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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고래 싸움에 교실이 흔들리다

공짜보다 값진 것

by 제노도아

짜랑짜랑 울리는 매미소리에 발걸음도 경쾌하다.

하늘빛이 밝고, 흰구름도 곱다.

기분 좋게 교실 문 앞에 이르렀는데, 왁자지껄 고함소리에 멈칫한다.

보통 때의 노랫소리가 아니고, 화가 난 음성 마구 섞여 있다.

황급히 문을 열고 들어서니 두 어르신 사이에서 몇 분이 당황한 얼굴로 팔을 내젓는다.

"이러지 마요, 조용히들 좀 해요."

"이게 웬 난리야!"

"아휴, 남세스러워서 정말!"

웅성웅성한 분위기에 내가 깜짝 놀라며 묻는다.

"무 무슨 일이세요?"

울그락불그락 화가 잔뜩 난 꽃잎화님이 상대방 어르신을 삿대질한다.

"이 할망구가 갈 거면 저나 가지 여기저기 쑤셔대며 같이 가자고 꼬시잖아요. 의리도 낯짝도 없는 할망구!"

"뭐? 할망구! 이놈의 여편네가."

"뭐, 이놈의?"

"내 평소에도 저놈의 잘난 척하는 말투가 거슬렀어. 툭하면 아들이 미국 산다고 자랑질이나 하고."

"자랑질은 당신이 더 했어. 남 없던 서방인가, 우리 영감이 어쩌고 저쩌고."

"아이구, 지겨워. 가면 끝이야! 더러워서 내가 나간다."

"뭐어, 더러워? 이 여편네가 눈에 뵈는 게 없나."

더럽다는 말에 옆에서 말리시던 어르신의 눈꼬리가 따라 올라간다.

"이 양반, 나간다고 그런 말 함부로 하는 거 아녜요. 점잖게 나가셔야지."

"내 말이. 나가려면 혼자 조용히 나가지 왜 가만히 있는 사람들을 꾀냐고?"

나는 검지를 입에 대고 좌우로 머리를 세게 젓는다.

"그만, 이제 그만하세요."

동갑내기인 두 분은 그리 친하지 않았고, 꼬박꼬박 예의를 지키며 존댓말을 사용했다.

그런데 지금은 몸싸움이라도 하실 기세여서 일단 두 어르신을 양쪽 끝과 끝 자리로 모셨다. 그리고 화를 가라앉히시라고 한다.

"호호 두 번 숨을 들이마시고, 후~ 하고 길게 내쉬세요."

나는 호흡법을 따라 하라고 한다.

이런 경우는 처음이다. 당황스럽다.


꽃잎화님의 자리는 가운데 분단 중간쯤, 다른 분은 출입문 앞자리에 앉았다.

동년배이긴 하지만 두 분의 앉는 자리가 떨어져 있어서 부딪힐 일은 거의 없었다.

한 반이라고는 해도 다 같이 한마음으로 어울리지는 못한다. 전체 모임이나 외부 모임에서는 똘똘 뭉쳐 단결이 잘 되는 것 같지만, 개인적으로 더 친하고 덜 친한 분이 있기 마련이다.

예전에 다른 문해학교 선생님에게 들은 이야기가 있다.

어르신들 사이에 한 번 오해가 생기면 아이들 편싸움하듯이 한단다. 어느 땐 왕따가 되어 어쩔 수 없이 나가기도 한단다.

우리는 여태껏 그런 적이 없는데, 이번 사건의 발단은 돈이다.

문해교실은 한 달에 2만 원씩 수강료가 있다. 그런데 떠나실 분이 갈 곳은 지원을 받아 한푼도 내지 않는단다. 시설도 여기보다 더 낫고, 나들이도 자주 가며 공책이나 연필도 공짜로 준단다. 가끔 맛있는 간식도 주고 지하철역에서 내리면 바로 앞이 문해학교라서 편하단다. 그러니 그쪽으로 가자고 여러 어르신들께 권유한 것이다.

그러나 그 말을 들은 꽃잎화님은 정이 먼저지 정든 곳을 훌쩍 떠난다는 것이 못마땅하신 거다. 더구나 혼자 떠나면 되지 다른 분들에게 가자고 부추긴 것에 더 화가 나셨다.


나는 미소 지으며 말한다.

"괜찮습니다, 그쪽이 편하시면 언제든 가세요."

꽃잎화님이 볼멘소리로 투덜거린다.

"아니, 붙잡든지 욕을 하든지 해야지 가라고 하면 어떡해요."

맨 뒷줄의 한 분도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외친다.

"돈 많은 척하더니 2만 원이 아까워서 옮긴다고? 그동안 뻥쳤네."

그러나 갈 작정을 한 분은 이미 마음이 떠난 거다.

설혹 머문다 해도 마음이 떠나면 공부에 집중할 수 없고 불만과 갈등이 생긴다.


그분도 단번에 떠날 생각은 아니었을 것이다. 정이냐, 돈이냐 얼마간 고심하며 선택하셨을 거다.

같이 떠나려고 결심한 다른 두 분이 눈치를 살피며 주섬주섬 책을 챙겨 일어난다.

얼굴에 미안한 기색이 가득하다. 아예 고개를 제대로 못 드신다.

