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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억지로 간 혼자 오사카 여행(2) 교토편

백수의 여름

by W하루 Mar 09. 2025

 “교토가 그나마 너 스타일일걸?”


나에 대해 깊게 모르는 사람들은 나의 'E'스러운 면만 보고, 활기차고 에너지 넘치는 곳을 좋아할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의외로 차분하고 정적인 것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그런 나에 대해 잘 아는 지인들은 교토를 추천했고, 아침 일찍 기차를 타고 교토로 이동했다. 확실히 오사카 시내와는 분위기가 달랐다. 이제야 마음의 안정이 조금 찾아오는 느낌이었다.

  

숙소도 조용한 곳을 원했기에 역에서 접근성이 떨어지는 곳으로 골랐다. 그 덕에 숙소 주변에 먹을만한 곳이 마땅치 않았다. 뭔가 뻔한 음식보다는 일본 가정식이 먹고 싶어 열심히 검색해서 찾아갔다. 외관을 보고 합격이라고 생각하며 딱 들어간 순간 경악을 했다.


가뜩이나 협소한데 흡연까지 가능한 식당이었다. 음식이 상당히 내 취향이긴 했지만, 지독한 담배 냄새는 비흡연자인 나를 그 안에 10초도 머물지 못하게 만들었다.      

식당 밖을 나와 다시 어디로 갈지 휴대폰을 꺼내 검색하고 있는데 누군가 나에게 영어로 말을 건다. 


“너 혹시 일본인이니?” (어제 식당에서도 나를 일본인으로 착각했는데 대체 무슨 일인 걸까)

“아니 난 한국 사람이야. 그런데 무슨 일이야?”

“아, 네가 일본사람이면 뭐 좀 물어보려고 했어. 내가 방금 이 식당에 들어갔다 나왔는데 일본인들은 대체 왜 식당 안에서 흡연을 하는 거야?"

"아.. 나도 방금 같은 것을 경험했어. 글쎄 나도 이해가 안 돼. 난 한국인이거든(강조). 그런데 너는 어디서 왔어?” 

“나는 대만에서 여행 왔어” 

“그렇구나 즐거운 여행 돼!”


짧았지만 킬포가 많은 대화였다. 

나를 일본 사람이라고 착각한 것,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을 굳이 현지인을 잡아 물어봐야 했나 싶은 호기심 많은 대만 친구, 같은 경험을 한 배고픈 외국인 두 명.


나는 한국인이기에(다시 한번 강조) 그녀에게 만족스러운 답변을 주지는 못했지만 살짝 당황스럽고 재밌는 경험이었다.

  

결국은 돌아 돌아 인스타에서 추천하는 돈가스 집. 또 웨이팅 대열에 합류해 본다. 한정 판매한다는 부위를 주문해서 먹었고, 정말 맛있긴 했지만 한국의 돈가스도 상향평준화가 되어 그런지 특별한 맛은 전혀 못 느꼈다. 오늘도 그렇듯 생맥주가 훨씬 더 맛있었다.

  

남들 다 간다는 관광지에는 정말 가고 싶지 않았지만 무계획 여행으로 딱히 갈 곳이 없었다. 결국 버스 정류장에서 줄이 가장 긴 기요미즈데라행 버스에 나도 합류한다. 교토 온 김에 그냥 가는 것이지 역시나 기대감은 전혀 없다. 


버스에서 내려 수많은 인파들 속에 묻혀 아무 생각 없이 그냥 올라간다. 다시 한번 깨닫는다. 관광지는 내 취향이 아니라는 것을. 남들 다 한다고 나도 꼭 해야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나도 여기 가봤다!’ 정도의 인증샷만 대충 찍고, 녹차 아이스크림 하나 물고 다시 내려온다. 뭔가 하기 싫은 과제를 마친 기분이지만 그래도 마쳤다는 성취감으로 이제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해보려 한다. 그것은 바로 맛있는 커피를 마시러 가는 것!


