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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다, 운다, 운다, 운다, 또 운다.

두 개의 울음

by 온하루

작고 말갛고 따뜻한 아이가 태어났다.

많이 우는 아이였다.

아이는 아빠를 안다.

아빠에게 안기면 유리처럼 울음을 찢어낸다.

아이가 아빠에게 닿기만 해도 악을 지르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당연하다.


뱃속에서 그 목소리가 들릴 때면

엄마의 심장은 요란하게 뛰었고

양수와 자궁은 열기로 뒤틀렸다.

밤이 되면 엄마는 아기의 온몸이 들썩일 만큼 울어댔다.

아이는 본능적으로 학습했을 것이다. 자신을 쥐어짜 내던 존재가 누구인지를.


뱃속에서부터 시작된 기억이다.

갓 지어진 장기가 기억한 생존의 싸움.

탯줄을 목에 감고서도 놓지 않으려 했던 생.

아이는 태어나서도 자궁에서 움켜쥐었던 힘을 빼지 못하고 불안해했다.


출산 후, 내가 분노에 허우적거리느라 아이의 정서적 필요를 놓칠까봐 두려웠다.

아이를 더 많이 품고, 더 많이 안았다.

집착이었다.


그러다 문득, 두려워진다.

나와 딸, 우리는 서로의 구원이자 속박이다.

우리는 서로를 너무 꼭 쥐고 있다.

이대로 우리 둘이 한부모 가정의 삶을 시작하는 것은

재앙이다.


서로가 서로를 극복해야 한다.

상처를 빛깔로 만들어야 한다.

트라우마를 건강하게 다뤄내야 한다.

나는 어른이 되어야 한다.




아이를 재운다. 운다. 가슴을 주먹으로 친다. 운다. 머리를 쥐어뜯는다. 운다. 펄쩍펄쩍 뛴다. 운다. 내 멱살을 잡고 흔든다. 운다. 단추가 다 뜯겨나가도록 옷을 쥐어뜯는다. 운다. 명치에 멍이 들도록 문지른다. 운다. 아무리 문질러도 아픈 곳까지 닿기는 역부족이다.


아이는 자면서도 내가 옆에 없다는 걸 금세 안다.

겁에 질려 악을 지른다.

내가 다른 곳에 숨어서 밤새 우는 날이면 아이는

하룻밤에 열일곱 번도 깬다.

그 사람은 밤마다 옆방에서 게임을 한다.


빛 없는 방, 말 없는 집.

나도 아이처럼 목에 피가 나도록 고함을 지르고 싶다.

목청이 터지도록 욕을 하고 싶다.

소리를 낼 수 없다. 마음껏 울 수 있는 안전한 장소가 내게는 없다.




나는 눈물을 세었다.


이 결혼 생활에 끝이 정해져 있음을 깨닫는다.

내 발로 걸어나가야한다.

나와 딸, 우리는 곧 한부모가정이 된다.

눈물 열 방울


아빠와 딸의 관계는 그들의 것이다. 그것을 해칠 권리가 내게는 없다.

아이는 언젠가 아빠에 대한 평가를 할 것이다. 그리고, 어떤 관계로 지낼 것인지 스스로 선택할 것이다.

그 남자에 대한 내 경멸의 감정을 아이에게 보이지 않을 수 있을까.

눈물 스무 방울


조현병 엄마보다 우울증 엄마가 아이에게 더 위험하다는 연구결과를 본 적이 있다.

내가 충격을 극복하고 안전한 엄마가 될 수 있을까.

눈물 서른 방울


잘 관리되지 못한 상처는 히스테리가 된다.

소중한 이들의 말을 내가 꼬아서 듣고, 내 목에 걸린 날카로운 조각들이 그들을 떠나게 만들지는 않을까.

눈물 마흔 방울


카시트에 태우는 것 나의 몫, 운전도 나의 몫, 우는 아이 달래는 것 나의 몫, 주차하고 아이를 카시트에서 내리는 것 나의 몫, 아기띠를 하고 아이를 넣는 것 나의 몫. 여러 개의 가방을 메는 것 나의 몫.

유모차를 접고 펴는 것 나의 몫, 물론 한 손엔 아이를 안고서.

우리집의 유일한 어른으로서 내가 하루에도 무수히 겪게 될 무겁고 버거운 일상들을 기꺼이 살아낼 수 있는가.

눈물 쉰 방울


‘정상 가정’이라는 틀 앞에서 나는 위축되지 않을 수 있을까.

눈물 예순 방울


그 위축과 자격지심을 아이에게 들키지 않을 수 있을까.

눈물 일흔 방울


이 세상이 주는 상처로부터 아이를 완전히 지켜줄 수 없다는 사실.

눈물 여든 방울


아이가 너무 빨리 어른이 되지 않을까.

눈물 아흔 방울


나는 아이를 의지할 대상으로 여기지 않을 수 있을까.

눈물 백 방울


아이에게 내 편협한 경험으로 왜곡된 남자상을 심지 않을 수 있을까.

눈물 백열 방울


아이가 사랑하는 사람을 데려왔을 때 진심으로 축하하고 축복하며 보내줄 수 있을까.

눈물 백스무 방울


내 삶은 너를 위한 희생이 아니었다고, 나는 이 삶을 기쁨으로 선택했노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눈물 백서른 방울


언젠가 아이가 독립할 때 죄책감을 가지진 않을까.

아이가 나 때문에 희생하는 선택을 하진 않을까.

눈물 백마흔 방울


사고는 그 사람이 쳤지만 선택은 내가 해야 한다.

내가 아이를 한부모 가정으로 만들었다는 죄책감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눈물 백쉰 방울


무섭다. 이 집에 남아 버티든, 한부모가정이 되는 것을 선택하든 다 불지옥이고 낭떠러지였다.

그 길을 갓 태어난 이 아이도 함께 걷게 해야 한다는 사실이 나를 미치게 만든다. 두께가 11미터쯤 되는 시멘트벽에 갇힌 것 같다.





임신 5개월부터 아이의 첫 생일까지

나는 쉼 없이 울어댔다.

눈물 수 천 방울의 해답을 찾을 때까지 나는 웅크리고 있었다.

용수철처럼, 언젠가 반드시 튀어 오를 그 순간을 위해

나는 웅크렸다. 버텼다. 조용히 떨며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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