"선생님 죄송해요. 제가 돈이 궁해서..."

"딸이 집 가까운 곳으로 가라고 해서..."

"네 네, 이해합니다. 가셔서 몸 건강하게 열심히 공부하세요."

꽃잎화님은 어이없다는 듯이 나를 바라본다.


같은 반에 있어도 속마음은 아무도 모른다.

어제까지도 다정하게 '우리는 한 반, 한마음'했는데도 떠날 때가 되니 찬바람이 휭~ 분다.

어떤 분은 자음과 모음을 배우며 삶의 새로운 문을 열고, 떤 분은 서툰 글씨로 오래 묵힌 속마음을 풀어놓는다. 또 어떤 분은 이렇게 갑자기 떠날 채비를 한다.

"선생님이 얼마나 잘해주고 잘 가르쳐 주셨는데, 나쁜 여편네! 아주 줄줄이 달고 나가네."

한 분은 보란 듯이, 두 분은 허리도 못 펴시고 종종걸음으로 교실 문을 나선다.

나머지 분들은 더 이상 동요 없이 자리에서 조용히 한숨을 쉰다. 나는 문가까지 배웅을 나간다.

그동안 들었던 정이 서운함으로 목덜미를 타고 올라오지만, 제자리로 돌아와 밝게 말한다.

"어르신들, 언제든 못 나오실 사정이 생기면 미리 솔직히 말씀해 주세요."

꽃잎화님은 기분 좋지 않은 표정으로 미간을 잔뜩 찡그린다.


"88쪽이지요?"

나는 교재를 펼치며 아무렇지 않은 척 목소리를 높인다.

그러나 가슴은 아릿하다. 따라나선 두 분 중 한 분, 딸이 옮기라고 했다는 분은 처음에 딸이 함께 와서 엄마를 부탁한다며 10분 남짓 눈물로 사정 이야기를 하고 갔다. 그런데 그 딸이 다시 무료로 하는 곳으로 옮기라고 한단다.

돈이 없다며 떠나신 분 옆자리에 앉아 있던, 고운정님이 슬며시 옆으로 다가왔다.

"선생님, 이거!"

공책을 쭉 찢어서 급히 쓴 편지다.

받침도, 맞춤법도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삐뚤빼뚤 글씨.


서생닌 고마음니다 미안하오


아들이 하는 일이 잘 안 된다고 걱정하셨던 분이다. 시에서 하는 노인일자리를 구해야겠다고 하셨다.

충분히 사정을 이해한다. 사정이 있으면 어쩔 수 없다. 다만, 미리 언질을 주셨으면 이런 소동이 안 벌어졌을 것이다.

어르신들의 분위기가 아라 강물 속에 가라앉는다. 함께 했던 추억도...

'같이 배우며 정겹게 웃었는데...'

어르신들은 입을 굳게 다문다. 어느 분은 묵연히 창밖을 내다본다.

어르신들은 정이 참 많다. 그 정을 되새김질하며 다독이는 시간이 필요하다.


더운 여름도 막바지, 계절은 제 할 일을 열심히 하고 있다.

세 분이 떠나고 나서 며칠 동안 교실에 들어서면 빈자리처럼 마음도 휑하다.

떠난 사람도, 남은 사람도, 그 마음은 비슷하지 않을까.

떠난 분들 주위 어르신들이 아쉬운 듯 말한다.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표가 난다더니 정말 그러네."

한 어르신이 호탕하게 웃으며 분위기를 바꾼다.

“공짜 좋아하면 머리 벗겨져. 그나마 숱도 없는데 하하하!"

"우리 더 열심히, 공부합시다!"

그리고 예전 분위기로 차츰차츰 돌아온다.


꽃잎화님은 시종 우울한 표정이시다.

평소 말씀 한마디 한마디를 차분하고 교양 있게 했는데, 그 말싸움으로 안 보여줘도 될 모습을 보였다고 생각하신 듯하다. 거기다가 마음을 짓누르는 힘든 일이 있다. 꽃잎화님은 사별 후 다리가 상할 만큼 어렵게 돈을 모아 자식들을 가르치셨다. 꼼꼼히 모은 돈으로 세상 떠날 때까지 자식들에게 손 벌리지 않겠다고 종종 말씀하셨다.

그런데 얼마 전 미국에 있는 며느리가 암수술한 것이 재발해서 당신이 가진 돈을 몽땅 다 보냈다고 한다.

그 사실을 아는 어르신들이 '그래도 쓸 건 좀 놔두고 보내지' 하면서 염려했다.

"며느리도 내 자식이에요. 친정 엄마도 없는데 내가 딸처럼 챙겨야지요. 타국에서 오래 아파 어려워진 사정을 아는데 어떻게 부모가 있는 돈을 아끼겠어요. 나 죽을 때 장례비 정도는 여기 있는 아들이 해 줄 수 있어요."

어르신들은 꽃잎화님의 마음을 이해한다.

사람의 인연은 돈으로 환산되지 않는다.


세 분이 떠나고 나서 남은 어르신들은 더 가까워진 것 같다.

공짜보다 더 값진 것들은

우리 곁에,

서툰 글씨 속에,

익숙한 교실 안에,

하나로 겹친 사랑의 마음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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