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가와의 만남 01
<살인의 추억>이 있는데 40년 간이나 사진 생활을 한 내게 <사진의 추억>은 얼마나 많겠나? 27살에 처음으로 전업 사진사가 된 계기는 신촌부르스의 공연 사진을 의뢰받으면서 시작이 됐다. 1990년 말 신촌부르스의 매니저를 하는 선배의 부탁을 받았다. 공연 사진을 찍기로 한 사람이 펑크를 냈으니 나보고 찍어 달라는 거다.
그 선배의 동기들 결혼식 사진을 내가 많이 찍었는데 다들 만족해했다. 신촌부르스의 매니저인 창희형이 그 사실을 알고 내게 펑크를 때워 달라고 부탁을 한 거다. 물론 페이도 적당한 금액이라 만족했고 나는 흔쾌히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 일이 본격적인 사진사의 길로 들러선 계기다.
그날 신촌부르스의 공연은 역삼동에 위치한 계몽아트홀에서 열렸다. 공연이 끝나자마자 여의도 63 빌딩 컨벤션홀에서 한 번 더 공연이 있었다. 엄청난 트래픽을 뚫고 간신히 시간에 맞춰서 도착했다. 푸른하늘, 정경화, 한영애, 봄여름가을겨울 그리고 김현식과 신촌부르스의 합동 공연이다.
나는 주로 신촌부르스를 찍었고 중간에 신촌부르스가 연주하고 김현식이 노래를 하는 부분이 있었는데 김현식의 사진을 맡은 분이 바로 김중만 작가다. 그 떼 김중만과 처음 만난 거다. 당시 나는 출시된 지 얼마 되지 않은 F4s를 사용했는데 김중만도 똑같은 F4s를 사용했다. 서로 힐끗 거리며 사진을 찍었다.
그러다 재미있는 일이 하나 생겼다, 신촌부르스가 연주하고 김현식이 노래를 하는 장면을 김중만과 내가 비슷한 위치에서 찍었는데 나중에 신촌부르스 리더 엄인호 형이 보여줄 게 있다며 신촌 신영극장 건너에 있던 자신의 집으로 오라는 거다.
나는 흑백으로 공연 사진을 찍었다. 나는 사진을 직접 인화해서 매니저인 창희 형에게 이미 납품을 한 상태였다. 엄인호 형의 집에 가니 형이 사진 두 장을 보여준다. 하나는 내 사진인데, 내 사진은 김현식이 주인공으로 찍혔고, 김중만의 사진은 엄인호가 주인공으로 찍힌, 거의 같은 구도의 사진인 거다. 공연장의 조명이 순식간에 바뀌니 스포트라이트가 순간적으로 바뀌며 벌어진 일이다. 나도 그 사진을 보며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
그 후에 김중만 형을 자주 만날 일이 필연적으로 생길 수밖에 없었다.
다음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