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 인도네시아어 회화 3개월 공부후기
2024년에 한 일 중 제일 특이한 일은 아마도 인도네시아어배우기 였던 것 같다.
나는 영어는 중급 정도이고 (인생최고 어학점수는 토익 930/ 오픽 IH인데 지금은 그렇게 안될듯함)
스페인어는 공부하다 때려쳐서 인사, 음식주문, 길물어보기 정도만 가능한 정도이다.
그러다 에어아시아 타임딜을 통해 3개월 후 출발하는 자카르타 왕복항공권을 33만 6천원이라는 가격에 득템하게된다.
늘 현지어를 조금 배워서 여행하면 어떤 느낌일지가 궁금하기도 했는데,
마침 여행지로 세계에서 제일 언어가 쉽다고 알려진 인도네시아가 걸렸길래
노는시간을 쪼개서 듀오링고를 켜고 인도네시아어 공부를 시작하게 된다.
인구대국이자 성장 잠재력이 큰 나라이니 언어 배울겸 이 나라에 대해 알아가도 좋을 것 같았고..
그러나 나도 사회인이고 인니어 할줄안다고 당장 살림이 나아지는것도 아니라서 전투적으로 공부한건 아니었고, 하루 30분 ~2시간 이내의 시간정도만 들일 수 있었다.
이렇게 해서 90일 정도 인도네시아어를 살랑 살랑 배우고, 5월에는 자바섬 서쪽을 9일간 & 8월에는 북수마트라를 10일간 여행했다.
인도네시아어는 왜 쉬운가?
가로 길이가 미국보다 긴 거대한 섬나라인 인도네시아는 정말 복잡한 언어 분포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2억 8천명의 인도네시아 인구 중 가장 많은 1억의 인구가 모국어로 사용하는 언어는...
인도네시아어가 모국어인 인구는 대략 5천만명 정도(주로 수마트라, 자카르타 도시권에 분포),
반둥 등 자바섬 서쪽에서 쓰이는 순다어와 사용인구가 비슷하다.
이렇게 인구 중 일부만이 사용하는 인도네시아어가 공용어로 채택된 이유는
자바어, 순다어, 발리어 계열의 습득난이도는 어렵기로 유명한 한국어 수준이라고 한다.
한국어만큼이나 복잡한 경어체계를 쓰고 있는 난해한 언어.
인도네시아어는 말라카해협의 상인들이 배우기 쉽도록 문법을 간략화하면서 발전한 언어였고, 인도네시아 정부는 수백개의 언어와 민족이 공존하는 이 나라의 공용어로 가장 많이 쓰이는 언어가 아닌 가장 배우기 쉬운 언어를 선택한다.
인도네시아어가 쉽다고 알려진 이유
1. 읽고 발음하기 쉽다.
문자 하나당 발음이 하나이며, 어려운 발음도 없다.
Terima Kasih -> 뜨리마까시 (감사합니다) Selamat Pagi -> 슬라맛 빠기
R이 스페인어 erre 발음이긴 한데, R과 erre를 구분하는 스페인어와 다르게 ㅣ과 r 만 존재하기때문에 영어, 스페인어의 r로 발음해도 소통에 문제가 없다.
2. 성조가 없다.
3. 영어와 기본 어순이 같다.
영어처럼 문장의 기본이 SVO (주어 - 동사 - 목적어).
4. 동사가 전혀 굴절하지 않는다.
(1) 인칭에 따라 동사가 변하지 않는다.
I am / you are / he is 와 같은 변형 없이 "있다" 는 언제나 ada 이고 "이다"는 언제나 adalah 다.
(2) 시제에 따라 동사가 변하지 않는다.
시제는 시간을 나타내는 상(부사)를 붙이는 식으로 해결한다.
한국어로 치자면, 나는 나중에 먹다 / 나는 지금 먹다 / 나는 이미 먹다 이런 식이다.
Aku akan makan / Aku sedang makan / Aku akan makan
(3) 가산명사와 불가산명사를 나누지 않고, 단수와 복수를 구별하여 동사를 변화시키지도 않는다.
5. 관사가 없다.
"그(the)" 라던가 "하나의(a)" 를 문맥상 강조해야 할 때 쓰는 표현은 존재하지만, 영어처럼 A / The 를 용례를 구별하며 항상 붙여주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6. 대명사에서의 단어변화도 없다.
I - my - me / they - their - them 이런 식의 변화도 없이 자리만 바꿔쓰면 된다.
7. 복수명사의 단어 변화도 없다.
