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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結末

by 서율


왜 고작 죽음에

같잖은 의미를 부여해?


이런 날마다 찾아왔던 여느 때의 그 다리 위였다. 윤슬이 아름다운 강가를 바라보는 곳이다. 조금 독특하게 다리 한가운데 시계와 가로등, 벤츠만이 자리 잡아있는 곳. 흔들리는 물결이 조금은 떨어진 도시를 담고 있었다.


죽음이 무슨 의미냐는 질문에, 많은 이들이 고민을 품는다.

유한함의 소중함.

가장 쉬운 도피길.

구렁텅이에서 구원해 줄 동아줄.

여행의 끝맺음.


그런 같잖은 의미들이 나에겐 이제 와닿지 않았다.


유한함이 어느새 잔혹하기만 했고,

떠나온 도피길은 험할 뿐이었다.

동아줄은 이미 낡아 허름했고,

긴 여행의 끝은 허무함만이 남듯.


누군가에게 소중하게 남아서 슬퍼해준다면

그럴 리 없겠지만 그래준다면

그게 내 생에 가장 큰 행복이라 할 만큼.


의미?

아직도 모르겠다.

늦은 밤이라 그런가, 다리 위에 나 혼자였다.

순간 짙은 적막에 시계의 초침소리가 일렁인다.


틱-, 탁-.

시침이 움직였다.

12시였다, 오늘 내 생일이었다.


몇 년 전 오늘은 나를 보고 누군가가 미소 지었다.

그리고 지금 나는,

뭐 하고 있을까.

허무하다, 제자리걸음조차 못 딛는 것처럼.


같잖히 부여한 의미에 목매며 더 버틸 바엔,

그런 오늘에 마침표를 찍으려 했다.


구름이 가득 매운 하늘에 희미한 달빛이 부드러운, 은은히 물결에 도시의 빛깔이 일렁이는,

윤슬은 늘 빛나고 있는,

적어도 나에겐 가장 예쁜 곳에서.

같잖은 의미들보다 더 아름다운 곳에서.


다리의 난간에 걸터앉았다.

바닷바람이 불듯 시원하다,

시곗소리와 고요가 어우러진 선율처럼.


나는 어제 죽었다,

너무 지쳐버려서 포기하려는 듯.

지금은 너무 편안하다며, 천천히 오라고.


나는 오늘 죽는다,

힘든 굴레를 이제는 멈출 때가 되었다며.

먼저 가서 기다리고 있겠다며, 다음에 또 보자고.


나는 내일 죽으려 한다,

역시나 더 넘기기는 힘들겠지.

이제는 정말 그만둘 때가 온 것 같아서,

다음에 못 볼지도 모르겠다고.


살갗을 스치는 바람에 눈을 감고,

몸을 지탱하던 손에서 힘을 뺀다.

곧이어 물에 빠진다, 시원하다.

조금은 차가운 물을 유영한다, 삶을 유영하듯.


시간이 사무친다.

하루가 사무치고, 또 오늘이 사무친다.

그리고, 내일이 사무친다.

절대 제자리걸음은 아니었다는 듯.

조금은 더 나아가서 적어도 조금은 나아졌을 매일을 살았다는 듯.


난,

같잖다고 부정했던 의미들 사이에서 나를 찾지 못해 먼저 떠나나 봐.

그저 예쁜 곳이, 아름다운 결말인 것만 같아서.

넌, 꼭 너처럼 고운 뜻을 찾아서 행복도 느껴보고 기쁨도 느껴봤으면 해.

그 사이에 스며들어 진짜 아름다운 결말을 찾을 때쯤,

그때쯤 다시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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