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묘미
양배추를 열심히 채 썬다. 매일, 되도록 매 끼니 양배추를 먹으려고 노력한 지 일주일째다. 아침에 일어나면, ‘당 떨어진다’라는 느낌이 심해지고, 속 쓰림에 어지럼증까지 동반한 것이 며칠 전부터였다. 그래서 더 이상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결심한 것이다.
한 달 전부터 소화불량, 설사, 복통 등으로 몸 상태가 꽤 불안했다. 사실 그 시작은 5개월 전이라고 봐도 되겠다. 나는 작년 말 퇴사 후 5개월 동안 거의 아무것도 안 하고 집에서 뒹굴거렸다. 그런 모습을 보며 딸이 한마디 했다.
"행복해?"
"엉! 이게 내가 바로 원하던 삶이었나 봐. 흐흐."
공식적으로는 우아하게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을 찾기 위해서’ 또는 ‘회복탄력성을 기르기 위해서’라고 했다. 비공식적으로는 그냥 아주 게으르게 보내고 싶었다. 작정한 휴식이었다. 부지런히 온몸을 갈아 넣었던 직장생활 이십 수년 만의 보상인양. 처음에는 좋았다. 밥이든 잠이든 원할 때 하는 삶. 꿈에 그리던 생활 아닌가. 그런데 그렇게 불규칙한 생활을 하다 보니, 어느덧 남들 자는 밤에 잠이 안 오고, 자연히 식사도 제때 못하면서, 의식주 패턴이 무너지고 있었다. 몸의 균형이 깨지고, 허리 신경통까지 오면서 여기저기 아프기 시작했다. 약 한 달 정도 침도 맞고, 정형외과 약도 먹어가며 치료했다. 그래도 몸 상태가 계속 편안하지를 않았다. 그렇게 이 궁리 저 궁리하다가 마침내 양배추까지 온 것이다.
10여 년 전이었다. 당시에 나는 사우나를 즐겨 다녔다. 퇴근 후 목욕탕에 가서 찜질방에 들어가 한차례 땀을 쏟았다. 그러면 몸에 쌓인 피로와 불순물이 배출됐다는 정서적 만족감으로 충만해졌다. 마음마저 순둥 하게 세탁된 느낌이었다. 나에게 있어 사우나의 묘미는 알몸으로 앉아 눈을 감고 별의별 생각을 다 할 수 있는, 명상 비슷한 순간이었다.
하지만 사우나를 하는 동안은 발가벗고 있는 매우 민망한 상황이므로 누구든 아는 사람을 만나거나, 누군가 아는 체를 해오면 참 난처해진다. 어느 날 그런 일이 일어났다.
"제가 잠을 통 못 자겠어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날도 퇴근 후 동네 사우나에서 자리 잡고 눈을 감으려는 찰나, 뜬금없이 옆의 아줌마가 이렇게 물어왔다. 나에게 하는 질문인가 싶어 침침한 사우나 조명을 헤쳐 아줌마를 바라보았다. 눈이 퀭한 예쁜 중년의 얼굴이었다. 마침 사우나에는 그 아줌마랑 나만 있었다. 내가 당황하여 이게 무슨 상황인가 파악도 하기 전에, 아줌마는 계속 나를 바라보며 매우 진지하게 말을 이어갔다.
"새벽 5시 넘어야 간신히 잠이 들어요. 너무 힘들어요. 벌써 몇 달째예요."
"식구들 아침밥은요?"
"필요 없대요. 남편도 아들도 아무것도 하지 말래요. 그냥 쉬래요. 그래서 더 힘들어요."
‘얼마나 좋을까. 나도 제발 그러고 싶다. 대체 뭐가 힘들다는 것인가.’ 철없어 보이는 아줌마한테 순간 감정이 상했던 듯도 싶다. 나는 길게 생각할 것도 없이 짧고 단호하게 한마디 했다.
"반드시 아침밥을 드세요. 식구들 아침밥도 챙겨주시고요."
아줌마는 더 이야기하고 싶어 하는 눈치였으나, 발가벗고 그런 얘기를 길게 하기는 매우 곤혹스러웠다. 게다가 처음 보는 아줌마가 아닌가. 나는 더 이상 나를 잡지 말라는, 조금 쌀쌀맞은 분위기를 풍기며 서둘러 사우나를 나왔다. 그리고 속으로 생각했다. ‘얼마나 말할 사람이 없으면 사우나에서 낯선 사람을 붙들고 저러실까.’ 그즈음은 갱년기 우울증이 사회적 문제로 인식되기 시작한 때였다.
