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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날의 맥주 한 잔

2. 여행이 좋은 이유

by 미름달 Feb 23. 2025

깨끗한 물로 만든 맥주가 더 맛있다.





여름에 마시는 시원한 맥주를 좋아한다.

반대로 겨울에는 추위를 유독 많이 타는 편이라 차가운 맥주가 덜 당긴다. (거짓말이다.)


이번 겨울은 참 늦게 시작했던 것 같다.

의외로 춥지 않은 겨울이라 '겨울이 겨울 같지 않다'는 말을 종종 뱉었는데 해가 바뀌고 나니 안 춥다는 말을 비웃기라도 하듯 어마어마한 눈과 맹추위가 기습공격을 해왔다.

유례없는 폭설과 혹한으로 호되게 당하고 있는 겨울왕국에서 잠시나마 도망치고자 지구 남반구로 짧은 여행을 떠났다.


후보에 올랐던 여러 목적지 중에 가장 중요한 요소는 "따뜻한 여름나라"여야만 했다.

여행은 목적이 무엇이든, 목적지가 어디든지 간에 여행만족도를 결정하는 것은 날씨가 8할은 차지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적당히 먼 거리, 확연하게 따뜻한 날씨, 안전하고 볼거리 많은 호주에서 기억에 남는 것 중 하나는 역시 맥주였다.


하늘에서 먹는 우리나라 맥주도 물론 맛있다.


호주 여행은 처음이라 오랜만에 서점에서 가이드북을 구매했다.

요즘에는 여행정보, 맛집, 꼭 보고 와야 할 곳들을 개인 콘텐츠로 아주 잘 정리해 놓았지만 그래도 그 여행지에 대한 지식을 얻기에는 가이드북만 한 게 없다.

또 10시간 이상의 장거리 비행이기 때문에 지루할 수 있는 비행시간 동안 호주에 대한 정보를 습득할 생각으로 기내에서 열심히 공부했다.

(사실은 기내면세품을 더 자세히 공부했다.)


호주는 주마다 지역맥주가 잘 발달되어 있다는 고급정보를 입수하고 현존하는 모든 맥주를 섭렵하고 오겠다는 의지를 불태웠다.

호주인 1인당 맥주 소비량이 세계 3~4위를 다툰다고 한다. 그만큼 종류가 다양하고 골라먹는 재미가 있었다.


그중에 내가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은 거의 어딜 가나 생맥주가 4~5종류씩 있다는 것.

버거를 먹을 때도, 폭립을 먹을 때도, 아니면 너무 더운 날씨에 휴식을 취하러 들어간 카페테리아에도 대부분 생맥주를 판매하기 때문에 맥주사냥꾼은 덕분에 모든 음식과 맥주를 페어링 할 수 있는 행운을 얻을 수 있었다.


이게 바로 행복인가.

대낮에 맥주를 들이켜도 아무도 눈치 주는 사람 없는 이 자유!

운명적으로 내가 누울 곳을 찾은 느낌이었다.


나는 향이 없는 씁쓸한 맛의 라거를 좋아했다.

사실은 맥주사냥꾼치고는 살짝의 편식이 있어서 다양한 맥주를 즐기는 편은 아니다.

한참 편의점에서 수입맥주 4캔에 만원 행사를 시작할 무렵이었던 20대 초반, 포장과 모양이 이쁜 수입맥주를 나름대로 골고루 먹어봤지만 결국에 고르게 되는 것은 씁쓸한 보리맛이 나는 라거였다.

특히 향긋한 매력이 있는 호x든같은 가향맥주는 정말 질색이었다.

복숭아 맛의 소다...? 그것은 정말 죄악이라고 생각했다.


역시 맥주는 라거! 를 외치던 나는 색깔마저 더 찐하고 풍미 있고 탄산이 톡 쏘다 못해 고막까지 찌릿찌릿한 강한 스타일의 맥주를 찾았다.


조금만 걸어도 땀이 줄줄 흐르는 호주 케언즈.

가장 큰 도시인 시드니보다 훨씬 적도 가까이 위치하고 있어 1월에도 한여름을 만끽할 수 있는 케언즈는 말 그대로 맥주 마시기에 딱 좋은 날씨다.

케언즈는 유명한 브루어리가 하나 있는데 그곳에서 여러 가지 샘플러를 맛볼 수 있다.

꼭 브루어리가 아니더라도 어느 식당에 가나 가능하면 꼭 다른 종류의 맥주를 2잔씩 먹어보는 호사를 누렸는데 이것저것 한 모금씩 비교하며 마시다 보니 어라? 오히려 라거보다 에일이, 그것도 페일에일 종류가 더 맛있다...?



 

호주의 음식들이 간이 세고 양념이 강해서일까?

첫 입에도 향긋한 풍미가 확 치고 올라오는 에일의 매력에 푹 빠지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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