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상처
나와 초, 중, 고등학교를 다 함께 나온
둘도 없는 단짝친구 현이가 있었다.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 2학년때까지
정말 서로밖에 모르고, 쌍둥이처럼 뭐든 다 같이하고 늘 붙어 다니던 친구였다.
서로한테 비밀이란 건 없을 정도로 많이
가까웠고, 가족들한테도 말 못 할 속 이야기를
서로에게 털어놓고 의지하며 지냈다.
그랬던 현이랑 고등학교 끝자락에
사이가 틀어지게 되고 멀어지게 되었다.
현이랑 나는 어릴 때부터 같이 커오면서
다투기도 다투고 서운한 적도 있었지만
가족 같은 사이었어서 그냥 돌아서면 풀고
웃으면서 볼 수 있던 친구였다.
그렇지만 어릴 적 우리랑은 많이 달랐다.
고등학교 졸업 당일
강당에 수많은 졸업생들이 모여
의자에 앉아 교장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있었다.
그리고 잠깐의 쉬는 시간.
현이와 같이 다니는 친구 수민이가
내가 앉아있던 줄 3미터 정도 뒤쪽에 앉아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나는 신경이 안 쓰이는 척 했지만
내심 고등학교 졸업을 하면 현이와
이제 두번다시 얼굴 볼 일 없겠단 생각에
왠지 모를 시원섭섭한 마음에 신경이 쓰였다.
강당에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여 웅성웅성 떠드는 와중에도 내 귓가엔 현이 목소리만 또렷하게 들려왔다.
그리고 나는 현이 목소리에 더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었다 . .
" 너 그거 알아? 쟤네 집 거지야, 쟤가 하고 다니는 명품도 짭일걸? "
수민이는 그 이야기가 놀랍고도 웃긴 듯
리액션을 하며 하하 호호 맞장구를 쳤다.
뒤이어 현이도 재밌다는 듯 비아냥대며
" 쟤네집 냉장고에 김치도 없어서 우리 엄마한테 김치 좀 달라그래서 김치도 줬었어. 진짜 불쌍하지 않아? "
수년이 지난 지금에도 현이가 했던 이 말은
잊혀지질 않는다.
왜 이야기를 꾸며서 내 욕을 할까?
내 뒤통수에 대고 욕을 하는 거 보면 들으라고 했던 걸까? 사이 멀어지고 시간이 꽤나 지났는데도 내 이야기를 하는 거 보면 걔도 나에 대한 감정이 남아있어서 저러는 걸까, 문득문득 생각이 날 때마다 머릿속에 물음표만 떠다녔다.
난 그날을 정확히 기억한다.
현이 어머님께서 김치를 주셨던 적이 있다.
김장철이라 김장을 많이 하셨다며
맛있게되서 나눠주고 싶다고 엄마 가져다 드리라고 하시고 손에 꼭 쥐어주시던 현이 어머님 모습도 기억이 난다.
내가 정말 김치를 달라는 그런 말이라도 했다면 억울하지도 않았을 텐데 그 당시 정말 억울해서 더 어이가 없고 기분이 상했던 거 같다.
그 이야기를 듣고 표정관리가 안되었고
나는 한번 뒤돌아서 현이와 눈을 맞췄다.
그러고 현이가 당황한 듯 이야기를 멈췄고,
그렇게 쉬는 시간은 끝이 났다.
많은 감정을 느꼈지만, 아무리 가까운 사이더라도 이렇게 멀어질 수 있구나. 나의 아픔과 상처는 다른 사람에게 즐거움이 될 수 있구나. 사람을 함부로 믿어서는 안 되는 거구나.
많은 걸 배웠다.
이런 내 기억들이, 그때의 내 기분들이
날 쉴 수 없게 만든다.
그리고 오늘날의 발받침이 되어
날 또 한 단계 올라가게 만든다.
꼭 성공해야지.
또 다짐하고 오늘도 부지런히 움직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