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내규에 따라 다르지만 거의 대부분의 회사는 연차를 제공한다. 내가 지금 다니는 회사의 경우, 첫 해 15일의 연차가 주어지고 2년마다 1일씩 추가되는 형태다. 오래 다니면 연차는 늘어난다. 하지만 무한정 늘어나는 것은 아니다. 지금 다니는 회사의 경우, 24일을 최대로 연차의 제한을 두고 있다. 참고로 난 24일을 모두 채웠다.
다른 회사도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다니는 회사는 1년 동안 사용하지 않는 전체 연차 중 절반에 해당하는 연차를 연차 수당이라는 명목으 제공한다. 이 연차 수당을 받기 위해 주변에 연차의 절반만 사용하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다. 개인적으로 연차를 전부 소진하는 경우보다, 연차 수당을 받는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다고 본다. 연차를 다 못 쓰는 이유가 정말 회사 일에 바빠서 그럴 수도 있지만, 대부분은 연차 수당을 목적으로 한다. 무조건 남겨서 수당을 받으려고 한다. 일부 회사에서는 강제로 연차를 소비하게 하는 경우도 있기에 어찌 보면 강제 연차 소진이 아닌 연차 수당을 주는 지금 내가 다니는 회사를 부러워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을 듯하다.
나 역시 20년을 근무하며 연차를 모두 소진해 본 경험은 없다. 사회 초년 시절에는 연차 수당 자체가 목적이 되는 경우도 있었고, 연차가 쌓이면서 정말로 연차를 쓸 타이밍을 놓쳐서 그런 경우도 있었다. 그리고 24일의 연차를 다 쓰는 것도 여러 가지 조건 상 쉽지 않다. 그리고 연차가 쌓이면 사실 회사가 더 편해지는 경우도 있다. 가끔 회사 출근이 연차라는 생각도 한다. 집에서 쉬어 봐야, 아이들 뒤치다꺼리에 집안일들만 가득하니깐.
쉬는 게 쉬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다 보니 연차를 모두 소진하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내가 연차를 모두 소진해야겠다고 생각한 건 대략 3~4년 전부터다. 연차 수당보다는 그 연차를 통해서 정말 내가 원하는 일을 해보는 것이 더 낫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예를 들어 퇴사 후의 일상을 미리 경험해 보는 것이다. 퇴직 후 어떻게 지내면 되는지, 그리고 시간이 자유로워졌을 때, 내가 원하는 일들에 시간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에 대한 사전 경험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 이후로 연차수당보다는 나중에 내가 나의 시간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미리 경험하는 것이 나에게 훨씬 더 필요하다는 생각에 매년 연차를 다 소진하려고 한다. 하지만, 직장인의 비애라면 비애랄까! 쉽지 않다. 내가 원하는 시간에 연차를 쓰기도 어렵고, 여름휴가가 아닌 시기에 1주일 연차를 내기도 눈치가 보인다. (20년을 근무한 나도 그런데 연차가 적은 초년생들 더 그러지 않을까!) 눈치를 주지 않는다고 해도 1주일 시간이 비워지면 누가 나의 일을 해주는 것이 아닌 이상 복귀 후 더 많은 일이 나를 맞이할 것을 알기 때문에 안 쓰는 경우도 많다.
아무리 그렇다고 하더라도, 모든 것을 감안하더라도 난 연차는 모두 소진하라고 말하고 싶다. 다 소진하지 못 하더라도 다 소진하겠다는 마음으로 연차를 계획적으로 사용하라고 말하고 싶다. "그냥 그동안 너무 피곤했으니 하루 정도 쉬어야겠다.", "금요일에 연휴이니, 목요일이나 월요일 연차 써서 어디 멀리 놀러 가야겠다."라는 생각으로 쓸 수 있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런 식으로 연차를 사용하지 않을까 한다. 이런 연차도 나쁘지 않다. 하지만, 정말 연차를 제대로 쓰려면 자신의 시간을 스스로 계획하고 사용할 줄 알게 하는 연차라고 생각한다. '연차니깐 아침에 늦게까지 자야지.'라는 마음이 아닌, '어떻게 해야 나의 하루를 꽉 채울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운동을 하고, 책을 읽고, 그동안 하려고 했지만 못했던 유튜브 영상을 제작해 보고 등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을 해봐야 한다. 회사를 다니면서 시간 때문에 못하겠다고 생각했던 그런 일들을 해봐야 한다.
회사의 소속으로서 일상 중 하루 이틀 쉬는 날이 아닌, 진정한 나로의 삶을 경험할 수 있는 것이 연차이다. 물론 개인적인 일, 가족 휴가 등 나로서의 삶의 경험이 아닌 휴식을 위한 연차도 있다. 그런 연차를 사용하지 말라는 말이 아니다. 그런 연차를 반을 썼다면, 나머지 반은 연차 수당이 아닌 나로서의 삶의 경험을 하기 위한 연차로 사용하라는 의미이다.
