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타고난 술고래 유전자?!
내 기억으로 친가 쪽은 내 나이 16살 정도까지 제사와 차례를 지냈다.
그 이후부터는 점점 간소화하다가 할아버지가 당뇨합병증으로 크게 아프시면서부터 제사는 사라졌다.
종교적인 문제도 있었겠지만 집안에 아픈 사람이 있으면 제사를 지내면 안 된다는 말을 언뜻 들은 것 같다.
아무튼, 초등학교 1학년때 돌아가신 할머니의 제사는 1월 말이었다.
우연히 노할머니 기일과 딱 하루 차이가 나서 합동으로 진행했었다. (그래서 사실 할머니 기일이 30일인지 31일인지 항상 헷갈린다.)
그때마다 제사상에는 항상 캔맥주가 있었다.
그걸 보고 이상하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사실은 제사상이라는 것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았었기 때문에 상 위에 무엇이 있고 없고를 깊이 생각한 적이 없었다.
내가 맥주를 좋아하게 된 시점은 야간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던 22살 무렵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동네 영화관에서 심야영화 마지막 상영까지 끝내고 나면 새벽 2시가 넘었다.
우리 네 식구는 크지 않은 아파트에 옹기종기 살았기 때문에 그 시간에 라면을 끓여 먹는 것도 미안하고 조심스러웠었다.
출출은 하고 문을 연 곳은 24시간 감자탕집과 편의점뿐.
혼밥을 하기에는 아주 부끄러운 스무 살 아가씨였기 때문에(지금은 아주 잘한다. 혼자 고깃집만 뿌수면 된다.) 편의점에서 이것저것 사다가 캔맥주와 함께 먹었던 것이 나의 맥주사랑의 시초다.
그러면서 가족들과 식사를 할 때도 맥주를 곁들이는 날이 많아졌는데 그때 부모님께서 말씀해 주셨다.
"너희 할머니가 캔맥주를 그렇게 좋아했어."
"그래서 제사상에도 캔맥주를 올렸잖니."
아... 그랬구나.
나의 맥주사랑 시초는 야간아르바이트가 아니라 할머니의 유전자였구나!
그 당시에도 캔맥주는 술 중에서도 꽤 비싼 편이었다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도 다른 서민술에 비해 비싸다.
각각 한 병씩 놓고 보면 가격이 비슷비슷하다고 할 수 있겠지만
소주는 한 병이면 충분히 취하고 위스키나 양주는 말할 것도 없고 막걸리도 한 병이면 아주 배가 불러서 더 먹지 못할 때가 많은데 맥주는 한 캔으론 어림도 없다.
가성비로 따지면 굉장히 비합리적인 술임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나의 할머니는 어떤 것보다 캔맥주를 선호했는데 캔뚜껑을 따자마자 마시는 그 첫 입이 어떤 것보다 청량해서라고 한다.
그 이야기를 들으니 소름이 돋았다.
나랑 뭔가 통하는 게 있다... 소울메이트를 이렇게 발견하는 건가...?
우리 할머니가 조금만 더 건강히 오래 살아계셨더라면 아주 신나는 술친구가 될 수도 있었을 텐데..!
그렇다고 할머니만 술을 즐긴 게 아니었다.
할아버지도 대단한 애주가였는데 때는 내가 세포분열도 하지 않았던 1988년...
오빠를 뱃속에 임신하고 있던 엄마와 아빠는 원래 살던 집에서 새로운 전셋집으로 이사 가기 전 몇 개월의 공백 때문에 잠시 시댁에, 그러니까 나의 할아버지 댁에 잠시 얹혀산 적이 있었다고 한다.
홀몸이 아닌 채로 시댁살이를 했는데 저녁식사를 마치고 나면 루틴처럼 하는 일이 시아버지를 찾으러 가는 일이었다고 했다.
초등교사였던 할아버지는 퇴근 후 복덕방 사장님과 한잔, 동료들과 한잔, 친구들과 한잔, 언제나 술모임이 많았고 말리지 않으면 집에 오지 않으실 정도였다고 했다.
휴대전화도, 교통수단도 많지 않은 시골에서 혹시나 객사하진 않을까 걱정되었던 가족들이 매일 저녁마다 단골 술가게를 찾아다닌 것이랬다.
23살의 임신한 며느리가 무거운 배를 이끌고 술 취한 시아버지를 찾아다니는 꼴이라... 지금으로선 정말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래도 엄마는 지금까지도 깔깔깔 거리면서 그 이야기를 하곤 한다.
"그때는 술집이 많지 않아서 웬만하면 찾을 수 있었는데 어느 날은 모든 가게를 다 뒤져도 없는 거야. 너희 할아버지가.
세상에.. 아무리 시아버지라지만 그때부터 걱정이 되니까 사색이 돼서 땀을 뻘뻘 흘리며 찾아다녔지 뭐야.
하마터면 오빠를 잃을 수도 있었어. 빨리 너희 아빠한테 얘기를 해줘야겠다고 생각해서 집으로 막 뛰어가는데 너희 할아버지가 논두렁에 시체처럼 누워있지 뭐니?
다행이다.. 생각하면서도 내가 둘러업고 갈 수가 없으니 아빠를 불러서 같이 모시고 갔단다.
그때 이후로 시아버지가 나한테만 용돈도 많이 주고 눈치를 엄청 봤어. 호호호호"
이 에피소드 때문인지는 몰라도 할아버지는 정말로 나의 부모님을 각별하게 아꼈다. 어린 내가 봐도 그랬다.
나의 아버지는 장남도, 차남도 아닌 삼남이었고 아무것도 특별한 것도, 잘난 것도 없었는데 할머니가 아끼던 다이아몬드 반지가 나에게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그 다이아몬드 반지가 내 엄마를 거쳐 나에게 있다는 사실은 가족 중 누구도 모르고 있을 것이다.
내가 취해있을 때는 몰라도 남이 취한 모습을 보면 아주 추한 법.
나의 아버지는 '나는 커서 절대로 절대로 아빠처럼 술을 마시지 않을 거야!'라고 다짐했다고 한다.
그 말을 들은 나는 코웃음을 쳤다.(하하하 거짓말쟁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