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모차가 끌고 온 그 길
새해 무렵이면,
눈발이 흩날리는 날이면,
제일 먼저 생각나는 어르신이 있다.
희끗희끗한 머리를 쓸어 넘기시며 웃던 해순님.
힘겨운 발걸음의 해순님은 늘 볼이 발그레하셨다.
허리는 거의 직각으로 꺾여 있었고,
오래되어 삐걱거리는 유모차에 의지하며
눈길이든 비탈이든 쉬엄쉬엄 사십 분을 끌고 오셨다.
비가 오면 파랑 우비를 입으시고, 유모차는 비닐로 덮었다.
유모차는 해순님의 하루를 버티는 몸을 싣고 있었다.
교실에 들어서면, 해순님은 먼저 숨부터 고르셨다.
겨우 허리를 펴서 툭툭 치시곤 해맑게 웃으셨다.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연필을 잡았다.
해순님의 허리와 달리 글씨는 조금도 구부러지지 않았다.
시원한 획과 크고 정확한 글자.
힘차고 멋진 글씨는 감탄할 만한 달필이었다.
나는 놀라운 그 글씨 앞에서 종종 말을 잃었다.
해순님의 아들은 한때 좋은 대학에 다녔다.
세상을 더 낫게 만들고 싶다며 앞장선 청년이었다
그러나 돌아온 건 극심한 고문으로 인한 골 깊은 상처와
끝내 제자리로 돌아오지 못하는 마음뿐이었다.
아들은 몇 년 동안 방 안에서 나오지 못하고 사경을 헤매다가
겨우 마루 끝에 앉아 먼산바라기 하는 것이 전부였다.
남편은 울화병이 생기고, 아들은 온종일 흐릿한 눈으로 말이 없었다.
해순님은 담담하게 말했지만 이야기 중간중간 눈가를 훔쳤다.
이야기를 마친 뒤 조용하지만 긴 한숨이 이어졌다.
그런 시간이 흐르고 흘러 아들은 조금씩 몸을 움직였다.
그러나 여전히 말은 없었다.
치매가 시작된 남편은 하루에도 몇 번씩
다 자란 채소를 뽑아버리고, 햇볕에 말리던 고추를 내다 버렸다.
그럴 때마다 해순님은 어이없이 풀썩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해순님은 웃음을 잃지 않았다.
아들이 숨 쉬고 있음에, 남편이 살아 있음에 감사했다.
겨울이 깊어지자 눈길이 미끄러웠다.
해순님은 눈을 맞으며 버스도 없는 그 길을 걸었다.
겨울이 되자 어르신들의 걱정이 더 늘었다.
어느 날은 그대로 고꾸라져서 얼굴에 피가 흐른 채 교실문을 여시기도 했다.
"겨울엔 나오지 마, 더 심하게 다치면 어쩌려고 그래."
해순님은 그 말에도 허허 웃으셨다.
그러나 허리병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결국 해순님은 겨울을 나지 못하고 수업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12월 어느 날, 마지막 수업 날이었다.
해순님은 검정 봉지에 돌돌 뭉친 물건을 조심스레 내미셨다.
"선생님, 고마운데 드릴 게 마땅치 않아서요."
멈칫멈칫 건네신 것을 풀어 보았다.
등판에 휘갈겨 쓴 영어가 새겨진 반팔 티셔츠였다.
"여름 장날에 산 건데, 아들이 나으면 영어 글씨가 뭔 뜻인지 물어보고 드리려고 했는데 아직도 저러니...
선생님은 검은색 좋아하고 여름에 땀도 많으시니...."
수줍은 목소리, 흐리시는 말끝에 진심이 담뿍 담겨 있었다.
"여름 되면 이 옷 꼭 입을게요. 그런데 못 보셔서 어떡해요."
내가 안타깝고 아쉬워서 말을 잇지 못했다.
"날 풀리면 선생님이랑 친구들 보러 한 번 올게요."
유모차도, 멋진 글씨도 교실에서 사라졌다.
해순님은 글씨를 배우는 것보다
삶을 포기하지 않는 법을 사람들 틈에서 느끼고 싶으셨던 거다.
해가 지나는 동안 여러 번 통화를 했다.
그리고 지금은 이따금 소식만 전해 듣는다.
혼자서 집안일도, 농사일도 다 하느라 쉴 틈이 없으시단다.
"아플 틈도 없어. 선생님이랑 친구들 보고 싶은 데 갈 새가 없어..."
해순님이 더 구부러진 허리를 펴지도 못하고 말씀하신단다.
구슬옥님이 가끔 해순님의 소식을 전해주신다.
해순님이 떠나신 뒤로 나는 연필을 잡을 때 가끔 허리를 낮춰 본다.
글씨가 아닌 삶이 보이도록...
새해!
해순님이 건강하시길,
우리 어르신들이 건강하시길,
모두 모두 건강하고 평안하길 바라며 모처럼 해순님의 전화번호를 누른다.
"여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