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잔하고 평화롭기만 한 삶을 사는 사람은 그 어디에도 없듯 저 역시도 인생의 크고 작은 어려움들을 겪고, 해결하며 살아왔지만 유독 작년 한 해는 삼백육십오일이 언제 다 가나 싶게 제게는 무척이나 힘든 시간이었습니다. 숨을 붙이고 살아있는 것에 거의 모든 에너지를 써야 했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제가 좋아하던 일들, 하고 싶던 일들과 조금씩 멀어졌어요. 무언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거의 들지 않는 시간들이었습니다. 어찌어찌 제가 가진 모든 힘을 동원하여 하루하루를 살아냈고 마침내 2024년을 제 인생에서 무사히 졸업시켰습니다. 그리고 또 쉴 틈 없이 새로운 해가 밝았지요. 해가 바뀌었다고 해서 힘든 상황이 갑자기 확 달라진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마음만큼은 조금 후련했어요.
새해를 맞이하고 보름 정도가 지났을 무렵,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고단한 하루를 마치고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워낙 생각이 많은 사람인 탓에 잠에 들기 직전까지 이어지는 이런저런 생각들에 휩쓸려 깜깜한 밤을 둥둥 떠다니는 기분이었어요. 그러다 갑자기 번뜩 글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음식에 관한 글을 써보고 싶어...!’라고요. 먹고사는 것 외에 다른 곳에 쓸 에너지는 도저히 없다며 늘 고개를 가로저었던 제게 무언가를 하고 싶다는 마음은 몹시도 귀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아주 오랜만에 찾아온 이 귀한 마음이 사라지지 않도록 단단히 붙잡아보기로 했어요.
저는 먹는 것을 참 좋아합니다. 먹는 행위, 음식을 만드는 행위, 모두 다 좋아해요. 맛있는 것을 먹으면 기분이 좋아지고, 여행을 가도 항상 테마는 ‘식도락’입니다. 먹는 낙을 빼고 나면 삶에 다른 즐거움이 있기는 할까 생각할 만큼 먹는 것은 제 삶에 아주 큰 부분을 차지하지요. 삶의 중요한 사람과 사건들을 기억하는 방법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군가는 향기, 또 누군가는 물건을 통해서, 각자 저마다의 기억법이 있을 테지만 저는 주로 ‘음식’을 통해 그것들을 기억하곤 합니다. 음식을 보면 그 음식과 관련된 사람이나 추억들이 떠올라요. 또 가끔은 음식을 만들고 먹으며 교훈이나 깨달음을 얻기도 합니다. 이토록 음식에 진심인 사람이라니- 글을 쓰면서도 웃음이 피식 새어 나옵니다.
‘오늘은 무엇을 먹을까’가 어쩌면 하루의 가장 큰 고민 중 하나인 저의 음식에 대한 추억이나 생각을 가볍게 수다 떨 듯 글로 나눠보고 싶었습니다. 달콤한 디저트처럼 떠올리기만 해도 기분 좋은 추억도, 무심코 양념 속 덩어리 생강을 씹었을 때처럼 이마가 찌푸러지는 추억도, 그리고 머릿속을 스치는 이런저런 생각도요. 글을 쓰기 앞서 추억이나 생각들을 떠올리며 모든 음식들을 직접 만들어보았습니다. 대부분은 대단할 것 없는 소박한 음식들이고, 어떤 것은 요리를 했다고 하기도 민망할 만큼 간단한 음식들도 있어요. 그렇지만 제게는 하나같이 특별한 음식들입니다. 결국은 ‘먹고살기 위해’ 부단히도 노력하는 우리들의 삶에서 제 글이 여러분께 작은 즐거움 또는 그 음식에 얽힌 여러분만의 소중한 추억이나 생각을 다시금 불러일으키는 통로가 된다면 참 좋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