그런데 5개월 동안 조금 게으르게 살았다고, 이제는 내가 잠이 안 오고, 여기저기 몸이 아프기 시작한 것이다. 직장생활을 하던 작년까지만 해도, 1년에 감기 한 번 걸릴까 말까, 할 정도로 건강을 유지해 왔다. 몸도 마음도 아플 틈 없이 바빴다. 휴일이면 비몽사몽 보냈고, 월요일이면 다시 새벽부터 일어나 하루 만 보 이상 걸으면서 출퇴근했다. 그래도 끄떡없었다. 그런데 아무것도 안 하니까 아프기 시작한 것이다. 이제부터 좀 놀아보겠다는데.
문득 ‘사우나의 아줌마’가 생각났다. 가족들을 위한 이십여 년간의 가사노동으로부터 비자발적으로 정리해고(?)된 그나, 직장폐업으로 강제 퇴사하게 된 나의 처지나 뭐가 다르단 말인가. 어쩌면 나도 비자발적으로 내몰린 상황에 대해 ‘아유 잘 되었네, 놀멍쉬멍 가지~’ 괜찮은 척했던 것 같다. 하지만 어느새 사우나의 아줌마처럼 불면증에, 몸살까지 앓고 있는 것은 아니었을까. 나는 ‘강제 퇴사’란 쓴맛에 휘둘리지 않으려고 일부러 희희낙락하려 했다. 그런데 몸은 아니었나 보다. 몸이 삐거덕거리면서 마음을 대신해서 죽어라 외치고 있던 거였다.
"저한테 이러시면 안 됩니다요!"
알몸 투혼을 보여준 사우나의 아줌마는 그때 잘 이겨내셨을까. 사우나라는 특수한 장소와 낯가림을 감안하더라도, 내가 정 없어 보이게 군 것이 이제야 슬며시 미안해진다. 하지만 사우나 아줌마에게 짧게 내린 나의 처방은 지금 생각해도 좋은 처방인 것 같다. 우리는 한국 아줌마. 모름지기 밥심이 최고다. 특히 치유를 위한 삶의 출발은 ‘밥심’이다. 배가 불러야 여유도 생기고 무언가 하고 싶어 지니까. 나에게 ‘아침 밥심’은 어릴 때부터 보약이었다.
유치원을 못 다녔던 나는 어릴 때 초등학교 입학을 너무도 기대했다. 특히 입학식을 앞두고는 설레어서 잠도 제대로 못 잘 지경이었다. 드디어 초등학교 1학년 입학식을 한 다음 날 아침이었다. 나는 어서 학교에 가야 한다는 설렘에 눈 뜨자마자 아침밥도 안 먹고 1학년 3반 교실로 날아갔다. 1등으로 도착했다. 그런데 그날 나는 4교시를 모두 망쳤다. 나는 1교시 수업이 끝날 즈음부터 배가 고파 눈물을 흘리며 책상에 엎드려 있었다. 보다 못한 담임선생님이 나에게 집에 다녀오라 했으나, 나는 도리질하고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교실을 절대로 떠날 수 없었다. 얼마나 기다렸던 등교인데, 그날은 내 인생의 정식 학교생활 1일 차였다.
그때부터 아침밥은 나의 인생에서 반드시 지켜야 하는 아침 의식이 되었다. 아침밥을 안 먹으면 점심과 저녁을 아무리 많이 먹어도 하루 종일 알 수 없는 허기가 계속되었다. 다음 날 아침밥을 먹고 나서야 몸은 어제의 허기를 가라앉혔다. 아침밥으로 내가 제일 좋아하는 메뉴는, 살짝 끓인 밥 반 공기에 잘 익은 김치와 꽈리고추멸치볶음을 곁들여 먹는 것이다. 그렇게 아침밥 ‘반 공기’는 나에겐 충만하고 정상적인 하루의 시작이었다.
돌아보니 나는 ‘아침밥 반 공기’를 지난 5개월 동안 등한시해 왔다. 그게 화근이었다. 누구를 위한 것이 아닌, 나 자신을 위한 가장 기본, 그것을 잊었다. 그래서 사우나의 아줌마가 생각난 것일까? 10여 년 전 사우나 아줌마는 어쩌면 미래의 내가 과거의 나를 잠깐 방문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요즈음 나는 양배추를 열심히 채 썬다. 아침에는 채 썬 양배추에 사과, 블루베리, 삶은 달걀 반 개를 올려 감식초와 올리브유를 뿌려서 샐러드로 먹는다. 밥 반 공기와 함께. 또다시 사우나의 아줌마를 만나지 않기 위해서다. (2024.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