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연정이 먼저 급식실을 나가고, 혜유는 한참을 말없이 급식판을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불편한 걸까?"
"뭐가?"
"그냥.. 이 상황이."
".. 그럴지도 모르지. 그래도 괜찮다고 했잖아. 우리가 너무 과도하게 예민할 걸 지도 몰라."
"우리가 예민한 게 아니라면?"
"넌 너무 걱정이 많아. 연정이는 괜찮을 거야."
"그러길 바라야겠지.."
혜유와 주환은 함께 급식실을 나섰다. 교실에 가기 위해 계단을 오르던 그때, 소현이 둘을 보고 놀라서 달려왔다.
"너네 진짜 사귀냐?"
"아니래도.. 내가 얘가 뭐가 좋다고 사귄다 그래."
"신혜유, 그건 내가 할 말이거든?"
소현은 혜유와 주환에게 한마디를 더 하려다가 다른 친구들에게 붙잡혀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혜유가 교실로 들어가려던 순간, 주환이 혜유를 잡더니 혜유의 손에 무언가를 쥐어주었다.
"뭔데?"
"너 젤리 좋아하잖아. 그중에서도 곰돌이 젤리. 그거 키링이야. 가방에 달고 다녀."
"네가 이런 것도 주고.. 참 오래 살고 볼 일이다."
"또 그런다. 그냥 감사합니다 하고 받기나 해."
"감사합니다. 됐지? 그럼 나 진짜 간다."
혜유는 반으로 들어가 연정의 앞에 앉았다. 연정은 혜유를 보며 애써 웃어 보였다.
"왔어?"
"응.. 오래 기다렸지?"
"아니야. 근데 그거.. 뭐야?"
연정은 혜유의 손에 들려 있던 키링을 바라보며 물었다. 혜유는 키링을 손에 꼭 쥐며 답했다.
"주환이가 줬어. 걔가 이런 거 줄 애가 아닌데.."
".. 그래도 좋지?"
"이런 거 받아서 좋냐고?"
"음.. 좋지?"
연정은 혜유에게 들리지 않을 정도의 작은 목소리로 혼자 중얼거렸다.
"나는.. 받을 자격도 없는 걸까."
학교가 끝나고, 연정은 집으로 들어갔다. 연정은 신발장에서 신발을 벗고 거실을 지나 있는 연정의 방으로 향했다. 그러다 주방에서 싱크대를 닦고 있는 도우미 아주머니와 눈이 마주쳤다.
".. 다녀왔습니다."
"방에 들어가 있음 금방 간식 준비할게."
"네."
연정은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고 쓰러지듯 침대에 누웠다. 집에 연정의 부모님이 계셨더라면 당장 일어나서 공부 안 하냐고 쏘아붙였을 테지만 지금은 도우미 아주머니밖에 계시지 않다.
게다가 도우미 아주머니는 연정이 어렸을 적부터 연정에게 사랑을 듬뿍 주며 예뻐하던 분이었기에 연정은 더욱 편하게 잠시나마 침대에 누워 숨을 고를 수 있었다.
연정은 그렇게 한참을 힘없이 침대에 누워 있다가 겨우겨우 몸을 일으켜 책상에 앉아 문제집을 폈다. 물론 문제들을 많이 풀면 풀수록 성적이 오르는 건 맞은 것 같기도 하지만, 연정은 이렇게 하루종일 문제집에만 붙잡혀 있는 자신이 조금은 싫었다. 연정은 괜히 문제집에 낙서를 하며 심술을 부렸다. 이것도 연정의 부모님이 아시게 되면 잔소리를 들을 행동이었다.
머지않아 연정의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간식 앞에다 두고 갈 테니까 꼭 먹어. 아줌마는 먼저 가볼게. 공부.. 열심히 하고."
연정은 대답을 하지 않았다. 곧이어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고, 아무런 인기척이 들리지 않는 걸 확인 한 연정이 조심스레 방문을 열어 간식을 확인했다. 바닥에는 쟁반에 담긴 접시에 계란물을 입히고 설탕을 뿌린 토스트와, 아직 물기가 남아 있는 방울토마토 몇 알이 있었다. 연정은 배가 고프지 않았지만 잔소리를 들을 걸 감안해 간식을 들고 방으로 들어갔다.
"언니 배고프다, 혜유야~!"
"라면 끓이고 있잖아. 그리고 언니가 언제 배 안 고팠던 적이 있어?"
혜유의 말을 들은 혜선이 소파에 누워 있다가 벌떡 일어나 혜유에게 성큼성큼 다가와 옆에서 노려 보았다.
"뭐?"
"라면 다 됐다. 배고프다며, 얼른 앉아."
"라면 덕분에 봐주는 줄 알아."
혜유와 혜선은 식탁에 마주 보고 앉아 사이좋게 라면을 나눠먹기 시작했다. 혜유는 라면을 한창 맛있게 먹다가 고개를 살짝 들어 혜선에게 물었다.
"그래서 엄마, 아빠 언제 오신다고?"
"모레. 왜?"
"그냥.. 언니랑 단 둘이 언제까지 있어야 하나 싶어서."
"그래서 싫어?"
"당연한 걸 왜 묻고 그래."
혜선은 혜유의 대답을 듣고 장난스레 혜유의 머리를 한 대 쳤다. 혜유는 혜선을 째려보았다.
"왜 때려?"
"맞을 짓 했잖아, 솔직히."
"나보단 언니가 맞을 짓 더 많이 하거든? 엄마 오면 언니는 이제 죽었어. 내가 다 이를 거야."
혜유의 말을 들은 혜선이 당황하며 말을 더듬었다.
"아, 안 돼! 엄마한테는 이르지 마라!"
"언니 하는 거 봐서."
"말하는 거 봐라..? 와, 너 두고 봐. 내가 계속 괴롭힐 거야."
"그럼 언니만 더 안 좋아지는 거지."
"허..! 야, 너 내가 얼마나 잘해줬는데..!"
"잘해주긴 무슨.. 언니, 제발 꿈에서 좀 깨. 언니가 얼마나 나만 그렇게 괴롭혔으면 엄마가 그렇게 언니보고 뭐라 하겠어?"
"하.. 우리 순수하고 귀여웠던 혜유가 언니한테 달라드는 게 더 늘었어."
혜유와 혜선은 투닥거리면서도 나름대로 사이도 좋고, 비밀 같은 건 없는 친구 같은 존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