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묘미
나는 어릴 적에 아토피도 심했고, 편식도 심했다. 한 끼 밥의 양은 삼분의 일 공기면 되었다. 그래서 비쩍 마르고 키도 작았다. 그래서인지 성격도 날카롭고 예민했다. 특별히 좋아하는 음식도 없었다. 다만 가끔 한 번씩 엄마한테 고기를 먹고 싶다고 했다. 실컷 먹어도 다섯 점 정도였다. 그마저도 안 먹으면 힘이 없어 쓰러질 것 같았다. 나의 이런 편식을 고쳐준 것이 바로 술이었다.
대학 신입생 때, 5월쯤이었던 것 같다. 동아리 선배님들이 맛있는 저녁을 사준다며 학교 앞 먹자골목 두꺼비집으로 불렀다. 동기생들과 선배님들 포함 열 명 정도가 방에 둘러앉았는데, 소주를 한 잔씩 앞에 따라 주었다. 나는 불편한 얼굴로 사양했다. 얼른 일어나려고 궁리했던 것 같다. 그때였다. 재수해서 나랑 같은 학번인 여자애가 선배에게 담배를 달라고 하더니, 불을 붙이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애송이에게 보란 듯이 나에게로 담배 연기를 쭈욱 뿜어댔다. 쿠궁! 너무 놀라 심장이 내려앉았다. 입이 타들어와 나도 모르게 내 앞에 있던 소주를 한입에 마셨다. 세잔을 연거푸 마시고 나는 몇 시간 동안 기절했다. 그렇게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내가 술자리를 좋아하게 된 이유는 선후배, 동기들이 모여 앉아 그동안 몰랐던, 철학에 관한 이야기, 역사에 관한 이야기 그리고 캠퍼스 커플들 이야기를 할 수 있어서였다. 고등학교 때까지 여고생, 남고생으로 분리되어 살아오다가, 남녀가 뒤섞여 이야기하는 것은 색다른 즐거움이었다. 가끔은 함께 책을 읽고 독서토론을 하다가 술자리로 이어가기도 했다. 그 시절에는 대학생 시위도 많았던 때라, 할 이야기는 무궁무진했다. 나에게는 세상을 배우는 자리였다.
가난한 대학생들끼리 술을 마시다 보니, 안주를 고르는 것은 꿈도 꿀 수 없었다. 음식을 가리는 티를 내면 힘든 부모님을 생각하라며 비난을 받는 분위기였다. 못 먹는 것투성이였기에, 나는 처음에는 그냥 안주 없이 술만 마셨다. 한두 잔 마셔서 술에 취하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나도 모르게 테이블 위에 있는 어떤 음식이나 먹었다. 심지어 내가 그렇게나 싫어했던 파나 당근까지도. 그렇게 자연스럽게 편식이 없어졌다. 편식이 없어진 것도 당시에는 몰랐다. 주로 소주와 막걸리를 마셨는데, 누군가 용돈을 받은 날은 맥주도 마셨다. 맥주는 비싸서 그런지 더 맛있었다. 편식이 없어지니 아토피도 사라졌다. 20년 동안 나를 괴롭히던 아토피가 술을 마시고 편식이 없어진 2년여 만에 완쾌된 것이다. 그러니 나의 술사랑은 계속될 수밖에. 하지만 순전히 나의 사례다. 보편화시킬 수는 없다.
독하지 않고 시원해서다. 라거와 에일 중에서는 라거파다. 검색을 해보니, 라거(Lager)는 저온(10~12℃)에서 발효시킨 맥주로, 곡물과 홉의 쓴맛이 섞인 가볍고 청량한 맛, 부드러운 목 넘김이 특징이라고 나온다. 에일(Ale)은 라거보다 높은 온도(15~24℃)에서 발효시켜, 달콤하고 꽃 향 및 과일 향이 특징이라고 한다. 나는 평상시에도 단맛을 별로 안 좋아하고, 바디감 가벼운 것을 좋아하다 보니 내 취향껏 라거파가 된 것이다.
