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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안 마시는 어른이 될 거야!

5. 아빠고래의 이야기(1)

by 미름달 Mar 06. 2025


3편에서 얘기했다시피 할아버지, 할머니가 무척 애주가이셨고

맥주예찬을 하고 있는 나도 타고난 애주가인데 아버지가 술을 안 좋아할 수 있을까? 댓츠 노노....

유전자의 힘은 아주 강력한 것 같다.


아버지는 4형제 중 셋째였기 때문에 할아버지와 나이차이가 조금 있는 편이었다.

요즘 시대에는 그리 큰 차이도 아니지만 어쨌든 그 당시는 그랬었다.


어린 아들 입장에서는 같이 저녁식사도 하지 않으면서 맨날 술에 잔뜩 취해서 들어오는 아버지가 맘에 들지 않았었던 것 같다.


그래서 나의 아버지는 "술 안 마시는 어른이 될 거야!"라는 (거짓) 공약을 했었더랬다.


그러나...

성인이 된 아버지는 역시나 술고래가 되었고(ㅋㅋㅋ)

반대로 할아버지가 우리 아버지를 걱정하는 처지가 되었다.




우리 동네는 신도시까지는 아니고 그보다 약간 규모가 작은 택지개발지구인데 엄청나게 많은 아파트들이 모여있다.

개발된 동네다 보니 아파트 단지들 사이로 공원이 잘 조성되어 있고 공원마다 도보로 연결이 잘 되어있다.


나는 초등학교 때부터 그 공원길을 따라 학교도 가고 친구네도 가고 닭꼬치도 사 먹으러 다녔다.

공원과 공원 사이를 잇는 길이기 때문에 중간중간 벤치도 많고 정자도 많다.


아마 사건의 그날도 어딘가에서 놀다가 공원길을 따라 집으로 가고 있었을 것이다.


아주 늦은 밤은 아니었지만 충분히 어두운 어느 날 밤,

어떤 아저씨가 벤치에 새우처럼 누워있는 것이 아닌가?

그것도 신발을 아주 가지런히, 이쁘게 벗어놓고 제 집 침대인 양 편안하게 누워있었다.


그 와중에 추웠는지 몸을 잔뜩 웅크렸지만 꽤나 편안해 보이는 모습이었다.


안전한 동네이긴 하지만 딱 봐도 술 취한 사람이 자고 있으니 무서운 건 당연지사.

나는 그 벤치에서 최대한 멀찌감치 거리를 두고 눈길도 주지 말고 지나가야겠다 생각했다.


그 순간...

묘하게 익숙한 저 옷과 신발...


어두워서 잘 보이지도 않았고 그쪽은 쳐다보기도 싫어서 힐끗거리는 내 시야에 들어온 저 친숙한 뒷모습....


"아빠 미쳤어!!!???????????!!!!!!!!!!!!!!!!!!!!!!!!!!"


나는 그 자리에서 소리를 빼애액-!! 질렀다.

아마 그 주변 아파트에서는 내 비명을 다 들었을 거다. 흑흑...


벤치에서 새우잠을 자고 있는 사람은 바로 나의 아빠고래였고 나는 잠에 빠진 아빠를 찰싹찰싹 때려서 집으로 막 끌고 왔었다.


다행히 아버지는 초범(?)이었고 같은 일이 반복되는 일은 없었다.

사실 내가 그 이후로 엄청 엄청 놀림과 동시에 귀에 딱지가 앉도록 구박을 해댔기 때문에 아빠도 그 말만 나오면 진절머리가 난다는 표정을 짓는다.


그 이후로 아빠는 술을 끊으셨다! 는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이고...(ㅎㅎㅎㅎ)

그 사건 때문인지, 아니면 나이가 들어서인지 밖에서 술을 마시는 날이 확 줄었다.

아마도 나를 마지막으로 가족 모두가 성인이 되고 나서는 집에도 술친구가 여럿 있으니 자연스럽게 집에서 반주를 하게 되었던 것 같다.


우리 가족들도 어차피 마실 거면 안전한 집에서 마셔라!라는 생각이었고 

어쨌든 집에서 마시면 술값도 훨씬 덜 드니 더 낫다는 생각이 컸다.


아무튼 아빠의 노숙사건은 유일무이했고 큰일 당하지 않았으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아빠의 만행은 계속된다....  To be continued.....




"공원길을 보여드리고 싶어서 옛날 앨범을 뒤졌는데 2012년 가을에 찍어놓은 사진을 발견했어요!

이런 길이 1km 정도 이어져있어서 산책하기도 좋고 학생들이 등하교하기에도 안전한 길이에요.

이 길 따라서 초, 중, 고, 지하철역까지 다 있거든요.


저는 아직도 이 동네에 살고 있지만 점점 걸어 다닐 일이 줄어들어서 이 길을 안 가본 지 꽤 오래됐네요.

날씨가 풀리면 오랜만에 산책을 해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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