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 동안의 감옥생활, 그리고 탈출_10
고난의 행군 시기, 나의 삶은 오직 생존을 위한 투쟁으로 변했다. 배급은 끊기다시피 했고, 자녀들마저 허기를 참아가며 하루하루를 버텨야만 했다. 그때까지 포로 출신이라는 이유로 평생을 북한 체제의 감시와 통제 속에 갇혀 살아왔다. 모든 것이 제한되고 차별 속에서 이어진 내 삶에, 1990년대 경제난과 식량난으로 연로보장은 의미를 잃었고, 나는 가족들의 식량 하나라도 더 확보하기 위해 애썼다.
북한을 떠난다는 결심은 결코 쉽지 않았다. 한평생 이 땅에서 아내와 자녀를 위해 살아왔고, 고향에 대한 그리움 속에서 견뎌왔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도 포로라는 굴레는 벗겨지지 않았고, 이제는 이 억압을 끊어야겠다는 결심이 내 안에 자리 잡았다. 내가 돌아가야 할 조국과 고향이 있다는 생각이 나를 지탱해 주었고, 그 그리움은 끝내 내 의지를 꺾지 못했다.
2000년, 나는 마침내 탈북을 결심했다. 그토록 오랫동안 그리워한 조국 땅으로 돌아가기 위해 모든 것을 걸었다. 북한의 감시와 차별 속에서 한평생 자유를 갈망했던 나는, 이제 내 삶의 마지막을 고향에서 마무리하겠다는 절박함에 사로잡혔다. 고향으로 돌아가겠다는 강한 의지가 나의 모든 두려움을 이겨내는 힘이 되었고, 나의 조국과 고향은 그리움만으로 끝날 수 없는 삶의 목적이자 마지막 여정이 되었다.
드디어 탈북의 첫걸음을 떼는 날이 왔다. 이른 새벽, 브로커의 안내를 따라 경원군을 떠나 두만강 도강지역을 향해 산등성이를 타고 이동하기 시작했다. 어둠 속에서 우리는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불안함과 긴장 속에 길을 나섰다. 그날 새벽의 공기는 유난히 차갑고 날카로웠다.
산등성이는 험난했다. 거친 돌과 풀숲을 지나며 발이 여러 번 미끄러졌고, 나뭇가지에 옷이 걸릴 때마다 심장이 덜컹거렸다. 우리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묵묵히 산길을 올랐다. 안내하던 브로커는 길을 숙지한 듯 앞서 나갔고, 나는 그의 발소리를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연로한 몸으로 숨이 가빠올 때도 있었지만, 멈출 수는 없었다. 국경으로 향하는 마지막 길이니만큼, 체력의 한계를 느끼면서도 내내 마음을 다잡았다.
산등성이를 넘어 두만강 근처로 다가가자, 내 심장은 점점 더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어둠이 깔린 강가에 몸을 숨기고, 두만강의 잔잔히 흐르는 물결을 바라보며 잠시 숨을 고르려 했다. 멀지 않은 곳에서 북한 경비병들의 손전등 불빛이 어둠 속에서 아른거렸다. 작은 소리라도 들키면 안 되는 순간이었다. 나는 숨소리조차 최대한 억누르며 몸을 최대한 낮췄다.
두만강 건너편은 내가 그토록 갈망했던 조국으로 향하는 첫걸음이었다. 차디찬 강물 속에 발을 디디기 직전, 브로커는 마지막으로 경비병의 위치를 살폈다. 그들이 시선을 돌리는 순간을 틈타, 오직 앞만 바라보며 절박한 마음으로 강 건너편을 향해 나아갔다. 그렇게 나는 감옥과 같은 북한 땅을 벗어나 중국에 도착했다.
두만강을 건너 중국 땅을 밟던 순간, 그동안 품어왔던 두려움이 잠시나마 가라앉는 듯했다. 그러나 새로운 생존의 불안이 곧 나를 엄습해 왔다. 그날 밤 나는 강가 근처 중국 농가에 몸을 숨겼고, 농가 주인의 도움으로 젖은 옷을 갈아입고 따뜻한 방에서 잠시 숨을 돌릴 수 있었다. 그 순간의 휴식은 오랜 탈북의 긴장감을 풀어주는 위안이 되었다.
다음 날, 브로커는 나를 찾아와 도문 시내의 작은 아파트로 안내했다. 시내 중심이 오히려 더 눈에 띄지 않는다며, 시내 은신처로 안내했다. 은신처에 도착한 수 동생과의 연락을 기다리며 초조하게 며칠을 보냈다. 동생과 연락이 닿기만 하면 이제 한국으로 갈 수 있다는 희망이 있었기에 그 시간이 더욱 길게 느껴졌다.
마침내 연락이 닿은 날, 남한에 있는 동생과 상봉이 이루어진다는 소식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오랜 시간 떨어져 지낸 가족을 다시 만날 수 있다는 기대는 불안과 공포 속의 내 삶에 한 줄기 빛을 비춰주었다. 동생과 마주한 순간, 우리는 서로의 얼굴을 보자마자 말없이 눈물을 흘렸다. 오랜 세월이 지나 서로의 얼굴이 낯설었지만, 그 모든 감정이 한순간에 녹아내렸다. 동생은 나를 위로하며 한국행을 위해 대사관에 도움을 요청하겠다고 약속했다.
동생과의 상봉은 나에게 다시 일어설 용기와 희망을 주었다. 동생은 브로커를 통해 한국 정보원과 대사관 직원들과 연결되었고, 그 과정에서 가짜 여권을 만들어주며 안전하게 한국으로 갈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해 주었다. 브로커는 대련항을 출발하는 배편을 통해 은밀히 입국할 수 있는 계획을 마련했고, 마침내 조국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막바지에 다다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