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와 빵, 그리고 글자보다 더 빛나는
햇살 좋은 날, 어르신들과 함께 떠난 작은 나들이.
도심을 벗어나 탁 트인 저수지 앞에 자리한 대형 카페는 3층 건물이다.
뷔페로 든든하게 배를 채운 뒤여서, 발걸음에 힘이 실린다.
한껏 웃음을 머금은 얼굴로 먼저 저수지 둘레길을 걷는다.
저수지 둘레길은 걷기 좋게 나무 그늘이 이어져 있다.
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온다.
손수건으로 이마의 땀을 닦던 어르신들은, 물 위의 오리를 보며 "아이고, 시원하겠다"라고 하신다.
해맑은 소녀들처럼 맘껏 웃으며 서로 사진을 찍어주신다.
"손을 볼에 대고 브이해 봐, 요렇게!"
고운정님이 자세까지 잡아준다.
"요렇게, 브이!"
따라 하시며 까르르 웃으신다.
"선생도 이리 와. "
버럭순님이 흔쾌히 옆자리를 비켜주신다.
나도 양손 V를 하며 냉큼 합류한다.
나무로 된 테크길을 조심스레 걸으며 주고받는 대화가 새소리처럼 경쾌하다.
카페 입구는 아치형이다.
"오머나, 성 안으로 들어가는 것 같네."
"이렇게 크고 넓은 덴 처음이구먼."
"밥도 맛있게 먹고 멋진 곳도 오니 신나네."
"친구들이랑 오니까 더 좋아."
입구의 대형 스크린 바다가 출렁거린다.
"시원하겠다~. 선생, 우리도 바다 가자."
버럭순님이 기분 좋게 내 손을 잡고 흔든다.
"네, 네."
나는 말씀마다 무조건 대답한다.
뒷일을 확신하진 못하지만 일단 웃으며 시원하게 대답한다. 그래야 어르신들이 활짝 웃으신다.
"여기 이름이 뭐여?"
어르신들은 영어인지 프랑스어인지 섞어놓은 듯한 카페 이름을 몇 번 중얼거려도 영 낯선 듯하다.
연거푸 읽으며 고개를 갸웃거린다.
버럭순님이 냅다 소리를 지르며 혀를 차신다.
"우리말도 좋은 것 투성인데 서양 이름에 꼬부랑글씨는 뭔 멋이여. 쯧쯧."
그러곤 휑하니 카페 안으로 들어가신다.
"맞아, 지난번에 선생님이 말해준 순우리말도 예쁜 게 많았어."
다른 어르신들이 맞장구친다.
우르르 카페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구수한 빵 냄새와 향긋한 차 향기가 온몸을 감싼다.
"야아, 만난내 난다."
"아이고, 이런 데는 첨 와 봐."
"엄청 널따랗네. 운동장만해."
"이렇게 꾸미려면 돈도 엄청 들었겠지?"
"저 빵들 좀 봐. 도대체 몇 가지야."
꽃, 나비, 집, 천사, 과일, 별 모양 등의 오색가지 빵을 신기한 듯 둘러보시며 눈을 반짝인다.
"다 맛있어 보이는데 어떤 걸 고르나."
"근데, 이거 얼마여?"
가격표를 보고 소스라치게 놀란다.
"아이고, 한 끼 밥값이야."
어르신들이 손을 옴츠린다.
"제일 싼 거 골라."
서로 소곤거린다.
"싼 것도 비싸."
"사준달 때 얼릉 맘에 드는 거 하나 집어."
"이게 젤로 이쁜데 사준다고 덥석 비싼 거 먹음 안 되겠지."
"그려, 내 돈 아까우면 남의 돈 아까운 것도 알아야 혀."
빵을 고르는 동안 양심 갈등도 하신다.
그런 순수한 모습을 뵈면, 마음 한편에 햇살이 스며든다.
어르신들은 달콤한 케이크 한 조각에도, 커다란 행복을 가득 채워 담으신다.
마주 앉아 차 마시며 이야기를 시작하는 그 순간, 다시 소녀가 된다.
쉬지 않고 대화를 나누시고 끊임없이 환한 웃음이 피어난다.
교실에서 자주 만나는 데도 모처럼 만난 친구처럼 할 말이 많다.
'수다가 정신 건강에 좋다'는 말처럼 어르신들의 이야기꽃이 필 때마다 주름살이 점점 옅어지는 듯하다.
저수지 물결을 바라보며 자유로운 시간을 즐기는 어르신들 마음에 봄빛이 머문다.
웃음으로 가득한 하루, 바람과 햇살이 함께한 시간.
돌아오는 길에,
“오늘도 참 좋은 날이었어”라는 말씀이 귀에 오래도록 남는다.
글자보다 더 빛나는 어르신들의 삶, 그 반짝임을 곁에서 함께 바라볼 수 있어 참 행복하다.
또 한 번 어르신들의 세월의 무게가 덜어진 날이다.
글자가 그려내지 못한 이야기들이, 어르신들의 환한 미소 속에서 더 빛난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