 감정의 골은 점점 깊어지고 누구 하나가 다치기 전까지는 서로 강대강의 상태로 간다. 정말 적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나 역시 그런 적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지나서 생각해 보면 거의 대부분이 감정적인 대응이 문제였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렇게 감정적으로 상황을 악화시키지 않았도 충분히 정리될 일이었다. 가만히 있으면 호구가 된다는 말의 의미를 잘못 이해하고 호구가 안 되기 위해서 노력한 결과였다. 무서운 개가 먼저 짖는다고 했던가. 바로 그런 경우다. 호구가 되기 싫어서 먼저 강하게 나가는 것이 최선이라는 바보 같은 생각을 했었다. 주변에서는 얼마나 철없이 보였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적을 만들지 마라. 누군가 내 등뒤에서 칼을 찌를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살지 말아라. 모든 적이 나를 죽어라 공격하지는 않겠지만, 적이 많을수록 그런 공격을 더 많이 받는다는 것은 현실이다. 그런 현실 속에서 살고 싶은 사람이라면 적을 만들어도 괜찮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적을 스스로 만들 이유는 없다. 적이 없는 사람들도 가끔은 공격을 받는다. 그런 공격은 적극적으로 대응하면 된다. 빈도도 적을뿐더러, 적이 없이 아군이 많다면 주변의 도움으로 잘 헤쳐나갈 수 있으니 걱정 마라.


가장 문제인 사람은 적은 많은데 스스로 적이 많다고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다. 이 사람들의 특징은 상대방을 회복하지 못할 정도록 상처를 내면 자신이 승리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회복 불가능한 상태로 만들어서 다시는 덤비지 못하게 하겠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승리자라는 생각에 패배자는 승리자의 뜻을 무조건 따라야 한다는 지극히 원시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현재를 살면서 고대시대의 정서를 따르는 사람들이다. 과거에서 살았다면 잘 살았을 수도 있겠지만 과연 그럴까 싶다.


현재는 예전처럼 물리적으로 싸워서 이기고, 점령자들이 모든 것을 갖는 그런 시대가 아니다. 그런 원시적인 시대조차도 적이 많으면 결국 멸망하는 역사를 가지고 있다. 현대 시대는 경쟁의 시대다. 누군가를 죽여야만 살 수 있는 시대가 아니다. 모든 사람이 모두 잘 사는 이상적인 시대는 아니지만, 과거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잘 살 수 있는 시대임은 분명하다. 이런 홀로 전쟁을 하고 있다면 얼마나 안쓰러운가. 본인은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꽤나 많은 사람들이 이런 시기가 있다. 세상을 전쟁터로 보고 이기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그런 시기가 있다. 시간이 지나서 보면 내가 점령군처럼 행동했는지, 아니면 성군으로서 행동했는지 스스로 알게 된다. 점령군은 되지 말아라. 점령했기 때문에 상대방의 모든 것을 가질 수 있다는 착각에서 벗어나라. 그런 행동은 당신의 적만 늘릴 뿐이니.


영원한 적도, 영원한 아군도 없다는 말은 잘 생각해 보면 언제든 상황에 따라서 사람들이 변화할 수 있다는 말이다. 단지, 그런 것뿐이다. 적이 되었다고 해서 죽도록 싫어하고 싸울 필요는 없다. 또 시간이 지나가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아군이 되어 있을 테니깐. 조금 더 현명한 사람이라면 적보다는 아군의 비율을 훨씬 많이 가지고 있을 테고, 적군도 아군이 되기 위한 방법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적 아니면 아군이라는 구분보다는 주변을 잘 이해하고 함께 할 수 있는 것이 중요하다.


마지막으로 이 모든 내용이 당신이 상대방의 모든 것을 받아주는 일명 “호구”가 되라는 말은 절대 아니다. 싸움을 피하기 위해서는 무조건 양보해야 된다는 생각을 하지는 말자. 양보는 미덕이지만, 당신은 호의를 베푸는 것이다. 당신을 버려가면서 하지는 말아야 한다. 어떻게 할지 모를 수도 있다. 정말 모르겠다면 “아니요”라고 말하면 된다. 그리고 점차 “아니요”라는 단어를 이쁘게 만들어보자. “당신의 제안은 너무 좋지만, 지금 내가 너무 바빠서 도와주지는 못할 것 같아요. 다음에 다시 한번 제안해 주세요”와 같이 “아니요”라는 단어를 이쁘게 만들어보는 것이다. 그게 적을 만들지 않고 당신을 위하며, 상대방도 위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이라고 적어도 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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