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독 피곤한 하루를 보낸 날, 종일 기다리던 저녁 먹을 시간이 다가오면 힘들었던 하루를 보상받고 싶은 마음 때문인지 자극적이고 기름진 음식이 당기곤 합니다. 그런 날 종종 생각나는 음식 중 하나가 바로 ‘양념치킨’입니다. 양념치킨에도 종류가 어찌나 많은지, 여러 치킨 브랜드에서 앞다투어 다양한 양념을 곁들인 치킨들을 출시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상 선택하게 되는 것은 빨갛고 달달한 양념이 튀김옷에 흠뻑 밴 기본양념치킨입니다. 예전부터 먹어온 익숙한 맛이라서 그런 것일까요? 제 입맛에는 기본만 한 것이 없는 것 같아요. 빨간 양념치킨 하면 유독 떠오르는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제 여동생이에요. 그녀가 유난히 치킨을 좋아하는 ‘치킨 러버’ 여서뿐만은 아닙니다. 그녀와 양념치킨에 얽힌 이야기는 약 20년 전 어린 시절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자라오는 내내 부모님의 경제 상황이 좋지 않았기 때문에 어린 저와 동생은 주로 외갓집에 맡겨져 자랐지만 그 사이에 아주 잠깐 1-2년 정도 부모님, 동생과 함께 네 가족이 살던 시기가 있었어요. 사실 이 시기에 대한 기억은 대부분 슬프고 어둡습니다. 자라는 동안 늘 집안 형편이 어렵긴 했지만 외갓집에서 나와 네 가족이 함께 살던 이 시기는 정말 가난의 끝을 달리던 시기였거든요. 집에 돈이 없어서 쌀도 못 사는 형편이라 삶은 국수나 제일 저렴한 라면으로 끼니를 해결하곤 했습니다. 하루 중 제대로 먹는 음식이라곤 학교 급식이 거의 전부였던 시절이었어요.
요즘은 거의 찾아볼 수 없지만 저와 동생이 초등학교를 다니던 그때는 학생들의 하교 시간에 맞춰 학교 앞에 치킨 트럭이 가끔 서있곤 했습니다. 새로 개업한 치킨집에서 홍보를 위해 학생들에게 시식용으로 치킨 한 조각을 나눠주곤 했지요. 운 좋게 하굣길에 치킨 트럭을 만난 날이면 친구들과 함께 트럭 앞에 와글와글 줄을 섰습니다. 조금만 기다리면 조그마한 상자에 담긴 치킨 한 조각을 얻을 수 있었거든요. 쌀도 못 사는 형편이니 치킨은 꿈도 못 꾸던 때였습니다. 그러니 이렇게 가끔 운 좋게 생긴 치킨 한 조각은 정말 입에서 살살 녹는 맛이었어요. 사라지는 게 아까워 조금씩 아껴먹곤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저학년이었던 동생은 저보다 먼저 하교해 집에 가 있고 고학년이었던 저는 학교를 늦게 마쳐 혼자 집으로 터덜터덜 걸어갔습니다. 낡디 낡은 아파트의 계단을 올라 끼익- 소리가 나는 현관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가니 어두운 집에 혼자 있던 동생이 언니 오는 소리를 듣고 후다닥 방에서 나왔습니다. 뭔가 신나는 일이 있는 듯 입꼬리가 씰룩 쌜룩 움직이는 것이 아주 개구쟁이 같았어요.
“언니야, 빨리 일로 와봐!”
제 팔을 잡아끄는 동생의 성화에 얼른 신발을 벗고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동생은 대뜸 저를 책상 앞으로 끌고 가더니 책상 옆에 붙어있던 조그만 서랍을 열었습니다.
“짜잔~”
그 서랍 속에는 트럭에서 나눠주는 조그만 치킨 상자가 하나 들어있었어요.
“학교 마치고 받았는데 언니야랑 같이 먹으려고 기다렸어!”
눈에 보이면 자꾸만 먹고 싶어 지니까 책상 서랍 안에 넣어둔 걸까요? 그 작은 치킨 한 조각도 언니랑 같이 먹겠다고 서랍에 넣어둔 채 제가 집에 올 때까지 한참을 기다렸을 동생에게 너무나 고마웠습니다. 동생 덕분에 신나는 사람이 두 명이 되었어요. 두 어린이는 설레는 마음으로 치킨 상자를 꺼내 뚜껑을 열었습니다. 그리고 상자를 연 순간, 어린이들의 표정은 굳어버렸습니다.
“어? 개미가......”
동생의 소중한 치킨에서는 개미들의 파티가 한창 진행 중이었습니다. 그때 살고 있던 곳이 몹시 낡은 아파트라 집 안에서 개미가 많이 나오곤 했었는데 그 당시 가난한 인간의 집에 얹혀살고 있던 개미들에게도 달달한 양념치킨은 참을 수 없는 유혹이었겠지요. 안타깝게도 동생이 소중히 보관해 둔 치킨은 개미의 공격으로 버려야만 했습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언니와 치킨을 나눠 먹겠다는 생각에 싱글벙글하던 동생의 얼굴은 삽시간에 잔뜩 찌푸려졌습니다. 그리고 이내 닭똥 같은 눈물이 뚝뚝 떨어지며 으앙-하고 울음을 터뜨렸어요. 개미가 덕지덕지 붙은 치킨을 보고 얼마나 속이 상했을까요? 결국 치킨은 먹지 못했지만 언니를 생각하는 동생의 따뜻한 마음만큼은 20년이 지난 지금도 제 기억 속에 소중히 남아있습니다.
가끔은 도대체 언제 철이 들려나 싶게 언니 속을 답답하게 하곤 하지만 미우나 고우나 제게 동생은 힘들었던 어린 시절을 함께 헤쳐온 끈끈한 동지입니다. 부모님의 보살핌과 보호를 받을 수 없던 시절, 서로가 서로를 보살피며 함께 자라왔으니까요. 동생 없이 제가 그 어려웠던 시절을 잘 지나올 수 있었을까를 생각해 보면 사실 자신이 없습니다. 가끔 동생과 이야기하곤 합니다. 나중에 성공해서 멋진 루프탑 바에 앉아 하하 호호 웃으며 그 시절을 추억하자고요. 낯간지러운 말을 잘 못하는 언니라 아직까지 동생에게 대놓고 말하지 못했지만 훗날 루프탑 바에 앉아 함께 이야기를 하는 날이 오면 그때는 꼭 이 말을 전해야겠습니다.
“그때 네가 있어서 정말 다행이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