십수 년 전 친구 두 명과 함께 네팔 랑탕 계곡으로 트레킹을 떠날 때였다. 우리는 홍콩에서 비행기를 갈아타야 했는데, 다음 비행기 탑승까지 시간이 꽤 있었다. 홍콩 공항을 둘러보다가, 라거 맥주의 대표격인 칭다오 맥주를 발견했다. 유레카! 처음 맛본 환상의 맛이었다. 막 여행을 시작한 때라 더 맛있었는지도 모른다. 딱 한 캔씩만 마시기로 했는데, 각자 세 캔 이상 마셨던 것 같다. 갈아탄 비행기에서도 칭다오 맥주를 서비스받아 마셔댔다. 카트만두에 도착할 때까지. 덕분에 네팔에 가까워질수록 기류가 불안정해 기체가 요동치는데, 하나도 무섭지 않았다. 그 후로 나는 국제선을 타면 맥주 한 캔 또는 화이트 와인 한두 잔 정도를 마신다. 몸에게 본격적인 여행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인 동시에, 긴장한 몸을 이완 해주고, 비행기가 흔들려도 잘 수 있는 좋은 방법임을 깨닫게 된 것이다.
노르웨이에 갔을 때였다. 그때는 현지 렌터카로 일행 네 명이 번갈아 운전하며 다녔다. 노르웨이에서의 마지막 날, 시내 카페에서 로컬 맥주를 마시고, 베르겐 공항으로 출발했다. 차가 고속도로로 접어들었는데, 화장실이 가고 싶어졌다. 나는 친구를 재촉했고, 친구는 노르웨이에서 과속 딱지 떼게 생겼다고 타박하며 액셀을 밟았다. 간신히 고속도로를 빠져나와 가까이 보이는 건물에 차를 댔다. 급히 사정을 설명하고 볼 일을 해결했다. 뻘쭘한 얼굴로 가게를 돌아보니 여행자가 쉽게 만나기 힘든 동네 에코 숍이었다. 동네 냄새가 물씬 나는 가게였다. 신세 진 값을 치를 겸해서 흥미롭게 구경했다. 그리고 거기서 코끼리 삼 형제가 나란히 앉아 있는, 손바닥 반만 한 코끼리조각상을 찾아냈다. 작은 코끼리 상은 나의 수집 품목이다. 노르웨이 로컬 맥주 덕에 우연히 만난 아이였다. 지금도 거실에서 그 코끼리 상을 보면 뉴질랜드와 에코 숍이 생각난다.
어느 해 초여름, 갑자기 더워진 날씨에 마침 시내로 출장을 나갔다. 이동만으로도 옷 속에 땀이 맺혔다. 업무가 조금 일찍 끝나서 오후 5시경 퇴근하게 되었다. 집에 가는 버스를 탔다. 버스 창으로 조금 누그러진 태양 빛이 들어와 버스 안을 채웠다. 더웠다. 거리는 노을과 함께 태양이 여름을 알리듯 길게 그림자를 드리웠다. 사람들의 지친 발걸음이 슬로우모션처럼 거리에서 움직였다. 그때 막 문을 연 듯이 길가에 의자를 내놓는 맥줏집이 보였다. 나는 바로 정차 벨을 눌렀다. 그리고 잠시 후 나는 친구와 함께 길가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석양 속에서 맥주를 들이켰다. 목젖을 적셔주는 쌉싸름하고 시원한 청량감이 몇 곱절의 감동으로 들어왔다. 땀으로 건조해진 몸과 조금 일찍 퇴근했다는 횡재의 기쁨, 오랜만에 연락했는데 우연히 시간이 맞은 친구 덕분이었다. 이제 막 더워지기 시작한 초여름 저녁 풍경의 거리에서 마시니 외국의 카페거리 부럽지 않았다.
그냥 술은, 그냥 맥주는 맛이 없다.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내게로 와서 꽃이 되는 것처럼,
술도 나의 일상에 story(이야기)가 되어 history(역사)로 스며들었을 때
가장 맛있다.