아주 재미있는 사실을 하나 알려주자면, 내가 말하는 연차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라는 사실이다. 왜냐고? 그것은 바로 자신이 어떤 삶을 살기를 원하는지를 모르는 사람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모르기 때문에 "연차=휴식"이라는 개념 밖에는 없다. 만약 당신이 웹툰 작가가 돼 보고 싶은 마음이 있다면 연차를 사용하여 일정 기간 동안 웹툰 작가로서의 삶을 살아보면 된다. 당신이 투자가로서의 삶을 원한다면 연차 기간 동안 투자가로서의 삶 살아보면 된다. 당신이 여행가로서의 삶을 원한다면 연차 기간 동안 여행자로서의 삶을 살아보면 된다. 당신이 유튜버로서의 삶을 원한다면 연차 기간 동안 유튜버로서의 삶을 살아보면 된다. 하지만 그렇게 연차를 사용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거의 없을 것이다.
만약 당신이 하고 싶은 것이 있는데 회사를 다니느라 못하고 있다는 일이 있다면, 연차를 활용하여 하고 싶은 일을 경험해 보는 것이 정말 좋은 방법이다. 연차를 쓰더라도 월급이 꼬박꼬박 당신의 통장으로 입금되니 부담이 없다. 그리고 원하는 일이 정말 나와 맞는지 경험해 볼 수 있고 막상 해 봤는데 내가 원하는 것과 거리가 멀다면 다른 일을 계획해 볼 수 있다. 금액적인 부담이 거의 없이 말이다.
자신이 원하는 일을 위해 연차를 사용해 보면 안다. 내가 원하는 일을 위해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이 생각했던 것보다 별로 없다는 것을. 회사를 그만두더라도 다른 필수적인 일들이 내 시간을 차지한다는 것을. 연차를 통해 그런 방해물들을 경험하고 조금씩 그 방해물들을 치워 나갈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다. 당장 생계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에서 말이다.
"회사를 때려치우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거야." 이렇게 호기롭게 이야기하고 회사를 그만두는 순간 남아 도는 시간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고 그저 시간을 죽이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줄 아는가? 내가 원하는 일인 줄 알았는데 막상 해 보니 그렇지 않아 어떻게 해야 할지 감도 못 잡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줄 아는가? "벼랑 끝에 자신을 몰아놓고 해야 가능하다."라는 사람들 중 극소수의 사람만이 그 의미를 안다. 대부분의 사람은 벼랑에서 떨어졌을 때 얼마나 아픈지 모르며, 그 벼랑의 높이조차도 모른다. 그저 '회사를 다니면서는 내가 원하는 일을 할 수 없어.'라는 생각이 가득할 뿐이다.
당신이 원하는 일을 하는 것은 너무나 좋은 일이다. 하지만 하나를 위해서 하나를 포기할 필요는 없다. 하나를 포기하더라도 극단적으로 딱 끊고서 해야 할 필요도 없다. 투명한 물에 검은색 물을 타면 천천히 색이 합쳐져서 회색이 되는 것처럼 하면 된다. 그리고 정말 검은색이 맞다는 판단이 서면 검은색 물을 더 부으면 되고, 그렇지 않다면 투명한 물을 더 넣으면 된다. 그렇게 해도 충분하다.
이런 일들을 연차를 통해서 경험할 수 있다. 이 얼마나 좋은가! "연차=휴식"은 회사에서는 능력 있는 사람일 수 있지만, 자신의 삶을 사는 사람이라면 능력 있다고 말하기 힘들다. 갑작스러운 퇴직으로 우왕좌왕하며 멘붕 상태가 될 가능성이 높다.
우리나라는 노동시장의 자율성이 꽤 경직되어 있는 나라다. 해고가 쉽지 않다는 것은 반대로 이야기하면 입사가 쉽지 않다는 말이다. 노동시장의 자율성이 경직되어 있다는 것은 당신이나 내가 의도하지 않게 직장을 잃은 경우, 다시 노동시장에 참여하는 것이 굉장히 어렵다는 말이다. 우리는 바로 이런 시기에 살고 있다. 이런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서라도 내가 가진 것에 만족하지 말고, 늘 준비해야 한다. 그리고 그 준비는 당신이 어떻게 연차를 활용하는지에 따라서 아주 많이 바뀔 것은 분명하다.
당신이 어떻게 연차를 소비하는지는 나에게는 중요하지 않다. 하지만, 분명히 이야기한다. 연차를 어떻게 소진하느냐는 것도 당신의 능력이다. 능력을 더욱 키울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연차 수당을 빌미로 연차를 소진하지 않으려는 행동은 가능하면 하지 않았으면 한다. 연차를 다 소진하지 못하더라도, 당신이 하고자 하는 일에 대해서는 연차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라. 그게 당신의 미래를 더욱 탄탄하게 만드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