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목에 탯줄을 세 바퀴 감았다.
임신 5개월, 남편의 외도를 알게 되었다.
'나는 이 사람을 용서할 수 있는가?'
'나는 잊을 수 있는가?
'가정을 이 모습 이대로 유지하는 게 나와 아이에게 더 나은가?'
외부의 의견에 흔들리지 않기 위해 주변 사람들에게 이 일을 이야기하지 않았다.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는 것이 아니었다.
이 경험을 온전히 나만의 것으로 만들어야 했다.
그래야 어떠한 결정을 해도 후회 없음을 믿었다.
내 감정을 내가 다루고, 온전히 마주하고 싶었다.
개인상담만을 이어갔다.
마치 깊은 물속에 빠진 티비가 고장 나지 않고
원치 않는 장면이 쉴 새 없이 재생되는 것 같았다.
통째로 외워져 버린 상간녀와 그 사람의 카톡 내용이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상영되었다.
그 사람은 유부녀인 그 여자에게
우리 신혼 침대 사진을 보냈다.
"옆자리가 비었네, 누울래?"
안방의 그 침대를 보면 역겨움에 구역질이 나서 그 일 이후로 안방에 한 발자국도 들어가지 못했다.
그 집에서 이사를 나올 때까지 뱃속에 아기를 품고 작은 방 바닥에서 잠을 잤다.
임신 6개월, 내 몸이 신호를 보냈다.
스트레스가 나를 압박했고, 자궁은 수축을 시작했다.
내 몸이 말했다.
"분노만 처리하기에도 벅차. 더 이상 감당할 수 없어.
아이를 내보내."
조산기로 인한 응급실 세 번, 입원 두 번.
몸은 한계에 다다르고 있었다.
임신 7개월, 아이는 목에 탯줄을 감았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은 산모는 탯줄이 길어진다는 말을 어디선가 들었다. 죄책감이 밀려왔다.
학생들의 입학원서를 써야 하는 2학기,
조산기가 점점 심해져서 나는 담임을 내려놓고 휴직했다.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에서 오는 분노가 더해졌다. 불안이 극심해졌다.
밤마다 배에 손을 얹고 말했다.
"아가야, 엄마가 지금은 이 감정을 너와 공유할 수밖에 없어. 엄마가 어떤 결정을 내리고, 어떤 가치관으로 움직이는지 지켜봐 줘. 몸으로 함께 배우자."
내가 아이와 공유하는 것이 단순한 고통이 아니라, 더 큰 의미를 전달하는 과정이길.
이 모든 순간이 너와 나의 미래를 준비하는 흐름이길.
나를 배신하고 침묵하는 신에게 빌었다.
임신 8개월, 아이는 목에 탯줄을 두 바퀴 감았다.
나는 아이와 첫 만남에서 건넬 인사를 준비했다.
역겨워져 버린 그 신혼집에서 계속 지내면
내 분노가 아기를 밀어내버릴 것만 같아,
이사를 나왔다.
양가 부모님께서는 두 달동안 열심히 꾸민 그 집에서 왜 6개월만에 나오는지 이해하지 못하셨지만
진짜 이유를 말하지 못했다.
임신 9개월, 아이는 목에 탯줄을 세 바퀴 감았다.
임신기간 내내 조산의 위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리고, 예정일을 이틀 앞두고 아기는 내 몸에 서 빠져나왔다.
마치 승리의 훈장처럼 탯줄을 목에 세 바퀴나 감고서.
뜨겁고 축축한 작은 생명이 내 가슴 위에 안겼다.
드디어 준비한 인사를 건넸다.
"유솜아, 엄마야.
우리는 다 알지? 우리가 함께 해냈지.
고생했어, 고생했어.
앞으로도 잘 지내보자, 우리."
아이는 포기하지 않고 살아서 나왔고,
나도 살아남았다.
우리는 그저 자신의 자리에서 자신의 일을 해냈다.
중복 발행에도 인내하고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 발행일엔 새로운 글로 만나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