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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춘기

자해

by 등대지기

딸들이 셋이다 보니 나는 반팔 티셔츠에 반바지를 입고 머리띠를 하며 욕실에 조그마한 목욕탕 의자에 앉아 초보 미용사가 되어 머리를 감겨주는 날이 많이 생겼다.

이 녀석들이 무한 반복으로 이야기하는 게 앵무새처럼 입에 달고 있는 소리가 "귀찮아 귀찮아 씻기 귀찮아" 거울 보며 피부에 신경을 쓸 나이인데도 귀차니즘이 아주 몸에 밴 녀석들이다.

나이가 제일 어르신 아내부터 머리를 감겼다. 이분은 우리 집에 있어 가장 존경해야 할 깍듯이 모셔야 할 VIP 손님으로 내 무릎에 눕게 하고 미지근한 물로 이마부터 살살 적셔가며 물을 뿌리고 샴푸를 하고 트리트먼트로 한 번 더 헹굼을 하고 손가락에 힘을 주며 두피 마사지까지 아주 깔끔하게 머리 감기 봉사를 했다. 아내는 "감사합니다 사장님 팁은 없고 답례는 근사한 저녁 식사로 준비하겠습니다"라고 엄지 척을 시크하게 날린다. 큰 녀석은 아주 반항심이 강해서 엎드리게 하고 장난 삼아 찬물로 머리를 적셨는데 "아빠 차갑다고, 아 진짜 그냥 내가 감는다 했지" 깜짝 놀랄 정도로 얼마나 거세게 신경질을 내는지 물론 내가 잘못을 했지만 샤워기로 물벼락을 맞을 뻔했다. 10년 묵은 미역처럼 아주 긴 큰 녀석의 머리카락도 빨래 헹구듯이 꽉 짜고 들어 보냈다. 엄마처럼 고마운 인사를 바랐던 건 아니었지만 뒤도 안 돌아보고 씩씩대며 나가 버렸다. 예약 없이 마냥 줄 서 있는 손님이 둘이나 더 있어 머리 말리는 서비스까지는 힘들었다.

"손님 여러분 죄송하지만 오늘은 바쁜 몸이니 각자 알아서 말리세요"

둘째는 본인이 알아서 감겠다며 잠깐 망설이더니 결국 아내가 "아빠가 아주 시원하게 감겨 줄 거야 " 하며 잘 달래더니 결국 내 손길에 머리카락을 맡겼다. 어릴 적에는 세 녀석 한꺼번에 큰 대야에 앉혀 때를 빼기고 물장구를 치고 했는데 언제 이렇게 자랐는지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잘 자라줘서 너무 고마울 따름이다. 둘째는 샴푸를 제법 많이 해야 한다. 하루만 머리를 감지 않으면 방앗간 참기름을 짜 놓은 듯 머릿결에 기름이 좌르르 하여 "떡집 차리셨네요" 하며 우스갯소리를 참 많이 하곤 했다. 많은 양의 샴푸를 해서 겨우 머리를 감기고 노란 이태리 타올로 손과 팔 발 다리 등의 때를 밀려고 하는데, 손과 다리를 뒤로 빼더니 왼쪽 손등에 너무나 많은 긁힌 흔적들이 많았다. 지금 아물고 있는 상처들도 있었지만 새로 생긴 상처들도 눈에 보이게 많이 있었다. 나는 딸의 손등을 잡으면서 이게 뭐냐고, 왜 이러냐고 묻지를 못했다. 잠시 어떤 말을 먼저 하고 어떻게 물어야 될지 생각을 먼저 해야 했다. 머릿속을 정리하면서 노란 타월에 힘을 주면서 더 세게 박박 밀었다. 이 녀석 그동안 얼마나 대충 씻었으면 타월 위로 검은 때 벌레들이 가래떡 뽑히듯이 많이 나왔다. 특히나 둘째에게는 머리 감는 서비스, 때를 밀어주는 서비스, 그리고 손톱 발톱까지 깎아주는 서비스까지 모두 챙겼다. 둘째가 떠난 자리에 막둥이가 앉았다. 막둥이는 초등학교 3학년이다. 아직 손이 많이 가는 어린 아이이지만 두 언니들의 모습을 봐 오면서 자랐기 때문에 아이 같지 않고 성숙미가 물씬 풍기는 초등이다. 막둥이는 막둥이라서 애교가 철철 넘치는 주위 분들이 확실히 막둥이구나! 다 알 정도로 막둥이는 막둥이 티가 난다. 다른 집 아이들은 휴대폰이나 게임을 많이 한다고 하지만 우리 아이들은 휴대폰 게임은 하지 않고 가수들이 나오는 음악방송을 보면서 춤과 노래 따라 부르기를 좋아하고 아마도 셋이서 제일 잘 가는 곳이 코아 노래방이지 싶다.

