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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림

苦待

by 서율

나에게 남은 마지막 기다림은,

어떤 모양일까?


메일 전송 버튼을 눌렀다. 이제는 정말 마지막 기회일까. 메모장에 써놓은 목록 중 마지막 칸에 체크표를 그렸다. 이제는 정말 마지막 기다림밖에 남지 않았다.

[나 아는 사람이 알바 구한다는데 할래? 너 아직도 작간가, 뭔가 한다고 있는 건 아니지?]

휴대폰 알림은 달가운 연락은 아니었다. 메시지를 읽었는데도 한참을 답이 없으니 답답했는지 조금 날이 선듯한 연락이 왔다.

[우리 내일모레면 서른이다, 솔직히 이젠 취업 준비도 좀 해야지. 대학원 문창과 하나 나왔다고 다 작가 되냐?]

답장을 하지 않았다, 어쩌면 못했다. 다 맞는 말이었기에.
작가는 꽤 오랜 꿈이었다. 생각에 없던 대학원을 나온 것도 문예 창작과에서 글에 대해 배우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아직까지 작가를 꿈꾼다고 하면, 그런 바보 같은 망상에 잠겨있다고 하면. 어느 순간부터 모두가 나를 포기한 것만 같았다. 그렇게 혼자 고립된 것만 같았다.

원고를 보낸 메일은 묵묵부답이고, 나에게 선뜻 연락하는 이조차 남지 않은 채. 마치 처음부터 반대에 맞서 작가 따위의 꿈을 키우지 않았어야 한다는 듯 말이다.

나에겐 이제 기다림밖에 남지 않았다. 분명히 시작은 흥미였고, 설렘이었다. 과정은 기대였고, 결과는 기다림. 기다림은 곧 허무함이었다. 그 사이 품은 노력은 완전히 일그러져 사라져 버린 듯. 오로지 나만이 실망감을 감추지 못한 채 남아있었다.

조금만 더 하면, 더 노력하면. 내가 그렇게 바라왔던 꿈을 이룰 수만 있을 것 같았다. 결실을 맺을 줄 알았다. 이대로 포기하기엔 그동안 노력했던 게 아쉽고, 이 길을 계속 가자기엔 막연하기만 한. 어중간한 갈림길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왔던 길을 맴돌고 있었다.

지금 나에게 남은 기다림은 어떤 모양일까. 어린 강아지가 주인을 기다리는 모습일까, 불행 속 아이가 언젠가 있을 행복을 기다리는 모습일까. 아니면 무기력한 채로 모든 일이 끝나버리길, 그저 끝맺음을 위해 남아있는 모습일까.
분명 나의 기다림은 한때 어린 강아지처럼 순수했고, 불행 속 아이의 희망처럼 빛났다. 그런데, 지금 나의 기다림은 결말만을 바라는 절망을 담을 가치라도 남아있을까.

나의 기다림은 족쇄였다,
어디로도 향하지 못하도록 나를 붙잡는.
여전히 애타게 바라는 간절함이었고, 그렇게 또다시 남아버린 쓸데없는 미련함이었다.

이걸 아는 나는 아직도 그 미련함을 보내지 못하고 있다. 가능성이 보여서? 그동안의 노력이 아까워서?

그저 내 꿈이 소중해서.

이번에 포기하면 앞으로는 기회가 없을 것 같아서.
기다림에 마지막을 모두 걸 만큼 간절해서.

그만둬버리면 평생 내가 미울 것 같아서.
때론 미련함마저 아무렇지 않게 가지고서도 쫓고 싶을 만큼,

소중한 꿈이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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