이번에는 인스타가 아닌 구글 지도에서 평이 좋은 곳으로 찾아본다. 카페에 진심인 나이지만, 너무 멀리는 가고 싶지 않아 적당히 타협해서 고른 곳. 외관도 멋스러웠고 무엇보다 후르츠 산도를 팔고 있었다.


커피와 산도를 주문한 후 기다리고 있는데 바 자리에 앉아서 그랬는지, 옆자리의 일본인들이 나에게 말을 걸었다. 


“너 이 카페 어떻게 알고 왔어?”

“구글 지도에서 보고 찾아왔는데?”

“여기 인스타에서 엄청 유명한 데야.”

“아 그렇구나! 난 몰랐어.(근데 나 안 물어봤고 안 궁금한데..)”


아까도 그랬고 뭔가 나는 말을 걸기 어렵지 않은 인상인가.. (나에게 말 걸지 말아 줘)

어색한 대화를 나누는 사이 큼직한 산도와 따뜻한 드립커피가 나왔다. 사실 맛은 특별하지는 않았고 아는 그 맛이었다. 그렇지만 신선한 과일과 크림의 조화 덕에 배가 그리 고프지 않은 상태여도 술술 넘어갔다.


카페에서 나와 산책을 했다. 조용하고 한적한 교토가 나는 너무 마음에 들었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는데 갑자기 메일 확인이 하고 싶었다. 메일을 확인했는데 얼마 전에 지원한 기업의 불합격 소식을 접했다. 기분이 급 다운되었다. 아, 일본까지 와서도 탈락 소식이라니.. 정말 지긋지긋하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아름다웠던 풍경이 갑자기 회색빛으로 보이는 기분이었다.


더 이상 돌아다닐 기분도 아니었고, 숙소로 돌아왔다. 그렇게 조금 쉬다가 그래도 여행 왔는데 뭔가 시간이 아까워 야식으로 오코노미야끼를 먹으러 나간다. 역시나 숙소 주변에는 뭐가 없었고, 구글 지도에서 그럭저럭 괜찮아 보이는 가게를 찾았지만 1.6km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다. 저녁이라 조금 무섭긴 했으나 그래도 걸어가 본다.


교토타워가 보이는 육교를 건널 때 내가 지금 일본인지, 이태원에 남산타워가 보이는 그 육교를 걷는 건지 헷갈릴 정도로 뭔가 비슷한 느낌이었다.


가게에 도착했는데 그 동네에서는 맛집이었는지 사람들이 가득 차있었고 나에게 예약 여부를 물어봤다. 예약은 안 했고 혼자 왔다고 했더니, 다행히 바 자리로 안내해 준다. 사람들이 제일 많이 시키는 메뉴를 따라 시켰고 사실 극찬할 맛은 아니었지만, 생맥주와 먹으니 맛있었다.


감기가 점점 더 심해져 온다. 드럭스토어에 들러 일본 국민 감기약을 구입한다. 코도 막히고 기침도 하고 배도 부르면서 또 편의점에는 꾸역꾸역 들른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다.)


간식을 사고 숙소로 이동 중에 갑자기 비가 미친 듯이 쏟아졌다. 편의점에서는 이미 어느 정도 이동을 했고, 숙소를 한적한 곳으로 고른 탓에 주변에 우산 살 곳도 없었다.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일본의 어두운 골목골목을 비 맞으며 뛰어갔다. 불합격 소식에 기분은 안 좋고, 감기 때문에 컨디션도 안 좋고, 그럼에도 먹고살겠다고 한 손에는 간식 봉지를 들고 타국에서 비 맞으며 뛰어가는 내 자신이 처량하기도 하고, 굳이 좋게 생각하면 청춘 드라마 같기도 했다.


뭐라 표현을 할 수 없었던 하루. 이렇게 또 교토에서의 하루를 마무리한다.



- 본 작품은 작년 기준 이야기이며, 현재의 이야기는 [작품(브런치북) 외 나의 일상]으로 별도 기록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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