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가 되는 과정
점심시간이 찾아오고 온종일 연정의 눈치만 살피던 혜유는 연정의 곁으로 가 자연스레 웃으며 말을 걸었다.
"같이 점심 먹을래? 오늘 급식 맛있는 거 나와."
".. 나 원래 급식 안 먹어."
"급식을 안 먹어? 그럼 배 안 고파?"
"어. 다른 애들이랑 가서 너나 먹어."
혜유는 시무룩해하며 무거운 발걸음으로 교실을 나서다가 다시 뒤돌아 연정에게 와 팔을 잡아끌었다. 연정은 그런 혜유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놀라 눈이 휘둥그레졌다. 혜유는 씩 웃으며 말했다.
"같이 먹자, 그냥! 나는 너랑 꼭 같이 먹을 거야. 오늘 같이 안 먹어도, 내일도 같이 먹자 할 거야. 포기 안 할 거야."
혜유의 말에 연정은 잠시 고민하다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 그래, 알겠어. 먹으러 가자."
혜유는 연정의 대답에 활짝 웃으며 기뻐했다.
급식실에 도착하고, 혜유와 연정은 급식을 받아 자리에 앉았다. 연정은 급식실이 낯설어 편하게 밥을 잘 먹지 못했다. 그 모습을 본 혜유가 장난스러운 말투로 먼저 입을 열었다.
"너는 무슨 반찬 좋아해? 나는 고기장조림이 제일 좋아."
"그냥.. 다 먹어."
"싫어하는 반찬은 없어?"
"딱히.."
연정의 대답을 들은 혜유가 놀란 토끼 눈으로 연정을 쳐다보며 감탄했다.
"와, 하나도 없어? 그게 없을 수가 있는 거야? 나는 버섯 탕수육. 진짜 그것만큼 배신감이 클 수가 없어.."
혜유의 말을 들은 연정이 피식 웃었다. 연정의 웃는 모습을 처음 본 혜유는 순간 놀랐지만 머지않아 연정을 따라 웃기 시작했다.
"나 너 웃는 모습 처음 봐!"
".. 그래?"
"응! 웃는 모습이 더 예쁘다!"
혜유의 말에 연정은 가만히 미소만 지었다. 연정은 살면서 이런 말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렇게 혜유와 연정은 밥을 다 먹고 교실로 향했다. 연정도 아까보다 더 편해진 듯 보였다. 교실로 가는 길에 혜유에게 종종 놀자고 오는 애들이 있었지만 혜유는 그럴 때마다 오늘은 못 논다고 친절히 답해 주었다. 그 모습을 본 연정은 혜유가 신기하게만 느껴졌다.
교실에 도착하고, 연정은 조심스레 먼저 혜유에게 말을 걸었다.
"너는 맨날 그렇게 웃어주기만 하면 안 힘들어?"
"응? 갑자기 왜?"
"그냥.. 나 같으면 그렇게 못 해줄 것 같아서."
"애들이 나한테 그렇게 먼저 대해주니까 나도 그렇게 대해주는 거야. 너도 마찬가지이고."
혜유의 말을 들은 연정은 이게 진심인 건가, 아님 가심인지 잠시 헷갈렸다. 혜유는 주머니에서 막대 사탕 하나를 꺼내 연정에게 내밀었다.
"먹어."
"어, 고마워.."
혜유는 막대사탕 껍질을 까고 입에 물었다. 막대사탕 냄새가 주위에 퍼지기 시작했다. 연정도 혜유를 따라 막대사탕을 입에 물었다. 막대사탕의 달달함이 모든 생각을 지워주는 것 같았다.
"공부할 거지?"
"어? 아, 응.."
"나 신경 쓰지 말고 해."
연정은 고개를 끄덕이고 문제를 풀기 시작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연정이 무심코 고개를 들자 혜유는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연정도 혜유의 시선을 따라 창밖을 바라보았다. 아파트 말고 보이는 건 없었고 놀이터에서 놀고 있는 어린아이들의 소리가 들릴 뿐이었다.
연정이 그런 혜유를 바라보고 있는데 혜유의 눈에 전에는 보이지 않던 슬픔이 순간 스쳐 지나갔다. 분명 항상 활기차던 눈동자에는 어둠으로 가득 차 있었다.
연정은 머뭇거리며 혜유에게 말을 걸었다.
"혜유야..?"
연정의 목소리를 들은 혜유의 눈동자에 순식간에 다시 빛났고, 혜유는 언제 슬펐냐는 듯이 다시 해맑게 웃으며 답했다.
"공부 다 끝났어?"
"그게 아니라.."
"그럼? 물어볼 거 있어?"
"뭐 보고 있었냐고.. 물어보고 싶어서.."
연정의 질문에 혜유는 잠시 놀란 듯 보였다가 이내 다시 아무렇지 않게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그냥.. 멍 때리고 있었어."
".. 그렇구나."
"별 거 아니야. 너무 신경 쓰지 마."
"응.."
혜유의 말투는 평소와 다르게 조금 어색했다. 거짓말 치는 사람처럼, 연정을 바라보는 눈빛이 떨렸다. 연정은 급히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나, 화장실 좀 다녀올게."
"응? 아, 알겠어! 조심히 다녀와."
화장실에 도착한 연정은 깊은 한숨을 몰아쉬었다. 혜유는 분명 무언가를 숨기고 있었다. 다른 건 몰라도 이것 하나만큼은 분명하다고 연정은 확신했다.
머지않아 연정은 다시 교실로 돌아와 문제를 풀기 시작했다. 혜유는 연정의 앞에 한참을 앉아 있다가 가방에서 노트를 꺼내 무언가를 적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나고, 연정이 문제를 다 풀고 혜유를 보자 혜유는 아직도 무언가를 열심히 적고 있었다.
"뭐 적어?"
"음.. 내가 겪었던 행복한 일들?"
"그걸 왜 적어?"
"힘들 때 나중에도 이거 보고 많이 웃으려고. 웃는 게 보기에도 좋잖아."
".. 안 웃으면 누가 뭐라 그래?"
연정의 말에 혜유의 입가에 있던 미소가 잠시 사라졌다. 혜유는 글 쓰는 걸 멈추고 연정을 올려다보며 답했다.
"아니, 아무도 뭐라고 안 해."
"근데 왜 웃으려고 해? 행복한 일들만 쓰지 말고 슬펐던 일들도 써. 감정은 하나가 아니잖아."
"난 웃는 게 좋아."
".. 그래라, 그럼. 네 마음이니까."
"고마워, 이해해 줘서."
연정은 한참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 너 안 웃는다고 다른 사람들이 뭐라 그래도 나는 안 그럴게. 그러니까 내 앞에서는 안 웃어도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