한바탕 나의 입무는 끝이 났다. 허리가 끊어 질듯 하면서 겨우 일어나 나도 대충 씻고는 머리카락으로 잔치를 한 욕실을 깨끗이 청소를 했다. 둘째에게 묻고 싶은 말들을 그리고 대답해야 할 말들은 정리하고 둘째 방에 노크를 했다.

"아빠 들어갈게"

둘째는 뭔가를 숨기는 듯 손놀림이 빨랐고, 손 또한 책상 밑으로 숨기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는

손등을 잡으며 차분하게 물었다.

"왜 다친 거야? 어쩌다가"

"......" 또 침묵으로 입을 닫아 버렸다.

큰소리로 화를 내고 싶었지만, 어릴 적부터 어린이집 선생님, 학교 선생님들께 큰 소리로 야단맞은 트라우마 때문에 큰 소리를 들으면 더 불안감으로 온몸을 떨었다.

"손등이 왜 이렇게 됐는지 이야기해 줄 수 있어? 누가 때린 거야? 아니면 너 혼자 장난 삼아한 거야"

딸은 말을 더듬어가며

"쉬는 시간에 친구들이랑 복도에 있는데 누가 밀쳐서 빗자루가 있는 곳에 넘어졌어" 이해가 되지 않는 설명이었지만 두려움과 걱정을 안겨주지 않기로 하면서 "조심해야지 그 친구에게 사과는 받았어" 하고 물었지만 사과는 받지 못했다고 했다. 그 후로 둘째의 손을 더 유심히 관찰할 수 있는 시간을 갖기로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둘째의 손 등에 예전에 보았던 상처들이 또 있음을 알 수 있었고 이번 또한 복도에서 넘어졌다고 했지만 큰 애도 다녔던 학교라 복도에는 이렇게 쓸릴 만한 빗자루가 없다고 했다.

나는 둘째를 앉히고 문을 잠갔다. 그리고 아주 천천히 대답을 기다려 줄 것을 약속하고 이야기를 꺼냈다.

"학교에서 있었던 일 아니지?"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둘째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나 살고 싶지 않아. 죽으려고 했어. 복도에서 친구들이 툭툭치고 다니고 내 욕을 그렇게 하고 다닌데"

나는 긴 한숨을 쉬고

"이것들이 진짜 그럴 때마다 왜 이야기를 안 했어. 너를 지켜야 하는 사람이 엄마 아빠라고,

이렇게 만든 네 손등이 이쁘니? 엄청 이쁘게 생긴 네 손등이 이게 뭐니? 뭘로 이렇게 했니?"

"종. 이"

보기에는 날카롭지 않은 얇은 종이 일 수 있겠지만 그 날카로움으로 손등을 수도 없이 그 웃으니.....

"이제는 제발 이러지 말자 네가 아프지 면 엄마 아빠는 두 배 세배 열 배 더 아프다고 또 이런 모습 보이면 아빠는 열 배 더 그을 거야. 서로 아파하지 말자 알았지" 약속을 하고 둘째의 상처가 조금이나마 아물었으면 좋겠다.

나는 둘째를 꼭 안아주었다. 여린 마음에 매일 같이 얼마나 힘들고 외로웠을까, 잠시 이야기 나누는 이 시간이 서로에게 따뜻한 사랑이고 행복이고 가족이라는 것을 느꼈으면 좋겠다.

잠시 이맘때의 학창 시절을 생각하면 나 또한 참 힘들게 외롭게 학창 시절을 보낸 거 같다.

늘 생각하지만 똑똑하지 못 한 내가 참 원망스럽다. 잘 난 집안에서 태어나지 못한 게 너무 미안하면서 아빠의 책임감이 또 한 번 성숙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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