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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아라뱃길, 윤슬처럼 빛난 하루

참 좋았지, 바람 따라 흐른 유람선에서

by 제노도아

아침 공기가 아직도 후텁지근한 시간이다.

어르신들의 밝은 모습과 함께 버스를 탄다. 어디서 구하셨는지 몇 분은 못 보던 비슷한 모양새의 모자를 쓰고 계시다.

"와아, 멋쟁이 모자!"

다른 어르신들이 부러운 듯 바라본다.

"우리가 돈 좀 썼지. 이럴 때 돈을 팍팍 쓰는 거야."

구부정한 허리를 힘껏 펴시며, 맘껏 자랑한다.

"잘했어, 잘했어."

어쩌다의 자랑도 어르신들에겐 새 활력소이다.

“오늘은 바람 쐬러 가는 날이야, 공부 생각은 안하기!”

맨 앞자리 꽃잎화님의 말에 버스 안이 웃음꽃으로 활짝 피어난다.

꽃분홍색 양산을 손에 든 고운정님이 내 옆자리에 앉으며 속삭인다.

옷 색깔과 깔맞춤에 화장도 곱다.

“선생님, 오늘 나 예쁘지요?”

화사한 분홍빛 입술, 볼연지에 눈웃음.

나는 엄지손가락을 척 세운다.

“그럼요!

고운정님의 얼굴이 봉숭아 물들이듯 환해진다.


빛으로 반짝이는 강물, 조심조심 아라뱃길 유람선에 오른다.

바람이 얼굴을 스치자, 고운정님이 두 팔을 벌리며 외친다.

“아이고, 시원하다! 한 10년은 젊어진 것 같네.”

구슬옥님이 살며시 녹음기를 튼다.

‘내 나이가 어때서'가 흘러나오자 너나 할 것 없이 합창곡이 된다.

"조용조용! 여기 우리만 있는 거 아니야."

구슬옥님이 황급히 녹음기를 껐지만 흥얼거림을 이어진다.

외국인들의 공연을 보는 내내 어르신들은 퀴즈 문제를 맞추듯하신다.

"러시아 사람이지?"

"아냐, 우우즈 뭐라더라."

"우즈베키스탄!"

"맞다, 거기! 우리 옆집 며느리랑 똑같이 생겼어."

공연보다도 어느 나라에서 왔느냐가 더 궁금한 눈빛이다.

"아휴, 저거 봐라. 허리가 내 허벅지만하네. 어찌 저리 가늘어."

"가슴은 야아~!"

"얼굴이 조막만한 게 이쁘긴 이쁘네."

어르신들의 첫번째 겉모습 평가가 끝난다.

"어찌 조렇게 허리랑 손을 살랑살랑할까?"

그 뒤에야 무용수의 동작에 관심을 가진다.

한 분이 말할 때마다 맞다고 손뼉치시는 분, 황홀한 눈길로 춤사위를 보시는 분,

몇 분은 춤보다 강물 주위의 나무나 건물 이야기가 더 흥미 있어 보인다.


공연이 끝나고, 점심 뷔페 시간이 되었다.

“이건 뭐야, 못 보던 것도 있네."

"그래도 한 번 먹어 봐."

처음 보는 음식에 머뭇거리던 손이 이내 접시 위를 가득 채운다.

“이 불고기 참 맛있네. 더 먹어도 되지요?”

네, 마음껏 드세요.”

잘 드시니까 저만큼 활동도 하시지 싶게 활기찬 시간.

어르신들의 표정이 점점 소녀시절로 돌아간다.

잔잔하게 빛나는 강물,

풍성한 음식,

옆자리 웃음소리.

모든 풍경이 편안하게 마음속에 들어온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아쉬움을 뒤로 한 채, 유람선이 천천히 선착장으로 돌아왔다.

어르신들이 번갈아 내 손을 꼭 잡는다.

“선생님, 오늘 좋은 꿈 꾼 것 같아요."

"덕분에 정말정말 즐거웠어요."


아라뱃길의 바람과 강물은

이제 어르신들의 기억 속에서, 아름답게 흐를 것이다.

평생 남을 위해 살아온 분들이 나를 위해서 웃고, 먹고, 노래했음을 오래도록 기억할 것이다.

언젠가 오늘을 다시 떠올릴 때, 다들 한 목소리로 말할 것이다.

그날, 참 좋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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