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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념치킨_ 네가 있어서 다행이었어

by 뚜우 Feb 24. 2025

    유독 피곤한 하루를 보낸 날, 종일 기다리던 저녁 먹을 시간이 다가오면 힘들었던 하루를 보상받고 싶은 마음 때문인지 자극적이고 기름진 음식이 당기곤 합니다. 그런 날 종종 생각나는 음식 중 하나가 바로 ‘양념치킨’입니다. 양념치킨에도 종류가 어찌나 많은지, 여러 치킨 브랜드에서 앞다투어 다양한 양념을 곁들인 치킨들을 출시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상 선택하게 되는 것은 빨갛고 달달한 양념이 튀김옷에 흠뻑 밴 기본양념치킨입니다. 예전부터 먹어온 익숙한 맛이라서 그런 것일까요? 제 입맛에는 기본만 한 것이 없는 것 같아요. 빨간 양념치킨 하면 유독 떠오르는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제 여동생이에요. 그녀가 유난히 치킨을 좋아하는 ‘치킨 러버’ 여서뿐만은 아닙니다. 그녀와 양념치킨에 얽힌 이야기는 약 20년 전 어린 시절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자라오는 내내 부모님의 경제 상황이 좋지 않았기 때문에 어린 저와 동생은 주로 외갓집에 맡겨져 자랐지만 그 사이에 아주 잠깐 1-2년 정도 부모님, 동생과 함께 네 가족이 살던 시기가 있었어요. 사실 이 시기에 대한 기억은 대부분 슬프고 어둡습니다. 자라는 동안 늘 집안 형편이 어렵긴 했지만 외갓집에서 나와 네 가족이 함께 살던 이 시기는 정말 가난의 끝을 달리던 시기였거든요. 집에 돈이 없어서 쌀도 못 사는 형편이라 삶은 국수나 제일 저렴한 라면으로 끼니를 해결하곤 했습니다. 하루 중 제대로 먹는 음식이라곤 학교 급식이 거의 전부였던 시절이었어요.


     요즘은 거의 찾아볼 수 없지만 저와 동생이 초등학교를 다니던 그때는 학생들의 하교 시간에 맞춰 학교 앞에 치킨 트럭이 가끔 서있곤 했습니다. 새로 개업한 치킨집에서 홍보를 위해 학생들에게 시식용으로 치킨 한 조각을 나눠주곤 했지요. 운 좋게 하굣길에 치킨 트럭을 만난 날이면 친구들과 함께 트럭 앞에 와글와글 줄을 섰습니다. 조금만 기다리면 조그마한 상자에 담긴 치킨 한 조각을 얻을 수 있었거든요. 쌀도 못 사는 형편이니 치킨은 꿈도 못 꾸던 때였습니다. 그러니 이렇게 가끔 운 좋게 생긴 치킨 한 조각은 정말 입에서 살살 녹는 맛이었어요. 사라지는 게 아까워 조금씩 아껴먹곤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저학년이었던 동생은 저보다 먼저 하교해 집에 가 있고 고학년이었던 저는 학교를 늦게 마쳐 혼자 집으로 터덜터덜 걸어갔습니다. 낡디 낡은 아파트의 계단을 올라 끼익- 소리가 나는 현관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가니 어두운 집에 혼자 있던 동생이 언니 오는 소리를 듣고 후다닥 방에서 나왔습니다. 뭔가 신나는 일이 있는 듯 입꼬리가 씰룩 쌜룩 움직이는 것이 아주 개구쟁이 같았어요.    

  

    “언니야, 빨리 일로 와봐!”      


    제 팔을 잡아끄는 동생의 성화에 얼른 신발을 벗고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동생은 대뜸 저를 책상 앞으로 끌고 가더니 책상 옆에 붙어있던 조그만 서랍을 열었습니다.      


    “짜잔~”      


    그 서랍 속에는 트럭에서 나눠주는 조그만 치킨 상자가 하나 들어있었어요.

      

    “학교 마치고 받았는데 언니야랑 같이 먹으려고 기다렸어!” 

    

  눈에 보이면 자꾸만 먹고 싶어 지니까 책상 서랍 안에 넣어둔 걸까요? 그 작은 치킨 한 조각도 언니랑 같이 먹겠다고 서랍에 넣어둔 채 제가 집에 올 때까지 한참을 기다렸을 동생에게 너무나 고마웠습니다. 동생 덕분에 신나는 사람이 두 명이 되었어요. 두 어린이는 설레는 마음으로 치킨 상자를 꺼내 뚜껑을 열었습니다. 그리고 상자를 연 순간, 어린이들의 표정은 굳어버렸습니다. 

    

    “어? 개미가......”    

 

    동생의 소중한 치킨에서는 개미들의 파티가 한창 진행 중이었습니다. 그때 살고 있던 곳이 몹시 낡은 아파트라 집 안에서 개미가 많이 나오곤 했었는데 그 당시 가난한 인간의 집에 얹혀살고 있던 개미들에게도 달달한 양념치킨은 참을 수 없는 유혹이었겠지요. 안타깝게도 동생이 소중히 보관해 둔 치킨은 개미의 공격으로 버려야만 했습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언니와 치킨을 나눠 먹겠다는 생각에 싱글벙글하던 동생의 얼굴은 삽시간에 잔뜩 찌푸려졌습니다. 그리고 이내 닭똥 같은 눈물이 뚝뚝 떨어지며 으앙-하고 울음을 터뜨렸어요. 개미가 덕지덕지 붙은 치킨을 보고 얼마나 속이 상했을까요? 결국 치킨은 먹지 못했지만 언니를 생각하는 동생의 따뜻한 마음만큼은 20년이 지난 지금도 제 기억 속에 소중히 남아있습니다.


     가끔은 도대체 언제 철이 들려나 싶게 언니 속을 답답하게 하곤 하지만 미우나 고우나 제게 동생은 힘들었던 어린 시절을 함께 헤쳐온 끈끈한 동지입니다. 부모님의 보살핌과 보호를 받을 수 없던 시절, 서로가 서로를 보살피며 함께 자라왔으니까요. 동생 없이 제가 그 어려웠던 시절을 잘 지나올 수 있었을까를 생각해 보면 사실 자신이 없습니다. 가끔 동생과 이야기하곤 합니다. 나중에 성공해서 멋진 루프탑 바에 앉아 하하 호호 웃으며 그 시절을 추억하자고요. 낯간지러운 말을 잘 못하는 언니라 아직까지 동생에게 대놓고 말하지 못했지만 훗날 루프탑 바에 앉아 함께 이야기를 하는 날이 오면 그때는 꼭 이 말을 전해야겠습니다.


    “그때 네가 있어서 정말 다행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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