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여정의 끝, 나의 조국_11
나는 대련항을 통해 남한으로 떠날 준비를 했다. 출발 전날 밤, 작은 화물선에 몸을 실으며 모든 긴장과 기대가 가득했다. 이 배는 여객선이 아닌 무역 화물선으로, 나와 조카들은 보안을 위해 배 깊숙이 숨어야 했다. 북한 경비정의 감시를 피하려고 중국 해역을 따라 항해가 조심스럽게 진행되었고, 어둠 속에서 은밀히 나아가는 동안 나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새로운 삶에 대한 생각으로 가슴이 벅차올랐다.
마침내 배는 인천항에 도착했고, 국정원 관계자들이 나를 맞아 주었다. 인천항에 발을 디딘 그 순간, 오랜 세월 그리워했던 조국의 땅을 다시 밟았다는 감격이 밀려들었다. 그리움 속에 가슴 깊이 새겨두었던 조국, 내가 돌아와야 할 그 땅을 밟자 모든 것이 꿈같이 아득했다. 오랜 시간 간직해 온 고향의 기억들이 일시에 몰려와 발끝에서부터 차오르는 감격에 젖어들었다. 남한에 있는 동생과 48년 만에 상봉했을 때, 우리는 눈물 속에서 서로를 끌어안으며 그리움과 반가움에 떨었다.
고향에 도착한 후, 가장 먼저 부모님 묘지를 찾았다. 그동안 마음속에만 담아 두었던 부모님께 드릴 인사를 전하며 나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어린 시절, 부모님 품속에서 웃고 울던 기억이 밀려오며 한없이 그리운 마음과 죄송한 마음이 교차했다. 묘비를 어루만지며 "이제야 돌아왔다"는 인사를 전할 때, 오랜 세월 쌓였던 아픔과 회한이 눈물로 녹아내렸다.
정부에서 받은 지원금은 그 순간 나에게 더없이 소중했다. 나는 망설임 없이 그 돈을 북한에 남아 있는 자녀들을 데려오는 데 쓰기로 결심했다. 이 돈은 나에게 남은 유일한 소망, 즉 가족이 함께 모여 내 조국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하는 꿈을 이루기 위한 것이었다. 자녀들에게 더 나은 미래를 선물하고 싶었고, 고난 속에서 자녀들을 두고 떠날 수밖에 없었던 죄책감을 조금이나마 덜 수 있는 길이었다.
내가 받은 지원금을 자녀들의 탈북에 쓰겠다는 결정을 내렸을 때, 주변에서는 걱정의 목소리도 있었다. 그러나 나에게는 가족을 위한 이 결정이 너무도 당연했고, 내 삶의 마지막 기회를 그들에게 나누고 싶었다. 부모님 묘 앞에서 다짐한 약속처럼, 내 모든 것을 걸고 그들을 품에 안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조국의 땅에 돌아와 이제 자녀들과 함께 이곳에서 더 나은 미래를 맞이할 수 있다는 생각에, 나는 다시금 깊은 감사와 감격으로 가슴이 벅차올랐다.
조국의 땅에 다시 발을 디딘 후, 나는 간절히 바랐다. 그토록 그리워했던 대한민국에서 내 자녀들이 자유롭게 꿈을 펼치며 살아가길, 한평생 억압과 굴레 속에 살아온 나와 달리 이 아이들이 자랑스러운 조국의 품에서 밝은 미래를 그려가길 소망했다. 나의 탈북과 긴 여정이 그들의 새로운 삶을 위한 첫걸음이 되기를 바라며, 이제 나는 묵묵히 그 뒤에서 이 아이들을 지켜볼 것이다.
대한민국의 따뜻한 공기 속에서, 문득 어릴 적 아버지의 모습이 떠올랐다. 가난하고 척박한 땅에서 온 힘을 다해 가족을 위해 일하셨던 아버지의 손은 거칠었고, 눈에는 깊은 고뇌가 서려 있었다. 그 시절에는 이해하지 못했던 아버지의 고단함과 헌신이 이제야 마음 깊이 느껴진다. 나를 위해 모든 것을 내어주신 아버지의 삶이 나에게 살아갈 지표가 되었고, 오늘 나를 이곳까지 이끌어 준 근원임을 절실히 깨달았다.
이제 나도 아버지처럼 자녀들의 더 나은 삶을 위한 든든한 버팀목이 되고자 한다. 대한민국에서 자랑스럽고 자유로운 삶을 시작하게 될 자녀들을 바라보며, 그들이 온 마음으로 성장하고 번영하는 모습을 볼 수 있기를 바란다. 내가 한평생 간직해 온 소망과 그리움은 이제 이 땅에서 그들의 미래로 이어져 빛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