영어처럼 가산명사와 불가산명사를 구별하지 않고, "여러개" 라는 표현을 강조하고 싶을때는 단어를 두번 반복한다.
사람은 Orang (오랑) 인데, "사람들" 이라고 복수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으면 그냥 orang - orang (오랑-오랑) 이라고 한다.
공부해봤을때의 체감은 ?
영어나 스페인어는 공부할때 진짜 머리가 터지는 순간들이 한번씩 왔었다.
영어는 어쨌건 어학성적이 있어야 직업이 생기니까 이걸 이악물고 전투적으로 할 수 있었지만
스페인어는 그거 할줄 알게된다고 살림살이가 나아지는게 아니다보니 그냥 집어던지게 되었다.
그런데 인도네시아어를 학습할때는 저렇게 집어던지고싶은 순간이 잘 오지 않아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지 않고 90여일을 꾸준히 할 수 할 수 있었다.
단어들이 영어, 산스크리트어, 아랍어, 네덜란드어 등 여러 언어에서 어원을 빌려왔기때문에 꽤 재밌기도 했다.
사용해 봤을때는 문법이 간단한 언어다보니 단어를 조합해서 문장을 만드는 부분이 어렵지 않은 면이 있었다.
스페인어같은 경우에는 내가 단어를 알고있어도 어떠한 동사를 붙여야 하는지가 헷갈리면서 말이 안 나오는데, 인도네시아어는 알고있는 단어의 경우 스피킹에 바로 활용이 가능했다.
결론적으로 짧게 배웠음에도 여행하는데 필요한 수준의 의사전달을 할 수 있었다.
그렇긴 하지만, 알아듣는건 한 30프로 혹은 그 이하수준이다.
인도네시아인들이 "유치원 선생님 화법"으로 천천히 쉽게 말해줄 때는 어느정도 대화까지 할 수 있지만, 야생의 인도네시아어를 그대로 알아듣지는 못한다.
인도네시아어를 영어와 같은 중급 수준까지 하는것은 내가 인도네시아로 발령, 취업하지 않는한 요원할 것 같다는 느낌이다.
현지어를 익히고 여행하면 만족도가 늘어나는지?
인도네시아는 태국, 베트남, 일본 등보다는 영어가 조금 더 통하는 편이다.
외국인이 많은 유명 관광지의 경우 영어가 잘 통하고, 그렇지 않은 소도시의 경우에도 사람이 여럿 있으면 그 중 영어회화 가능자가 한명정도씩은 나왔었다.
거의 대부분의 국민들이 다중언어자라 그런지, 영어를 공부할 수 있는 여건이 되는 사람들은 배운 것을 스피킹으로 빨리 연결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역시 인도네시아어를 조금 할 줄 아니까 현지인들이 놀라워하고, 많이 친절해졌었다.
영어를 거의 못하는 사람들과도 어울릴 수 있었고, 가이드받을수도 있었다.
무엇보다 내가 만난 인도네시아인들은 내가 여행을 다니며 바가지를 쓸 까봐 걱정을 했었지만,
나는 인도네시아를 여행하며 바가지를 거의 쓰지 않았다.
관광업 종사자들은 자국민 가족단위 관광객들보다 혼자 오는 외국인이 더 씀씀이가 적은 개털이라는 사실을 경험칙으로 알고 있기도 한데다가, 희귀종인 한국인인데 현지어까지 좀 아는 독특한 외국인에게 굳이 무언가를 뜯어낼 생각을 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리고 인도네시아와 사랑에 빠졌다.
열대 화산섬으로 구성된 인도네시아는 개발되지 않은 아름다운 자연유산이 구석구석에 많은 나라다.
전세계적으로 공통인 소매치기 조심 등 기본적인 안전수칙은 당연히 지켜야하지만 치안도 나쁘지 않다.
덜 알려진 매력적인 이 나라를 탐색하기 위해 빈약한 한국어 정보에 의존하지 않고,
구글맵과 인도네시아어 여행정보를 찾아볼 수 있게되고,
투어에 의존하지 않고서도 로컬 교통수단과 현지인과의 협상으로 이동을 할 수 있게 되면서
정말 아름다운 자연을 정말 프라이빗하게 독점하듯 만끽할 수 있었다.
솔직히 한국인이 여행하지 않는 희소 여행지에 대한 정보글은 사람들이 정말 읽지 않는다.
하지만 어찌보자면 스스로의 노력때문에 더 만족도가 높아진 인도네시아 여행에 대한 추억을 저장해두고,
혹시라도 나타나게 될지 모를 이 정보가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 이 시리즈를 연재해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