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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취주의자

1. 당신은 하루 중 언제 가장 행복을 느끼나요?

by 미름달

술 좋아하세요?




삼십여 년을 살면서 나는 한 번도 아침에 으랏차차 하면서 일어난 적이 없다.

학창 시절에도, 직장생활을 하는 지금도, 하물며 기억나지 않는 아주 어린 시절에도 내 의지대로 아침을 맞은 적 없을 것만 같다.


'한 시간만 더 잤으면 좋겠는데... 오늘 아파서 지각한다고 할까?'

'오늘 아침운동은 건너뛸까...?'


늦잠 한 시간을 더 자기 위한 그럴싸해 보이는 거짓말을 생각하다 보면 5분, 10분이 지나고 어느새 말똥해진 정신으로 '에라이 그냥 일어나자. 대신 오늘은 일찍 잠들자'하며 이부자리에서 나오는 것이 나의 아침 루틴이다.

예상했겠지만, 그러나

오늘 밤도 일찍 잠들기는 글렀다.


나의 하루는 대부분(거의, 매일, 언제나, 항상, 여지없이) 술과 함께 마무리되고 오늘도 어김없이 그렇다.


자기 전 따뜻한 술 한잔의 위로를 기대하며 차가운 겨울바람을 맞으며 출근하고,

시원한 맥주 한잔을 떠올리며 아랫입술까지 올라오는 수많은 말들을 참아내고,

술과 함께할 맛있는 음식을 머릿속으로 고르며 얼굴에는 사회성 가득한 사람 좋은 웃음을 지어낸다.


집에 와서도 밀린 빨래를 개어놓고 생존을 위한 운동을 하고 틈틈이 오는 업무연락들을 처리해야만 사실상 하루가 마무리된다.

아직 아니다.

냉장고 안에 처리해야 할 식재료들을 빠르게 스캔하며 곧 마시게 될 최애음료와 잘 어울리는, 맛도 있지만 설거지도 많이 나오지 않는 안주거리를 만들어 내 전용자리에 앉는 것.

이제 진짜 하루의 마무리다!


나는 이 순간이 가장 행복하다.

하기 싫은 수많은 일들을 우선순위별로 처리하며 16시간을 견뎌내고(말 그대로 견디는 것이다) 나에게 주어지는 단 한 시간.

마음 같아서는 두 시간이고 세 시간이고 좋아하는 영화를 틀어놓고 주야장천 즐기고 싶지만 그마저도 내일 돌아올 악몽의 기상루틴 때문에 타협한 단 한 시간.


나는 술과 함께하는 하루의 마감시간이 참 행복하다.


술을 마시지 않고 한 시간을 더 잔다면 내일 아침 으라차차! 하고 일어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오히려 더 또렷하고 맑은 정신으로 상쾌한 아침을 맞이할 수도 있을 터.

그렇지만 술이 주는 위로, 술이 주는 즐거움, 술을 마시며 느끼는 해방감은 그 어떤 스트레스 해소제보다 탁월하다고 느끼기 때문에 나는 오늘도 홀로 심심한 자기 위로를 한다.


술은 참 밉고도 좋아하는 애증의 무엇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이어주기도 했고, 사랑하는 사람을 빼앗아가기도 했고, 위로받기도 했지만 혼이 나기도 했던 애증관계다.


그래서 나는 지금부터 사랑하고도 증오하는 술과 관련된 나의 이야기를 펼쳐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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